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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우공이산

벤처캐피털의 역사

by 조영필 Zho YP

송경모님(미라위즈 대표)과 배승욱님(한국벤처투자)의 글에서 발췌



산업혁명 시대 - 무역상이 신기술 투자

제임스 와트(James Watt)의 증기기관은 초기 탄광업자 존 로벅(John Roebuck)의 자금 후원으로 진행했으나 로벅이 파산을 하면서 그의 친구인 금속용품 제조 사업가 매튜 볼턴(Matthew Boulton)이 투자를 계속해 주었기 때문에 지속적인 개발이 가능했다. 이후 19세기 초, 조지 스티븐슨(George Stephenson)의 증기기관차 개발은 달링턴의 면방직업자인 에드워드 피스의 자금 후원이 없었으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이들은 전형적인 엔젤 투자자였다.


근대 투자은행 신산업 투자처, 철도

영국에서 증기기관차 개발에 성공한 뒤 철도는 유럽과 미국 전역에서 신산업으로 부상했다. 철도라는 전례 없는 수송 기술의 등장은 새로운 사업 기회를 창출했고, 이로부터 근대적 형태의 투자 은행이 등장했다. 독일에서 지멘스가 1870년에 도이체방크를 설립했고, 미국에서 모건이 1864년 JP모건은행을 출범시켰다. 이들은 종래의 대부업 중심의 모델에서 탈피해 채권과 주식 발행을 통해 철도사업자에 대한 적극적인 자금 지원을 하면서 성장했다. 이 과정에서 근대적 투자은행들은 당시 신발견, 신발명이 집중적으로 이뤄진 전기와 화학 산업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예컨대 도이체방크는 바이엘과 지멘스, JP모건은 GE에 투자함으로써 20세기를 주도한 산업의 원형을 주조했다. 기업의 성장을 위한 지원을 했고, 필요한 경우 적절한 M&A를 주도하기도 했다.


벤처캐피탈 출현 전 모험자금

19세기 말부터 은행이 점점 위험을 회피하는 성향으로 변모하면서 창업자에게 자금이 원활히 공급되지 못했다. 이에 따라 창업자는 공식적인 은행보다는 가족, 친구, 성공한 기업인으로부터 자금을 공급받으며 발명을 계속했다. 실제로 미국 중서부 지역, 특히 디트로이트에서 초기의 자동차 산업에 자금을 지원한 주체는 은행이 아니라 가족이나 친구, 성공한 기업인이었으며, 금융회사들은 초기 단계의 자동차 창업자에게 자금을 공급하는 것을 주저했다.


20세기 초 자동차 산업이 성장하고 통합되는 동안 또 다른 산업인 항공 산업이 출현했는데, 항공 산업이야말로 벤처캐피탈 산업의 탄생에 더욱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초창기 항공업 창업자는 자동차에 사용된 부품에서 비행기를 조립하는 방식으로 사업을 했으나 점차 비행기는 훨씬 더 복잡하고 기술적으로 정교한 제품으로 진화했다. 그 후 항공업이 항공우주산업으로 발전하면서 정부는 군용 항공 산업에서 정교한 기술을 개발하는 중소기업들의 막대한 연구개발비를 지원하기 시작했다.


2차 세계대전 이전 수십 년 동안 항공 분야에는 주로 부유한 개인이 투자했다. 이들은 비행기에 관심이 많았을 뿐만 아니라 항공업을 유망한 투자 분야로 생각했다. 예를 들어, 역사적인 비행으로 유명한 라이트 형제(Wright Brothers)는 카보츠(Cabots), 코넬리어스 밴더빌트(Cornelius Vanderbilt), 어거스트 버몬트(August Belmont), 러셀(Russell), 프레드릭 알제(Frederick Alger)와 같은 동부의 기업인들과 금융가들로부터 많은 투자를 받았다. 당시 항공 분야에서는 현대적인 벤처캐피탈과 유사한 기관들의 투자 실험이 있었는데 1926년 다니엘 구겐하임(Daniel Guggenheim)은 250만 달러의 펀드로 항공 분야의 과학 기술 연구를 장려해 민간 항공이 수익을 낼 수 있도록 도왔던 것이었다. 1927년 이 펀드는 미국 최초의 항공사인 웨스턴 항공사에 15만 달러를 대출(Loan)해주었는데 항공사의 사업이 매우 성공적이어서 1년 안에 모두 상환됐다. 이 펀드는 계속해서 항공 산업의 발전을 위한 다양한 프로젝트에 투자됐고, 어떤 측면에서 최초의 벤처캐피탈 기능을 수행했다고 볼 수 있다.


1938년 실업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상원위원회에서 E. I. Nemours du Pont Corporation의 회장인 라못 뒤 퐁(Lammot du Pont)은 “미국이 다시 움직이도록 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벤처캐피탈(Venture Capital)”이라고 보고했다. 이 위원회에서 벤처캐피탈이라는 용어를 공식적으로 처음 사용했다. 1938

년 1월 13일자 월스트리트 저널 사설에서 라못 뒤 퐁의 벤처캐피탈이라는 문구를 채택해 벤처캐피탈을 “수익에 대한 보상이 확실하지 않은 투자”로 정의했다. 1939년 10월 9일 샌프란시스코 증권회사인 Dean Witter & Company의 장 위터(Jean Witter) 회장은 투자은행협회 연설에서 장 위터(Jean Witter) 회장은 벤처캐피탈이 필요한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실험 단계에 있는 사업을 위해 공모로 증권을 발행해 자금을 모집하는 것은 적합하지 않다. 초기 사업에 대한 자금 조달은 위험에 익숙하고 문제 해결에 적극적이며 새로운 사업의 관리를 잘 할 수 있는 개인들에 의해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그는 누가 이러한 역할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에는 대답하지 않았다.


2차 대전 후 미국 벤처캐피탈의 형성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 보스턴에서 바네바 부시(Vannevar Bush), 칼 콤프톤(Karl Compton), 랄프 플랜더스(Ralph Flanders)와 하버드 경영대학원 조지 도리오(Georges Doriot) 원장 등 기업 및 대학 지도자들이 American Research and Development(이하 ARD)라는 최초의 벤처캐피탈을 결성했다. ARD는 투자신탁 및 보험회사 등의 기관 투자자, 그리고 초기 공모주 발행을 통해 주로 자금을 조달했다. 자금을 모집한 이후 ARD는 중소기업에 자금을 직접 투자하기 시작했고, 투자 대상 기업 중 다수는 MIT에서 스핀오프해서 나온 기업들이었다.


당시에 공모형 벤처캐피탈 펀드가 등장할 수 있었던 배경은 두 가지다. 첫째, 증권시장이 급속히 발달하면서 뮤추얼 펀드와 같은 공모형 상품들이 이미 보급되고 있었다. 둘째, 대량생산 체제가 보급되고 노동자의 임금 소득과 구매력이 현저히 상승하면서 현대적인 의미의 중산층이 형성돼 있었다. 당시까지 공모형 펀드는 주로 안정적인 채권이나 상장 주식에 투자하는 것이 관례였고, 위험도가 높은 신기술 시업에 투자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들었다. 당시 유명한 발명가 찰스 케터링(Charles Franklin Kettering)은 ARD가 5년 이내에 파산할 것이라고 예측하기도 했다.


그러나 세간의 예상을 뒤엎고 회사는 25년 동안 성장했고 수백 개의 벤처 기업들을 탄생시켰다. 그 중에서도 7만달러에 투자한 디지털이퀴프먼트(DEC)의 지분 가치를 400만달러로 상승시켜 매각한 일화는 유명하다. 미국 동부에서 ARD가 성공하자 이를 모방한 벤처캐피탈이 속속 등장하기 시작했다.


벤처캐피탈산업의 출현

1950년대 중반부터 새로운 벤처캐피탈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는데 결정적으로 1957년 10월 우주 개발 경주에 불을 붙인 스푸트닉(Sputnik; ‘동반자’라는 뜻의 러시아어, 구소련(USSR)이 초창기에 개발한 인공위성) 발사가 계기가 됐다. 이 사건으로 당시 미국에 트랜지스터, 컴퓨터, 그리고 다양한 과학기구와 같은 경량 부품에 대한 엄청난 수요를 발생시켰다. 이에 따라 1958년 미국 국방부는 국방 관련 연구, 특히 항공우주, 전기공학, 컴퓨터 과학 분야의 막대한 연구비를 마련하기 위해 선진국방연구사업청(The Defense Advanced Research Projects Administration, 이하 DARPA)을 설립했다. 미 국방부는 기존에도 대학과 기업에 연구비를 지원했지만, DARPA는 기존과는 다른 규모로 엄청난 자금을 쏟아 부었다. 스푸트닉 발사로 인해 생겨난 미 국방부의 투자는 두 가지 면에서 벤처캐피탈 산업에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첫째, 이 투자로 인해 부가가치가 매우 높은 첨단 전자제품의 시장이 크게 성장해 관련 중소기업의 이익이 대규모로 늘었으며, 둘째, 대학 전기공학부에 대한 연구비가 대폭 증가해 1960년대에 많은 대학에서 독립형 컴퓨터공학과가 설립됐다는 것이다. 그 이후 컴퓨터공학과의 학생들이 새로운 발명과 기술을 만들어 냈고 이들이 졸업하자마자 연구자, 기술 중심의 스타트업 임원 및 기업 창업자로 성장하게 됐다. 이로 인해 컴퓨터 부품 및 소프트웨어 기술이 엄청나게 빠른 성장을 할 수 있었다.


이후 벤처투자는 눈부신 투자 수익을 올렸는데, 첫 번째 성공은 1958년 위성사진 촬영용 정보 처리 시스템을 제작한 Itek 회사에 대한 Rockefeller Brothers, Inc(이하 RBI)의 투자였다. 1958년 RBI는 Itek 주식을 주당 2달러에 매수해 1961년 5월까지 장외시장에서 주당 60달러에 매도했다. 1957년 ARD는 MIT 링컨 연구소의 자회사인 Digital Equipment Corporation(이하 DEC)의 지분 70%를 대가로 7만달러를 투자했는데, 1966년에 DEC가 IPO를 할 당시 ARD의 DEC 지분 가치는 3850만 달러(연평균100% 수익률)로 향상했다. 곧 파산한 Itek과는 다르게 DEC는 계속해서 성장했고, 1970년에는 기업가치가 3억 5천만 달러로 늘어났다. DEC는 벤처캐피탈이 향후 미국 경제를 이끄는 핵심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기존 학자들의 주장을 입증했다.


1958년에 드레이퍼는 미국 서부지역 최초의 벤처캐피탈로 알려져 있는 DGA(Draper, Gaither & Anderson)를 설립했다. 1961년에는 뉴욕의 투자은행 하이든스톤 출신의 록과 데이비스가 ‘데이비스앤록’을 설립했다. 록은 페어차일드의 초기 투자자이기도 했다. 1972년에는 KPCB(Kleiner Perkins Caufield & Byers)가 설립되고, 발렌타인에 의해 세콰이어캐피털이 설립되면서 실리콘밸리의 벤처캐피탈은 황금기를 맞게 된다. KPCB는 휴렛팩커드와 탠덤컴퓨터 투자로, 세콰이어캐피털은 아타리 투자로 대성공을 거뒀다(1972년에 설립된 아타리의 직원 중 한 명이 바로 ‘스티브 잡스(Steve Jobs)’였다).


'투자가 아니라 육성이 성공의 관건’

미국 벤처캐피탈의 성공 비결은 ‘투자’가 아니라 ‘육성’에 있었다. 자금을 공급하는 일보다, 경영진을 구성하고 적절한 자문을 제공함으로써 회사를 키우는 일이 우선이었다. 도리오에 따르면, 벤처캐피탈 업무의 본질은 자금을 공급해 주는 것이 아니라, 동고동락하면서 기업이 스스로 일어설 수 있도록 키우는 것에 있다.


잡스가 처음 세콰이어캐피털을 방문했을 때 발렌타인은 페어차일드 출신의 마쿨라를 애플의 초기 경영진에 합류시킬 것을 권유했다. 마쿨라는 페어차일드 출신으로 이미 부유한 엔젤 투자자이기도 했다. 그는 애플의 이사회 의장으로 재직하면서, 여러 벤처캐피탈과 기관투자자의 자금 유치를 주도했고 아직 경영의 경험이 부족한 젊은 잡스와 워즈니악의 역할을 보완했다.


예상되는 시장 규모와 마켓 캡은 투자 수익률에 큰 영향을 미치는데, 이는 기본적으로 경영진의 글로벌 시야에 제약 당한다. 글로벌 시장을 전제로 사업을 구상하고 그에 합당한 전략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창업가가 그에 적합한 시야와 경영 능력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그게 아니라면 최소한 벤처캐피탈이 경영진을 새롭게 구성할 수 있어야 한다.


경영은 창업가의 열정 또는 한정된 능력만으로 성공시킬 수 있는 만만한 대상이 결코 아니다. 에디슨 제너럴 일렉트릭은 창업가 에디슨의 고집으로 경영난에 빠진 뒤 JP모건의 자금 수혈을 통해 톰슨휴스톤전기회사에 합병 당했다. 그 뒤 에디슨은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고 회사는 찰스 코핀의 주도 하에 오늘날의 GE로 성장했다.



출처:

1) 머니투데이, 2015. 1. 18. 벤처캐피털의 역사를 통해 본 혁신의 방향, 송경모 미라위즈 대표 https://news.mt.co.kr/mtview.php?no=2014122316427176799


2) 한국벤처투자 조사분석팀 배승욱 연구위원, 미국벤처캐피탈의 역사 및 시사점, 2019. 06.

-상기 글 중요 참조 문헌

3) Martin Kenney(2011), How venture capital became a component of the US National System

of Innovation.

4) Hervé Lebret, A History of Venture Capital, 2007. 1. 4.

https://www.slideshare.net/lebret/a-history-of-venture-capita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