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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영필 Zho YP Mar 18. 2021

소 4

조영필

소 4


간다 간다 흔들리며 간다
조롱을 장식하는 횃대도 없이
신문받는 의자도 조명도 없이
육중한 몸체 그럭저럭 지탱하며
일 톤 트럭에 실려간다

잡풀 없는 신작로길
바퀴 달린 잡식 맹수들은 하나 같이
위협음과 소름끼치는 빛을 방사하고
각진 도시의 그림자는
혓바늘 돋는 안개를 분무하는데
갑자기 이상한 생명체가 되어 너는
연신 꼬리를 설렁설렁
짐짓 젊잖게 인사하며 간다

멈추지 않는 풍경
주체 못할 흥분의 구경꾼처럼
콧김도 한 번 쐬어보고

편안히 누울 새도 없이
무너질 듯 무너질 듯

비틀거리며 간다

한 번이라도
너의 세상이 흔들린 적 없었지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대열 속
귀향을 꿈꿔 본 적도 없었지

그래도 너는 간다
그 잘난 목청 눈가에 접어두고
네가 끌지 않는 수레 위 푸른 신호 받고
행복하게도 흔들흔들

흔들리며 간다

(199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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