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필
세계의 장기(체스) 중에서 중국장기 상치와 우리의 장기는 그 장기판이 유독 특이한데, 그것은 장기판 안에 궁성(구궁)이 그려져 있다는 것이다. (물론 상치에는 하계(河界)가 또 더 있다.) 또 상치와 장기가 특이한 것은 기물이 선상에서 움직인다는 것일 것이다.
그런데, 상치에서 오늘의 장기판이 처음으로 나타나는 문헌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이청조(李淸照, 1084~1156, 송대의 여류문인)의 타마도경(打馬圖經)에 나오는 타마도이다.
타마도란 타마를 하기 위한 판을 그린 것이다. 즉 장기를 하기 위한 판은 아닌 것이다. 그런데 타마를 하기 위한 판에 장기판이 그려져 있다.
타마(打馬)란 쌍륙(雙六 또는 雙陸)을 뜻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쌍륙은 시대와 지역에 따라 규칙이 약간씩 다른데, 많은 변형이 출현하였다. 현재는 영어로 백개먼(Backgammon)이라고 하며, 국제적인 규칙이 정립되어 정기적으로 세계대회도 열리고 있다. 이 백개먼을 옛날 인도와 페르시아에서는 나르드(Nard)라고 하였다.
체스의 발명과 관련된 일화 중에 이 체스와 나르드를 비교한 것이 꽤 있다. '한 인도의 왕(Hashran)이 현자에게 인간이 숙명과 운에 종속되는 것을 상징하는 게임을 만들라고 지시하였다. 그러자 현자는 주사위를 가지고 하는 나르드(Nard)를 고안해내었다. 그의 다음 왕(Balhait)은 자유의지와 이성에 대한 그의 믿음을 확인하는 게임을 요구하였다. 이렇게 체스가 발명되었고, 왕은 이 게임을 나르드 보다 더욱 아꼈는데, 왜냐하면 체스에서는 항상 기술이 무지에 대하여 승리하기 때문이다.' (Shenk, The Immortal Game, p 16 ; Murray, History of Chess, p 210)
즉 나르드(쌍륙, 백개먼, 타마)는 운의 게임임에 반해, 체스(장기)는 이성의 게임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주목하고 싶은 것은 쌍륙과 장기의 친근성이다. 두 보드게임은 한 세트 또는 형제인 것처럼 자주 거론되고 비교된다. 나르드는 페르시아에서 발명되었고, 체스는 인도에서 발명되었다는 식이다. 최소한 이 두 게임은 비슷한 시기(나르드가 조금 더 빨리)와 인근 지역에서 개발되어서는 순례자와 상인을 따라 문명과 문화의 전파와 함께 여행을 한 것으로 보인다.
그 한 흔적이 이청조가 그린 타마도에서 타마(쌍륙)를 하기 위한 타마도에서 버젓이 그려져 있는 장기판으로 나타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장기판은 쌍륙의 말판으로도 사용되었다. 별개의 보드를 사용한다 하더라도 관아재의 현이도에서 보이듯 쌍륙은 장기와 더불어 오락 문화에서 아마 최상위의 유혹을 뽐내었던 듯하다.
보드게임 역사에서 쌍륙(백개먼)은 주사위를 사용한 경주게임의 마지막 주자로서 전략게임인 장기(체스)에 버금가는 명성을 오래도록 누려왔다. 그리하여 이 두 게임의 궁합이 우리에게는 궁성이 그려진 최초의 장기판을 확인할 수 있는 행운을 가져다 주었다고 할 것이다.
(2015. 01.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