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영필 Zho YP Mar 18. 2021

소 5

조영필

소 5


소 잔다 미명의 아침을 웅크리고 하루를 잔다 그들의 일터는 없다 들판에는 트랙터의 땟기름이 이랑이랑 구획된 주판알을 굴릴 뿐 그들 노동의 몫은 어디에도 없다

소 잔다 옹기종기 무릎꿇고 속죄하듯 잔다 잠을 자면서 조금씩 불려가는 무게를 위해 근육보다는 비계를 위해 열심히 잔다.

생각해보면 마음 조려야 할 무엇이 남아있는가
뚜벅뚜벅 찾아올 저울의 시간에 맞추어 어떤 몸짓이 소용될 것인가

소 잔다 좁은 울 안에서 싸우지도 않고 잘도 잔다 가끔씩 다짐하듯 입을 오물거린다 살아있다 아직은 살아있다

인공수정으로 태어나 성욕의 즐김도 없이 소 그냥 잔다 실업자의 양식 그 마취의 힘으로 시위하듯 하루를 잔다

그들의 잠은 화석보다 단단하다

(1991년)


매거진의 이전글 소 4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