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필
내가 생각하는 탁구란 이런 것이다. 만약 천국에서도 운동이란 것이 있다면 아마 탁구를 하고 있지 않을까? 탁구를 치면서 공의 궤적을 잠시라도 놓치지 않으려고 집중하다 보면 드는 생각이다. 가볍지 않은 가벼움, 그 엄격함이란? !!! ^^
탁구를 치면서 속도에 대해 생각을 많이한다. 결국 잘 치고 못 치고는 속도의 차이이다. 포물선의 궤적에 접선을 그으면 소위 드라이브가 걸린다. 이때 얼마나 정확하게 그리고 순간적으로 공에게는 천천히 그러나 동작은 빠르게 구사할 수 있느냐의 문제이다.
속도에 대한 김수영 시인의 시가 있을 것 같았는데. 겨우 찾았다. 해당 구절은 이렇다. '속도가 속도를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속도에 대해 별로 좋게 보진 않은 느낌. 정말 이게 과연 시일까? 하면서 끈질기게 읽은 덕분에 정이 들었던 시인.
탁구에선 항상 공의 궤적을 끝까지 보아야 한다. 그 다음엔 그 공이 상대의 라켓에 맞는 순간. 그리고 상대의 동작 하나 하나 놓치지 않고.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저도 모르게 스매싱을 받아넘기는 나의 반사적 수비. 그저 놀랍기만 하다.
이 때 중요한 것이 속도이다. 나보다 속도가 빠르거나 예측이 힘든 상대의 공은 내가 아니라 내 몸이 이겨내지 못한다. 나보다 느린 자의 공은 아무리 무신경하게 있어도 내가 아니라 내 몸이 다 받아낸다. 속도가 실력이 아닐런지.
오늘 드디어 공이 보이기 시작했다. 공이 튕겨 오다가 떨어지기 직전의 그 멈추어진 순간이 보이기 시작했다. 바로 그 순간 나는 그 공의 바깥면을. 그 껍질만을 깍아올린다. 온 몸의 궤적이. 무릎도 허리도 팔도 모두 부드럽게 그 포물선의 접선을 그리는데 봉사한다. 그리고 다시 아무일도 없었던 듯이 평상의 자세를 회복한다. 이것이 탁구 드라이브의 세계이다. 팔과 함께 다리와 스텝이 익숙해진 연후에 비로소 눈은 그 목표물을 인식하게 되었다.
내가 팬홀더에서 셰이크로 바꾼 이유는 1) 잘 치고 싶어서, 2) 편하게 치고 싶어서, 3) 뱃살 빼고 싶어서 이다. 그러나 라켓을 바꾼 그날부터 나는 또다시 탁구클럽內 실력의 사닥다리 맨 밑바닥으로 내려가서, 온갖 수모와 사역을 당한다. 오늘도 게임에 져서, 아이스크림 봉사를 하였다. 항상 낯선 곳에서 외롭게 밑바닥으로 내려가는 것. 이것이 내 인생의 속성일까? 주저주저하면서 변신하는 업(業)은 희망의 반면(反面)일까?
눈은 그의 모든 것이다. 눈빛은 그의 성품을 보여준다. 안광은 정력이다. 그러나 그 청탁(淸濁)은 그의 인생의 축적이며 지향이다. 그런데 그 눈이 어디를 향하는지가 또한 중요하다. 쳐다보길 좋아하는 남자에 비해, 주목받기를 좋아하는 여자들이 본능적으로 직감할 테이지만, 눈이 향하는 곳은 그의 바람, 결핍 그리고 숨은 욕구를 드러낸다. 사람들은 그걸 들키기 싫어서 선글라스를 착용하기도 한다.
탁구에서 눈은 상대의 라켓에 집중한다. 다음에 공의 궤적에 몰입한다. 결코 서두르지 않는다. 눈은 찰나를 끊어서 바라보며 타이밍을 잡는다. 목검 수련 시 선생님은 칼을 보지 말고, 눈을 보라고 하셨지만, 탁구에서 상대의 눈을 바라보는 경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눈은 경기하는 사람들의 기예와 함께 그들의 아름다움도 함께 본다. 절시(훔쳐보기)와 관전의 중간 어디쯤 눈은 움직인다.
H兄 : 눈은 몸과 마음의 입구, 입구이면서 출구이고 하지만, 다른 출구와 달리 한번 들어온 것을 좀 처럼 버리지 못하여 늘 고뇌의 근원이고.. 나역시 그런 부족함을 요즘 무척 많이 깨우치고 있다네.
나 : 저는 눈에서 그의 의식 보다는 무의식을 많이 보게 됩니다. 그래서 눈을 마음의 거울이라고 하는 것일까요? 형의 문제 설정을 빌리면, 눈은 입구로 기능할 때, 그의 모든 것을 노출하는 출구가 됩니다. 스파이가 이중첩자가 된 격이지요. ^^
H兄 : 무의식이 지배하는 것이 참 무서운 것 같아요. 실은 무의식이 아니라 의식하고 있는 것인데 주체가 누구인가를 우리도 모르게 지배당하는 것일지..
사람들의 얼굴이 하나같이 순하다. 아무나 탁구치러 다니는 것은 아니라는 느낌이다. 이를 가리켜 선탁주의라고 해볼까!!!
지난 월욜부터 오늘까지 꼬박 8일을 개근했다. 밥과 책과 탁구와 집이 생존에 필요한 4대요소이다.
드라이브는 기본적으로 무릎을 굽히고 팔을 최대한 내리는 것이 준비 자세이다. 1) 커트로 올 때: 공이 떨어질 때 친다. 2) 커트로 올 때 결정구를 치고 싶으면: 공이 제일 위에 있을 때 친다. 3) 회전으로 올 때: 그대로 위에서 드라이브 회전으로 친다. 드라이브. 이것 만만한 놈이 아니다. 오늘에사 위에 떠있는 공과 아래로 떨어지는 공이 구분이 된다. 이론으로 알게 되는 것이 아니다. ^^
탁구의 장점: 1) 전천후.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가능. 2) 저렴. 라켓과 공을 준비하고 소액의 월회비로 충분. 3) 가벼운 운동. 노인이 되어서도 체력 관리 가능. 4) 시간효율. 1시간만 있어도 됨. 5) 재미. 게임의 재미(실력차는 복식으로 해결)와 실력향상의 즐거움. 6) 눈운동. 모니터로 나빠진 눈을 시원하게 해주는 효과(집중력 강화). 7) 탁담(卓談) 가능. 사람마다 공의 구질이 달라 상대를 바꾸면 지루하지 않음. - 단점: 1) 혼자할 수 없음. 2) 에너지 소모가 적음.
L兄 : 파워드라이브를 구사하면 에너지 소모를 늘릴 수 있음
나 : 지금 생각해보니 혼자할 수 없는 단점은 또 다른 장점이네요. 상대를 잘 찾기 위해선 인간성과 실력이 겸비되어야 하지요.
공을 끝까지 보라고 한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공을 치는 순간의 상대 라켓의 움직임을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몸은 준비한다. 공은 테이블을 맞고 튀어오르며 급격하게 휘어진다. 길목을 지키고 있던 나의 눈은 몸과 함께 득달같이 그 순간을 제압한다. 공은 상대의 급소인 왼쪽 옆구리를 향한다. 이제 공은 맞은 편 테이블을 맞고 상대의 라켓을 지나친다. 귀중한 한 포인트가 계수판을 오른다.
토욜 저녁 에서 일욜 새벽, 이 시간이 내게 주어진 유일한 자유 시간이 아닐까? 그렇지만, 일요일도 즐겁게 보내려면, 이제는 자야 하지요... 아쉬운 마음을 접고, 오늘도 조금 깨달은 리듬(Rhythm)의 흥분도 덮고...
꿈 속에서 탁구 치다
아침에 마눌님이 날 깨우는데, 게임하고 있다고 대답했다. ㅋㅋ
페북에선 묻는다. 무슨 생각하세요? 난 대답한다. '오늘 갑작스런 회식으로 탁구를 못쳐 슬프다.' 생각이 있는 한 난 그 질문에 조건반사한다.
탁구 즉 卓談은 바둑의 手談과 같이 '질문과 대답' 의 연속이다. 서비스에 대한 리시버, 드라이버에 대한 블로킹, 스트로크에 대한 쇼트, 상대는 끊임없이 묻는다. 이렇게 하면 어쩔텐가? 이것은 아는가? 백(back)이 약하면 백을, 포(fore)가 약하면 포를. 집요하게 추궁한다. 그러고 보니, 담소라기 보다는 인터뷰라고 해야 할런지도. 다시 함께하고 싶다면, 대충으론 안된다. 정말 성의있게 답을 찾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아야 한다. 그것도 주어진 시간 내에. 시원찮은 대답이 나오면, 보통 잘 할 때까지 물어보나요? 아니면 기회가 아예 박탈되나요?
Life is question. The answer is up to you.
1) 난 포핸드 스트라이크를 좋아한다. 하지만 그걸 쓸 겨를이 없다. 내가 백이 약하다는 것을 파악한 상대가 공을 백으로만 주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난 백쪽으론 수비에만 급급하다 포핸드로는 힘 한번 제대로 못쓰고 이미 승부는 끝나고 만다.
2) 절치부심 나는 이제 백만 연습한다. 백쇼트, 백스매싱, 백드라이브 맹연습한다. 다시 재도전 한다. 연습을 꽤 한 덕에 조금은 만만찮게 백 공격에 대응한다. 상대는 놀란다. 포핸드로도 기회가 오기 시작한다. 강력한 포스매싱을 보란듯이 상대 면전에 작열시킨다. 만만한 상대가 아니라는 것을 알려준다. 그래도 승리는 내게 오지 않는다.
3) 마음 속으로 시합을 복기해본다. 그리고선 깜짝 놀란다. 백에서 나는 적극적인 공격을 시도하지 않았다. 나는 백드라이브나 백스매싱을 왜 사용하지 않았을까? 그동안의 주눅든 마음이 자신이 가지고 있는 기술도 제대로 구사하지 못하게 했다. 때로 심리적 장벽은 기술적 장벽을 넘은 곳에서 여전히 남아 우리의 성장에 대한 마지막 한방울의 땀을 더 요구한다.
고수들은 나 보고 '힘을 빼라' 고 한다. 어깨에 힘이 단단히 뭉쳤다고 한다. 아닌게 아니라 힘을 빼고 나면 어떤 공에도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다. 나는 고수들이 이렇게 높은 경지에 있는 줄은 정말 몰랐다.
'힘을 빼라' 선생님께서 항상 귀에 못이 박히도록 하신 말씀을 여기서 또 듣게 될 줄은......
(2010년 ~ 2011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