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재구
沙平驛에서
막차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待合室(대합실) 밖에는 밤새 송이눈이 쌓이고
흰 보라 수수꽃 눈시린 琉璃窓(유리창)마다
톱밥난로가 지펴지고 있었다
그믐처럼 몇은 졸고
몇은 감기에 쿨럭이고
그리웠던 순간들을 생각하며 나는
한줌의 톱밥을 불빛속에 던져주었다
內面(내면) 깊숙이 할 말들은 가득해도
靑色(청색)의 손바닥을 불빛속에 적셔두고
모두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산다는 것이 때론
한 두릅의 굴비 한 광주리의 사과를
만지작거리며 歸鄕(귀향)하는 기분으로
침묵해야 한다는 것을
모두들 알고 있었다
오래 앓은 기침소리와
쓴약 같은 입술담배 연기 속에서
싸륵 싸륵 눈꽃은 쌓이고
그래 지금은 모두들
눈꽃의 和音(화음)에 귀를 적신다
子正(자정) 넘으면
낯설음도 뼈아픔도 다 雪原(설원)인데
단풍잎 같은 몇 잎의 차창을 달고
밤 열차는 또 어디로 흘러가는지
그리웠던 순간들을 呼名(호명)하며 나는
한 줌 톱밥의 불꽃을 불빛 속에 던져주었다
(80년대 신춘문예 당선시인 신작시집, 푸른숲, 1988)
Note:
1981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불을 쬐는 청색의 손바닥으로 빠져들고 단풍잎 같은 차창에 한 번 더 놀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