조영필
상(象)이 눈 목자(目字) 행마(行馬)를 한다고?
- 장유의 상희지 번역문 검토
장유의 계곡집과 그 일 편인 [상희지]는 한국장기의 역사에서 항상 거론되는 책이다. 이 책에는 당시대의 장기의 기반과 규칙이 기록되어 있어, 한국장기가 언제부터 현재의 모습으로 정착되었는지를 확인하기에 더 할 수 없이 좋은 자료라고 할 수 있다.
저자인 장유는 조선후기(선조~인조)의 문신으로 벼슬은 우의정에 이르렀고, 사후 영의정에 추증되었으며, 당대 문장의 4대가의 한 사람으로 평가받았다. 이러한 유학자가 일개 오락에 불과한 장기를 상세히 기록하여 두었다는 것에 새삼 감탄함과 아울러, 이러한 박물지적 기록의 배경에는 청의 고증학의 영향도 일부 있었음을 알 수가 있다.
장유의 상희지 원문을 고전번역원 홈페이지에서 직접 찾아보게 된 계기는 번역문의 일부에 대한 의문 때문이었다. 그것은 상의 행마에 대한 번역문의 다음 문장이었다.
'마는 날 일자 행마를 하고, 상은 눈 목자(目字) 행마를 하니 날줄 셋과 씨줄 둘에 걸쳐 있다.'
만약 상이 눈 목(目)자 행마를 한다면, 그것은 티무르 체스에서 보이는 낙타 기물의 행마라고 할 수 있다.
만약 이 기술이 사실이라면, 16~7세기의 장기와 오늘날의 한국장기는 상의 행마에서 차이가 나는 것이며, 17세기까지도 현재의 한국장기는 아직 미확립되었다고 할 수가 있게 된다.
그런데, 이보다도 더 관심사항은 만약 당시에 상이 눈 목(目)자 행마를 하고 있었다면, 그것은 한국장기와 중국장기의 몇가지 의문에 대한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몇가지 의문이란,
1) 세계의 체스 대부분이 주로 8열 포진임에 비해, 한국장기와 중국장기가 9열 포진인 이유,
2) 다른 나라의 장기와 달리, 유독 한국장기에서만 상과 마가 포진을 바꿀 수 있는 이유, 그리고
3) 한국장기와 중국장기의 상의 행마가 유사하면서도 서로 다른 이유 등이다.
따라서 해당 문장의 원문을 직접 확인하게 되었는데, 상희지의 해당 문장의 원문은 다음과 같았다.
'馬行二罫也。象行六罫。經三而緯二也。'
문제는 여기서 罫(괘)의 의미였다.
한문사전에 보면, 첫번째 의미는 '줄' 이었다. 그러나 '줄'이란 뜻으로는 문장의 해석이 납득이 되지 않았다.
여러 자료들을 검색하던 중 '줄과 줄 사이'라는 또다른 뜻을 발견하였다. '줄과 줄 사이'라면, 결국 '칸' 을 의미한다.
이렇게 罫(괘)의 뜻을 파악하고 나니, 馬行二罫와 象行六罫가 모두 해석이 되었다. 즉, 마는 두 칸을 가고, 상은 여섯 칸을 간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마는 두 칸으로 만들어진 사각형의 맞은 편 꼭지점으로 행마(날 일日자 행마)하는 것이고, 상은 여섯 칸으로 만들어진 사각형의 맞은 편 꼭지점으로 행마(쓸 용用자 행마)한다는 것이다.
또한 象行六罫。의 다음 문장인 經三而緯二也。를 해석한 '날줄 셋과 씨줄 둘'이라는 이해하기 힘든 번역에 대해서도 그 오해를 바로 잡을 수 있다.
한국고전번역원에서 번역한 것처럼, 罫를 '줄'로 뜻풀이를 하였을 때, 만약 눈 목(目)자 행마라면, '날줄 둘과 씨줄 넷'이 맞을 것이고, 또는 오늘날 상의 행마를 생각하여, 쓸 용(用)자 행마라면, '날줄 셋과 씨줄 넷'으로 표현하여야 마땅하다. 그런데 이것도 저것도 아닌, '날줄 셋과 씨줄 둘'이라는 표현은 논리적으로 수긍이 될 수가 없다.
이러한 불편한 문제점들은 모두 罫(괘)를 칸이 아니라, 줄로 생각하였기 때문에 일어난 오해에 불과한 것이었다. 罫(괘)를 줄에서 칸으로 바꿔놓고 해석해보면, 아주 쉽게 그 뜻을 포착할 수가 있다.
즉 원문의 의미는, '상은 여섯 칸을 가는데, 그 여섯 칸이란 세로(經)로 세 칸 길이이며, 가로(緯)로 두 칸 길이이다.' 이렇게 친절하게 부연설명하고 있는 것을 알 수가 있다.
따라서, 장유가 설명하는 상희에서의 상의 행마는 오늘날의 한국장기에서의 상의 행마와 너무나도 똑같이, 눈 목자(目字)가 아니라, 쓸 용자(用字) 행마를 당당하게 하고 있음을 알 수가 있다.
한국장기의 특징인 마와 상의 멱을 설명하는 다음 구절에서 그 뜻은 한 번 더 검증이 된다.
然馬有阻其前。象有阻其前及二罫者。
마는 바로 앞에 다른 기물이 있으면, 멱이 되어 행마를 못하게 되며, 상은 바로 앞 또는 날 일(日)자 위치(二罫 즉 마의 행마 위치)에 다른 기물이 존재하면, 역시 멱이 되어 행마를 못하게 된다.
이상과 같은 해석을 통해, 상이 쓸 용(用)자 행마를 함과 아울러, 그것이 마의 행마보다, 사선으로 한 칸 더 전진하는 것임을, 그 행마의 도중에 발생하는 멱의 제약조건을 통해, 또 한 번 명확히 알 수가 있다.
[장유의 상희지 원문]
象戲者。局戲象兵勢也。其爲局也。東西九道。南北十道。南北之邊。畫九宮焉。斜通而湊于中。將之位也。子各十有六。將一將軍也。士二謀士也。車二戰車也。包二礮也。馬二騎也。象二戰象也。卒五徒也。將居九宮之中。士居其後之左右。象居士之左右。馬居象之左右。象與馬。雖互列焉可也。車居馬之左右。包居車之前二罫焉。卒列居包之前行而各間一道以竟局焉。將行一道。前却左右無拘。然不出九宮也。士行如將也。車行直。長短縱橫前却無拘也。包行如車焉。然必有乘也。惟包與包。不相乘也。亦不相食也。馬行二罫也。象行六罫。經三而緯二也。然馬有阻其前。象有阻其前及二罫者。皆不得行也。卒行一道。可左右而不可却也。敵當其行。欲食者食之。先得其將者勝。不能相勝者平。將與將相對。以將就之者請平也。此其大勢也。奇正之妙。存乎其人 (谿谷先生集 卷之三 雜著 象戲志 1643)
谿谷 張維(1587~1638)
[장유의 상희지 번역문]
장기(將棋)는 대국(對局)하는 놀이로서 전쟁 상황을 본뜬 것이다. 장기판의 모양을 보면, 동서(東西)로 아홉 개의 길이 나 있고, 남북(南北)으로 열 개의 길이 나 있으며, 남쪽과 북쪽 가에 9궁(宮)이 그려져 있는데 이곳은 대각선으로 통하면서 중앙으로 집중되고 있으니 바로 장(將)이 있는 곳이다.
장기짝은 각각 16개씩이다. 장(將)이 1개이니 장군이요, 사(士)가 2개이니 모사(謀士)요, 차(車)가 2개이니 전차요, 포(包)가 2개이니 대포요, 마(馬)가 2개이니 기병(騎兵)이요, 상(象)이 2개이니 전투용 코끼리요, 졸(卒)이 5개이니 보병(步兵)이다.
장은 9궁의 중앙에 있고 사는 그 뒤편의 좌우에 있고, 상은 사의 좌우에 있고, 마는 상의 좌우에 있는데, 상과 마는 서로 위치를 바꿔도 된다. 차는 마의 좌우에 있고, 포는 차의 앞쪽 날 일자(日字) 변에 있고, 졸은 포의 앞 줄에 배열하는데 각자 한 칸[間]씩 떼어 놓음으로써 판짜기가 끝난다.
장은 한 칸씩 가는데, 전(前)ㆍ후(後)ㆍ좌(左)ㆍ우(右)에 구애를 받지 않으나 9궁(宮)을 벗어나지는 못한다. 사의 행마도 장과 같다. 차는 직선으로 가는데, 길거나 짧거나 가로나 세로나 전진이나 후퇴나 모두 구애를 받지 않는다. 포의 행마도 차와 같으나 반드시 타고 넘어갈 것이 있어야 하는데, 오직 포와 포는 서로 넘지 못하고 또 잡아먹지도 못한다. 마는 날 일자 행마를 하고, 상은 눈 목자(目字) 행마를 하니 날줄 셋과 씨줄 둘에 걸쳐 있다. 그러나 마의 앞이 가로막혀 있고, 상의 앞이나 날 일자 변의 칸이 가로막혀 있을 경우에는 모두 행마가 불가능하다. 졸은 한 칸씩 가는데 좌우로는 갈 수 있어도 물러설 수는 없다.
상대방의 장기짝이 나의 행마하는 위치에 놓여 있을 경우 잡아먹고 싶으면 잡아먹는다. 장을 먼저 잡는 쪽이 승리하고, 서로 이길 수 없으면 비긴다. 그리고 장과 장이 서로 맞선 상황에서 장으로 장을 부르는 것은 비기자고 청하는 것이다. 이것이 장기놀이의 대략적인 내용인데, 얼마나 권도(權道)와 정도(正道)를 발휘해서 두느냐는 대국자에게 달려 있다고 하겠다.(한국고전번역원 이상현 (역) 1994)
부기: 상기 번역문의 일부에 대한 정정 요청을 한국고전번역원 홈페이지에 오류신고 하였으나, 무응답, 무정정 ㅠㅠ
장유의 상희지에서 파악할 수 있는 17세기 한국장기의 특징
1. 장군(장)은 초,한의 구분이 없다.
2. 졸은 졸,병의 구분이 없다.
3. 기반에 중국장기에 보이는 초하한계가 없다.
4. 기물들의 크기 차이에 대한 기술이 없다.
5. 장기를 상희라고 칭하고 있다.
6. 9궁과 장군의 포진 위치는 오늘날과 똑 같다.
7. 빅장이 있었으며, 오늘날과 똑 같다.
8. 당시에 이미 상과 마의 포진 위치 바꿈이 허용되었다.
(2015. 01. 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