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필
한라산
섬뜩 어두움을 가르는
포효(咆哮)는 언제였으랴!
춤추는 파도와 들끓는 숫기를 보라
적막한 수평선 너머
수줍은 새살이 웅자(雄姿)를 드러낸다
풀잎의 속삭임에
얼걱덜걱 귀 기울이는
남국(南國)의 돌아!
인두의 서슬에도 풍상(風霜)이 어리었네
눈꽃 틔운 구상나무 숲길을 따라
자애로운 조릿대의 평원이 펼쳐지고
남벽(南壁)에서
오르는 바람
옥태(玉苔)를 두른 솔가지 지나
만년설수(萬年雪水)와 어우러지네
회색의 대기에 옭죄어든 숨통을 터뜨려라!
살풀이처럼 쏟아지는 비
하산길을 동행하여
먹먹한 무릎이 풀릴 즈음
늦은 인사이듯 뒤돌아 본다
산정(山頂)의 묵중한 구름은 그새
갸날픈 빛이 되고
나는 광배(光背)인 양 휘청-거리네
(1986년 6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