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필
기타는 참으로 매력적인 악기이다. 소리도 아름답고, 모양도 아름답다. 음역대가 넓어 거의 모든 곡을 연주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간편한 휴대성으로 야외에서 파티를 할 때 음악을 즐기는 데에도 더없이 좋은 악기이다.
누구라서 기타를 연주하면서 호젓한 시간을 채우는 호사를 누리고 싶지 않겠는가? 나도 그랬다. 기타를 나의 취미로 당당히 적어내고 싶었고, 음악을 듣는 것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하고, 직접 음악을 만들어내고 싶었다. 그렇게 기타를 장만하고 기타를 연습했다. 그리고 수년간 기타를 연습했었다. 하지만, 초보의 벽을 넘지 못하고 수십 년간 기타를 등지게 되었다.
기타는 좁은 문이었다. 첫 번째 시련은 세하(바레)이었다. 세하란 검지를 길게 펴서 지판의 줄을 다 누르는 것이다. 소위 말하는 F 코드가 첫 번째 세하 코드이다. 내가 가진 기타는 클래식 기타로 지판이 넓어서 F 코드가 무척 힘들었다. 포크 기타의 반주는 코드 전환이 신속해야 하는데 이것은 도저히 안되었다. 그에 반해 클래식 연주는 세하가 나올 때면 그 앞 음률에서 미리 손가락 모양을 어느 정도 준비해둘 수가 있다. 첫 번째 관문에서는 포크 기타를 내려놓고 지나왔다.
두 번째 시련은 손톱이었다. 기타는 손톱으로 연주하는 악기이다. 손톱이 바이올린의 활처럼 악기의 일부인 셈이다. 그런데 손톱을 가지런하게 길러서 연주를 하면, 손톱이 기타줄에 자꾸 걸렸다. 소리를 잘 내려면 손톱을 길러야 하고 손톱을 기르면 손톱이 줄에 걸리고 진퇴양난이었다. 포크 기타라면 피크를 사용하여 이런 점을 일부 극복할 수 있다고 본다. 손톱 모양은 유전적인 것이고 내가 어찌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그 모양이 기타에 적합하지 않으면 기타를 칠 수 없다는 것일까? 너무 억울했다. 일단 손톱이 줄에 걸리면 연주가 잘 안되므로 손톱을 짧게 깍고 기타를 쳤다. 손끝(지두)으로 치는 것이어서 소리는 작아지고 손톱끝의 미세한 긴장은 사라졌다. 두 번째 관문에서는 소리를 던져 주고 지나왔다.
세 번째 시련은 악보이었다. 기타는 동일한 음정을 기타의 6개의 현 여기저기에서 만들어 낼 수 있다. 악보와 기타의 운지가 일대일 대응이 아닌 것이다. 따라서 악보를 볼 때 기타의 지판 여기저기를 눌러보면서 운지를 익혀나간다. 보통 로(Low) 코드(1~4 프렛)의 음은 비교적 쉽지만, 하이(High) 코드(5 프렛 이상)에서의 운지는 쉽지 않다. 또한 하이코드에선 세하가 많이 나온다. 이게 너무 힘들었다. 한 곡을 익히는데 한 달씩은 족히 걸린 듯하다. 일단 익히고 나면, 그 곡은 쉽게 연주할 수 있다. 그러나 새로운 곡을 익히려고 생각하면 처음부터 머리가 아파온다. 세 번째 관문은 넘지 못했다. 왜냐하면, 다음의 시련이 함께 왔기 때문이다.
네 번째 시련은 자세이었다. 클래식 기타의 자세는 왼쪽 무릎을 세우는 자세이었는데, 보기에는 멋져 보이지만, 오랜 시간을 연습할 때면, 어깨가 너무 아팠다. 여러가지로 자세를 바꾸면서 연구해 보아도 잘 되지 않았다. 포크 기타는 오른쪽 허벅지에 기타를 걸치는데, 이게 사실 나의 체형으로는 편안하고 무리가 없는 자세이었다. 그러나 이 자세로는 클래식 기타의 운지를 짚는 왼손의 각도가 잘 안나온다. 이 네 번째 관문이 결정적이었다.
세 번째 시련에서 머리도 아픈데 네 번째 시련에서 어깨도 아프니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기포자(기타 포기자)의 대열에 합류하게 되었다. 그 후 기타가 부재한 채로 상당한 세월이 흘렀다.
유투브의 시대가 개막되었다. 유투브를 보게 된 것은 공영방송의 기막힌 외눈박이 보도 행태 때문이었지만, 유투브의 세계는 새로운 시야를 열어주었다. 유투브의 다양한 콘텐츠를 보면서 나는 기타에 대한 자신감과 기타에 대한 도전의욕을 다시금 갖게 되었다. 그렇게 다시 기타를 잡았다.
첫 번째 시련이었던 세하에 대해서는 새롭게 깨달은 것이 있다. 그것은 검지의 살집이 현에 걸리도록 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즉, 손가락 마디가 현에 걸리지 않게 걸쳐야 한다. 기타리스트 신현수의 기타 연주와 신체의 해부학적 원리에 대한 내용을 인터넷에서 참조할 수 있다. 그리고 세하를 잡을 때에는 왼손 엄지와 검지를 서로 횡으로 힘이 가도록 잡는 것이 좋다. 이렇게 하면 검지의 현에 대한 부착력은 강해지고, 검지의 반대쪽인 엄지의 끝관절로 쏠리는 힘을 이완시켜 엄지의 관절을 보호할 수 있다.
두 번째 시련이었던 손톱 문제도 획기적으로 개선되었다. 그것은 어릴 때 모방한 타레가식 직각 탄현이 문제이었다. 그렇게 연주를 하여도 괜찮은 손톱 모양이면 문제가 없겠으나, 어떤 손톱이더라도 적응할 수 있는 자세는 사선 탄현이었다. 유투브의 고수들의 가르침을 따라 사선 탄현을 구사하니 손톱을 기르고도 기타를 칠 수가 있게 되었다. 잃어버린 소리가 돌아왔다.
세 번째 시련이었던 악보 독보에서는 꿈에서라도 기대하지 못했던 진보를 경험하였다. 유투브 등을 보면서 하이코드 지판을 스케일로 연습하고 있는데, 갑자기 독보능력이 일취월장하는 것이 아닌가! 예전에는 악보를 한 번 볼 때 2마디 정도 보면 숨이 차고 머리가 지끈거렸는데 갑자기 8마디 정도는 한숨에 보는 초능력을 확보하게 되었다. 작은 소품이라면 며칠만에 전곡 연습 가능하고 일주일이면 연주도 가능하게 되었다. 감격적인 도약이었다.
네 번째 시련이었던 자세도 개선되었다. 자세에 도움이 되는 여러가지 무릎 보조 기구들이 인터넷에 소개되어 있다. 이들을 활용하면 오랜 시간 기타를 연습하여도 몸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할 수 있다. 그런데 더 놀라운 성취는 클래식 기타 연주 자세의 교정이었다. 유투브 등을 보면서 왼쪽 무릎을 정면으로 놓고 오른쪽 무릎을 벌리는 자세로 연주를 하니 더 이상의 자세와 관련한 통증이 사라졌다. 예전에는 양쪽 무릎을 앞에서 볼 때 똑같은 각도로 좌우로 벌렸었는데, 이게 내 체형에는 안좋았었던 것이다.
이렇게 네 가지 시련을 모두 극복하였는데, 바야흐로 또하나의 시련이 나를 찾아올 줄은 정말 예상치 못했다. 바로 왼손 손가락 관절의 통증이다. 처음에는 엄지 관절의 통증으로 시작되었다. 세하 코드를 잡을 때 너무 세게 힘을 써서 그랬나 보다. 다음으로는 검지 관절의 통증이 왔다. 1번 선을 누를 때 세워서 눌러야 하는데 그게 항상 부담이었다. 세번째로는 새끼 손가락의 관절 통증이었다. 새끼 손가락의 힘이 다른 손가락만큼 강해져야 한다고 생각해서 의도적으로 많이 활용하다보니, 새끼 손가락에 탈이 나고 말았다.
처음에는 연습을 하다보면 차차 낫게 될 거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통증은 개선되지 않고 점점 악화되었다. 결국 이제 기타를 손에서 놓았다. 기타로 인한 손가락 관절 통증에는 일단 기타를 쉬고 또 손가락 스트레칭도 겸해주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이제까지 손가락이 아팠던 적은 없었다. 전에는 머리가 아프던지, 어깨가 아프던지 하여 기타를 아주 무리하게 치지는 못하였다. 즉 손가락까지 아플 일은 없었다. 그런데 이제 다른 문제가 없다 보니, 기타라는 너무도 매력적인 취미를 나는 갑자기 너무도 열심히 갈구하였다. 결국은 왼손 손가락 관절들이 모두 손을 들고 말았다.
잠시라도 기타를 손에서 놓는 것은 너무도 큰 상실감이다. 최근 '오후의 기타'라는 책을 읽게 되었다. 나도 그 책처럼 내 인생의 한 순간 나의 기쁨이자 상실인 이 순간을 기록하고 싶어졌다. 기타를 한 번이라도 쳐 본 사람이라면 나의 이야기에 공명하는 바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현재 어떤 장애를 마주하고 있다면, 이를 극복할 어떤 단서를 잡을 수도 있을 것이다. 기타를 누군가 아직도 치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많은 도전과 성취의 결과일지 아무도 쉽게 말하지 못하리라. (2019년 8월)
Note:
이 글은 2019년 8월에 쓴 글이지만, 이 글 이후 2019년이 거의 가기 전에 언감생심이던 트레몰로 주법에서의 장애를 극복하는 기연을 가지게 되었다. 기타를 즐기더라도 트레몰로가 안되면 선택의 폭이 제한된다. 그렇다 하더라도 트레몰로 없이도 칠 수 있는 곡은 많기에 마음을 비우고 있던 중이었다. 전문가가 지적하였다. 검지가 탄현할 때 약지가 준비되어야 한다고. 그러나 쉽게는 잘 안되었다. 전문가가 또 한 수 가르쳐준다. 검지와 약지를 교호한다고 생각하라고. 그 한마디로 수십 년간 암흑의 대지였던 트레몰로의 문이 활짝 열렸다. 트레몰로만의 문이 열린 것이 아니었다. 트레몰로의 느낌이 응용되어 탄현이 전반적으로 부드러워졌다. 그것은 2019년 12월 21일 내게 일어난 일이다.(2019. 12. 21)
악보 독보 능력의 비약적 진보의 이유에 대해서 이제사 짚이는 바가 있다. 당시 기타를 다시 잡았을 때, 나는 그전에 약 2년간 교회의 합창단을 하고 있었다. 4부 합창에서 내가 속한 베이스 파트는 4성 악보 맨 밑의 화음을 부지런히 쫓아다녀야 한다. 이것이 아마도 당시 독보 능력의 급상승의 원인이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최근 3년간 코로나로 인하여 합창단 활동이 중단되었는데, 그와 더불어 기타에 대한 흥미도 사그라들었다. 그러다가 최근 오랜만에 합창을 다시 시작하게 되었는데, 기타에 대한 흥미도 다시 생겨났다.
그렇게 만 3년만에 다시 기타를 잡았는데, 하이 코드 악보의 독보 능력이 또다시 퇴보해 있었다. 이제 한 달정도 연습하여, 겨우 감을 잡게는 되었다. 내 생각에 독보 능력은 악보를 보는 시간에 비례하는 듯하다. 비록 그것이 기타 악보가 아니라 할지라도... (2023. 1.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