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라지오 가까운 항구에서

이용악

by 조영필 Zho YP

우라지오 가까운 항구에서




삽살개 짖는 소리

눈포래에 얼어붙는 섣달 그믐

밤이

얄궃은 손을 하도 곱게 흔들길래

술을 마시어 불타는 소원이 이 부두로 왔다


걸어온 길가에 찔레 한 송이 없었대도

나의 아롱범은

자옥자옥을 뉘우칠 줄 모른다

어깨에 쌓여도 하얀 눈이 무겁지 않고나


철없는 누이 고수머릴랑 어루만지며

우라지오의 이야길 캐고 싶던 밤이면

울어머닌

서투른 마우재말도 들려주셨지

졸음졸음 귀밝히는 누이 잠들 때꺼정

등불이 깜박 저절로 눈감을 때꺼정


다시 내게로 헤여드는

어머니의 입김이 무지개처럼 어질다

나는 그 모두를 살틀히 담았으니


어린 기억의 새야 귀성스럽다

거사리지 말고 마음의 은줄에 작은 날개를 털라


드나드는 배 하나 없는 지금

부두에 호젓 선 나는 멧비둘기 아니건만

날고 싶어 날고 싶어

머리에 어슴푸레 그리어진 그곳

우라지오의 바다는 얼음이 두텁다


등대와 나와

서로 속삭일 수 없는 생각에 잠기고

밤은 얄팍한 꿈을 끝없이 꾀인다

가도오도 못할 우라지오




(「이용악시전집」, 창작과비평사)

우라지오: 블라디보스톡(Vladivostok), 러시아 연해주 남부의 도시

마우재말: 러시아어, '마우재'란 러시아 사람을 가리키는 함경도 방언

귀성스럽다: 귀인(貴人)성스럽다.

*아롱범: 표범(현실에 맞서는 화자의 치열한 삶의 표상)

*헤여드는: 헤치고 들어오는

*귀성스럽다: 구수한 맛이 있다. (현대시의 모든 것, 꿈을담는틀, 29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