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항해

조영필

by 조영필 Zho YP

흔들리는 항해



1

흔들린다는 것은

경고 없이 닫히는 뚜껑문(hatch)에 끼여 팔이 잘리거나

갑판 물비늘에 미끌리어 스크루(screw)에 감길 수도 있다는 것


오늘 하루도 살아 있다는 것


차곡차곡 매달린 침대에 겹겹이 누워

엔진의 굉음을 들으며

흔들리는 배 안에서 흔들린다는 것은



2

갑판 아래 배를 움직이는 기계들 곁으로

한증막 같은 격실 칸칸이

낮이나 밤이나 반쯤 졸린 눈의 기관당직은

기계보다 더 무연히 소음에 흔들리고


바람소리 날카로운 함교 유리창으로는

복면 쓴 밤바다를 인화하는 함교당직의 침묵이 흐른다


3
흔들리는 것은 오히려 시간인지도 모른다

제 나이를 알 수 없는 선임하사의

해풍에 절은 이마 위로

방금 지나온 기 - 인 항적(航跡)이 그어지고


그렇다 흔들린다는 것은


빈 유리컵 같은 사람들을 기르는 것

먹은 것을 모두 토해내고

새로 투명한 그리움을 담는다


4
저 멀리 눈에 익은 항구의 능선이 흔들리고


입항 나팔소리


함내 구석구석 새우잠 자는 승무원을 흔들어 깨우면

곱게 다려놓은 하얀 옷으로 꾀죄죄한 몰골을 덮고

갑판 층층이 빛나게 도열한다


5
부두 계선주(繫船柱)에 홋줄을 던져걸고


이엉차 이엉차


가장 질긴 마닐라삼으로 만든 이 밧줄이

장력이 틀어져 풀어지기라도 한다면

갑자기 패대기칠 파리채 목숨이지만


이엉차 이엉차


흔들리지 않는 그 무엇에

흔들리는 것들을 꽁꽁 동여맨다

그러나



6

흔들리지 않는 것이

어디에 있으랴


7

흔들리지 않는 듯 더 흔들거리는 도시에 나와

면역을 모르는 관성

흔들흔들 보도(步道)를 건너 디디며


거 참 이상도 하지

흔들려도 흔들려도 흔들리지 않는 목마름


그 푸르고 짭잘한

航 - 海


거 참 흔들린다는 것은




(199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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