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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영필 Zho YP Mar 18. 2021

야간 항해 - 인도양

조영필

야간 항해

   - 인도양




거대한 비단구렁이의 또아리에 달빛이 스민다

호수라도 이처럼 부드러울 수는 없을 거예요

촉촉한 빛의 늪이지

대기는 흐릿하다 미로를 헤매는 빛의 땀

닿을 언덕이 없다 가끔씩

속도가 서로 다른 것끼리 부딪히면

회오와 질투의 인광이 인다

넘실거리는 그것은

바닥없는 질감 속으로 침전하던 항해자의 뼈를 추스르고

움직이지 않는 모든 것을 조금씩 이동시킨다

곱기도 해라 나이를 어림할 수 없어요

주름이 없지 사실

겉과 속의 구별은 아무리 노련한 항해자에게도 쉽사리 허용되는 것은 아니야
서두르지 않는 융모의 유동 사이로 언뜻 유산균 같은 고래가
가는 호기심을 뿜는다
미지의 두려움에 아이는 눈을 가린다

호흡마저 멈출 수는 없어요 소리에 닻을 걸겠어요

손을 내밀어라
물컹한 것이 촉수를 뻗쳐온다 눈을 부릅

뜬다 앗 눈이

없다 하얀 조그마한 알을 감고 거부의 소용돌이

눈을 내민다

딱딱한 것에 민감한 눈시울에 빛 같은 액체가 고여
떨어지지 않는다

끈끈이에 포획된 가련한 곤충

목을 꼿꼿이 치켜든 비단구렁이의 단단한 껍질에 경련이 인다


둥근 창의 눈꺼풀이 주문처럼 걷히면

검은 바다의 피부를 쓰다듬는 샹들리에의 황홀한 마찰

무색무미한 식탁보 위 달빛 은결든 접시로

속 빈 달팽이 일곱 번 회전하고

포만한 뱃고동 소리 꾸룩꾸룩 거린다


저기, 뭍이 보인다



(199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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