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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도의 상희시

조영필

by 조영필 Zho YP

정명도(程明道 1032~1085, 북송 유학자 본명은 호(顥))는 그의 아우 이천(伊川)과 함께 소위 이정으로 알려진 대유학자이다. 그런데 그가 쓴 상희시가 이익의 성호사설에 실려있다. 현재의 중국장기는 남송 시대에 와서야, 현재의 모습으로 정형화된 것으로 보는 것이 정설이다. 따라서 북송의 대유인 정호(程顥)의 상희시는 초기의 중국장기를 가늠해볼 수 있는 좋은 단서가 된다.


다음은 성호사설의 해당 부분에 대한 한국고전번역원의 번역문이다.


상기는 혹 상희(象戱)라고도 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장기(將碁)라고 한다. 정명도(程明道)의 상희시(象戱詩)에,


대개 장기와 바둑은 모두 웃고 노는 장난감인데 / 大都博奕皆戱劇
상희란 노리개는 군사 쓰는 술법을 배울 수 있다 / 象戱翻能學用兵
차와 말에는 주 나라 전법이 오히려 남아 있고 / 車馬尙存周戰法
사와 졸에는 한 나라 관명이 모두 갖춰져 있다 / 褊裨皆備漢官名
군사가 팔면으로 벌여 선 속에 장군이 앉았는데 / 中軍八面將軍坐 -> 중군에서 8면을 (호령하며) 장군이 앉아
경계선을 넘을 때는 걷는 병졸도 재빠르게 달려 간다 / 河外尖斜步卒輕
가만히 장기판을 비겨서 스스로 웃음 웃으니 / 却憑紋楸聊自笑
유방과 항우 같은 영웅도 부질없이 다투기만 했구나 / 雄如劉項亦閑爭


라고 하였으니, 이 상희란 제도를 추측할 수 있다


[이익 성호사설 제6권 만물문 상희 (한국고전번역원, 김철희(역), 1976)]


* 이익(1681~1763) 숙종~영조 연간 조선후기의 실학자


그런데, 이익의 성호사설에 실려있다고 해서, 정명도의 저작이 실제로 맞는지 여부는 정명도의 문집에서 출전을 확인하기 전까지는 확실하다고 단정지을 수 없다. 따라서 이를 확인해 보기 위해, 중국 웹사이트를 검색해보았다. 출전은 확실치 않으나, 다음의 본문을 확보하였다. 시의 제목이 성호사설과 달리 - 성호사설에서는 상희시(象戱詩) -, 영상희(詠象戱)로 되어 있고, 문구 중에서도 몇 글자가 약간 다르다.


그 시문은 다음과 같다.


詠象戲 北宋 程顥


大都博弈皆戲劇,象戲翻能學用兵。

車馬尚存周戰法,偏裨兼備漢官名。

中軍八面將軍重,河外尖斜步卒輕。

卻憑紋楸聊自笑,雄如劉項亦間爭。


출전을 정확히 확인해보는 과제는 계속 진행할 생각이지만, 현 시점에서 이 시문을 보고 일단 다음을 유추해볼 수 있다.


1) 11세기에는 중국에서 장기가 성행하였다.(대유학자가 시가를 읊을 정도이다.)

2) 偏裨 또는 褊裨 또는 偏(褊)과 裨라는 기물이 있었다.

3) 장기판이 오늘날의 체스와 같이 8 x 8 = 64면 이었을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4) 졸의 행마가 하계를 넘어 사선행마가 가능하여, 폰의 행마와 유사했을 수 있다.

5) 그 당시에도 하계가 존재한 듯하다.

6) 초한전의 모티브가 이미 장기에 각인되어 있다.


만약 이 시가 정명도의 저작이 확실하다면, 중국장기의 성립을 증거할 상당히 빠른 자료를 확보하는 것이다.


(2015. 01. 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