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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영필 Zho YP Apr 30. 2021

쫓기는 사람들

조영필

쫓기는 사람들




사람들은 모두 쫓기고 있었다

쫓기는 사람 뒤엔 쫓는 사람이 있을 법도 한데

쫓기는 사람밖에 없다고 하여도 무방하다


쫓기는 이유를 물어보면

이상, 사랑, 노후, ......

재떨이마다 쌓이는 하얀 시간들

커튼이 드리워진 창가의 빨간 시간들


쫓기는 자는 무엇이든 저지른다

순간적으로 여행을 저지르고

순간적으로 결혼을 저지르고

순간적으로 자살을 저지르고


그들은 자주 잊어버리는데

군대에 가선 애인을 잊어버리고

직장에 가선 부인을 잊어버리고

집에 와선 애첩을 잊어버리고

심지어는 거울을 보면서 자기 모습을 잊는다고 한다


그런데도 무도장과 술집은 만원이고

개봉관은 줄을 길게 비비꼬아서

더 무엇을 잊어 떨구려는 걸까


백주 대낮에 거리를 활보하는

하고 싶은 일은 하고야 마는

하나도 위급하지 않은 탈주자들


그들이 갑자기 달아난다

자세히 보니 그들이 저지르고는 잊어버린

그들의 조그만 그들이 쫓아오고 있었다




(1992. 4.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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