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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처생태계의 스케일업과 패러다임 변화

강준영 & 김혜진

by 조영필 Zho YP

벤처생태계의 스케일업(scale-up)과 패러다임 변화, 산은조사월보, 2019.11, 제768호, KDB미래전략연구소 미래전략개발부 강준영 & 김혜진.



요약

... 우리나라의 ‘벤처기업’은 여전히 중소기업 일부로 설명되는 반면 해외의 ‘스타트업’은 규모와 관계없이 ‘새로운 제품이나 서비스를 만들고 빠르게 성장하는 기업’으로 정의된다. 이들 스타트업은 전통산업을 AI를 활용 하여 재해석함으로써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고 있다. 또한, 경쟁사보다 먼저 사업 규모를 키우기 위해 자원을 비효율적으로 쓰는 위험도 감수하는 ‘블리츠스케 일링(Blitzscaling)’이 새로운 비즈니스 방법론으로 대두되고 있기도 하다. 다른 한편에서는, 제때 투자하기 위해 핵심절차로 여겨지던 재무분석 기반의 가치 평가마저 생략하고 ‘투자의 속도’를 확보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I. 머리말


4차 산업혁명이 본격화되면서 미국을 비롯한 해외에서는 유니콘, 데카콘 등 거대기술기업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으며 이들은 기존에 없던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고 있다. 그리고 이들 혁신기업의 성장에 대해서는 놀랄 만큼 빠른 속도로 성장 자금을 규모로 공급하는 초대형 벤처투자자본이 뒷받침하고 있다. 이러한 기술기업 및 벤처투자자본 형화의 이면에서는 “AI를 지배하는 자가 세상을 지배할 것”이라는 AI 중심 경제, 산업 재편에 대한 공감대가 동인(動因)으로 작용하고 있다...



II. 벤처생태계의 분류 및 개념


1) 미국에서 초기 창업기업은 'Early stage startups'; 2) 1981년 David Birch가 업력 제한 없는 개념으로 처음 사용


... 스타트업은 ‘매우 빠르게 성장하도록 디자인된 기업’이라고도 했다. 이러한 사전적, 정성적 개념을 사후적, 정량적으로 구분한 것이 ‘스케일업 기업’이라 할 수 있겠다...


벤처생태계의 또 다른 축인 벤처투자자본은 이름 그대로 벤처기업, 즉 스타트업에 자금을 투자하는 자본이다. 다만, 단순한 투자에 그치지 않고 스타트업 육성 역할도 담당한다. 우선, ‘비즈니스 인큐베이터(Business incubator)’는 스타트업에 사무공간 등 인프라를 제공하는 사업자를 말한다. 이는 Joseph Mancuso에 의해 1959년 뉴욕에서 개설된 바타비아 산업센터(Batavia industrial center)가 저렴한 공간을 제공하면서 시작되었다. 한 지붕 아래 여러 사업체가 모이면서 커뮤니티가 형성되었고 지식, 노하우 공유의 장으로 발전하였다. 다만 사무공간 등 하드웨어 지원에 중점을 두었고 자금 지원은 금융회사에게 소개 또는 중개해주는 역할에 그쳤다는 한계를 가졌다.

반면 2005년 설립된 Y-Combinator를 시초로 하는 '액설러레이터(Accelerator)는 경영, 기술 컨설팅 등 소프트웨어적인 지원과 창업자금 지원도 하는 투자육성 회사이다. Y-Combinator는 스타트업 사업소개의 장인 ‘데모데이(Demo day)’를 여는 것 으로 유명하다. 이 자리에서 매년 약 300개 팀을 선정하고 이들 기업에 대해 7%의 지분을 받는 대신 12만달러씩 지원한다. 뿐만 아니라, 3개월 동안 경영 전반에 대해 집중적으로 지도하기도 했다. 이 과정을 마친 다수의 스타트업은 벤처캐피탈로부터 후속투자를 유치했으며 지속적인 졸업생 간의 네트워킹을 통해 에어비엔비, 드롭 박스, 스트라이프 등 유니콘으로 성장해 갔다.

근래 들어 액셀러레이터가 전 세계적으로 빠르게 확산하는 등 주목받고 있지만, 규모나 역사 측면에서 벤처투자자본의 본류는 여전히 ‘벤처캐피탈(Venture capital)’ 이라 할 수 있다. 벤처캐피탈이라는 용어는 1929년 미국 공황 이후 자금난을 겪는 기업에 투자하는 자본의 의미로 쓰이기 시작했다. 1938년 1월 13일자 Wall Street Journal은 ‘수익에 한 보상이 확실하지 않은 투자자본’이라고 소개하기도 했다.

이러한 개념 논의에서 나아가 현대적인 벤처캐피탈의 시작은 1946년 미국에서 설립된

ARDC(American Research and Development Corporation)로 알려져 있다. 이는 ‘자금을 모집’하여 ‘신기술 기업에 투자’한 최초의 사례였다. 이후 1960년대를 거치면서 재무적 투자자인 소수의 유한책임사원(Limited patner)으로부터 자금을 모집하여 무한책임사원(General partner)이 운용사로서 투자를 전담하는 사모(私募)펀드 형태가 정립되었고, 벤처캐피탈이 사모펀드 형태를 주로 활용하면서 오늘날 벤처캐피탈 이라는 용어는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사모펀드’로 인식되고 있다. 한편, ‘엔젤캐피탈(Angel capital)’은 예비창업자, 초기창업자에 투자하는 자금력 있는 개인 또는 개인들의 모임을 말한다. 근래 들어 엔젤캐피탈은 액셀러레이터로 전환하는 양상이다.




III. 해외벤처 비즈니스, 투자 트렌드


... 2001년 미국 유타주에 모인 17명의 소프트웨어 과학자들은 고객 니즈의 민첩한 반영을 위해 Agile 방법론을 제안하였다. 이 방법론은 일반원칙으로 절차와 도구, 포괄적 문서화, 계약과 협상, 계획준수보다는 개성과 상호작용, 산출물의 작동 자체, 고객과의 협력, 민첩한 변화 응을 중시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또한, 이러한 일반 원칙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시행착오와 개선’을 핵심 프로토콜로 제안 하였다. 이것은 완벽한 제품을 한 번에 만드는 것이 아니라 시제품을 만들어 공개하고 피드백을 지속 반영하는 절차를 말한다...


... 최근에는 속도경영에 대한 새로운 개념으로 ‘Blitzscaling’이 더욱 주목받고 있다. 이 개념은 LinkedIn의 창업자, Reid Hoffman에 의해 2016년에 제안된 것으로, 진격, 기습을 뜻하는 ‘blitzkrieg’와 성장을 뜻하는 ‘scaling’이 합쳐진 조어(措語)이다. 불확실한 상황에서 기업을 성장시키려면 효율보다 속도를 우선해야 한다는 것이 핵심 아이디어로, 경쟁사보다 먼저 사업 규모를 키우기 위해 자원을 비효율적으로 쓰는 위험도 감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Reid Hoffman은 한 강연에서 “절벽에서 떨어 지고 있는 동안 비행기를 조립하라. 날개 조립만으로는 부족하며 제트엔진까지 장착 하라”라고 설명했다...

... 실제로 대표적인 데카콘인 우버 (Uber)는 사업초기 새로 고용한 엔지니어에게 “이전 직장에서 함께 근무한 엔지니어 중 가장 뛰어난 세 명은 누구입니까?”라고 묻고는 어떠한 인터뷰, 이력 조사도 하지 않고 그들을 채용했다. 즉, 우버는 성장을 위해 기술 역량을 빠르게 확보해야 했고 이를 위해 ‘비합리적인 인적자원 운용’도 감수했다.


자료: Reid Hoffman, Chris Yeh (2018), "Blitzscaling"


... 스타트업이 Big market에 진입할 수 있게 된 이유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2018년 4월 EU집행위원회는 증기기관 및 전기와 마찬가지로 AI를 세상을 변화시킬 기술로 지목하였다. AI는 그 자체로도 중요하지만, 전통산업을 새로운 형태로 재창조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모빌리티에 AI 기술을 결합하면 자율주행 기술로 변화하며, 제조 분야의 경우 지능형 팩토리, 에너지 분야의 경우 지능형 전력망 또는 스마트 시티 등으로 변화한다.



변화’는 ‘새로운 시장이 창출’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스타트업은 지배사업자의 견제 없이 거대시장을 선점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유니콘을 넘어 데카콘이 된 우버는 전통적인 운송 중개, 즉 렌터카 사업에 AI를 접목하여 차량공유라는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였다. 또다른 데카콘인 위워크(Wework)는 입주자의 감성 니즈를 자극하면서 최적의 사무공간을 만들어 내었다. 그들은 부동산 임대업을 재해석하면서 오피스 임 업의 스타벅스를 표방한다고 했다...

한편, AI 비즈니스로의 전환이 스타트업에게 있어 항상 기회인 것만은 아니다. 과거 인터넷, 모바일 비즈니스 시 에는 누구나 아이디어만 있으면 손쉽게 앱(App) 프로그램을 만들어 사업화할 수 있었다. 이러한 모델은 투자비용이 적었고 기술 난이도 역시 그다지 높지 않았다. 그러나, AI 기술의 경우 데이터의 수집 및 처리에 엄청난 전산자원이 필요하다. 또한, 높은 기술난이도로 인해 기술인재의 영입이 필수적이다. 이는 투자비용의 급증으로 연결되기 때문에 AI 비즈니스는 스타트업에 있어 새로운 기회인 동시에 현실적인 진입장벽으로 작용하게 되었다.

무엇보다 AI 인재 영입의 중요성과 엄청난 영입비용이 두드러진다. 이와 관련하여 구글(Google)과 페이스북(Facebook)의 딥마인드(DeepMind) 인수전이 자주 언급된다. 2014년 1월 구글은 딥마인드를 6억달러에 인수했다. 딥마인드는 2010년 11월에 Demis Hassabis에 의해 설립된 AI 개발기업으로, 별다른 개발성과나 사업모델이 없던 상황이었다. 그렇지만 딥마인드에는 10명의 정상급 개발자가 있었으며 구글은 이들의 영입에 거액을 투자한 것이다. 주목할 점은 구글보다 먼저 페이스북이 딥마인드 인수전에 나섰지만 실패했다는 사실이다. 구글의 승리로 끝난 이 사건은 구글과 페이스북의 운명을 바꾼 사건으로 회자되고 있다. 2016년 3월 결코 인간을 능가할 수 없을 것이라는 예상을 깬 AI, 알파고(AlphaGo)가 등장했으며 이후 구글의 모든 사업에 AI가 접목되고 있다. 반면, 페이스북은 여전히 사람과 사람 사이의 연결에 집중하는 플랫폼 구축과 광고 영업에 주력했다. 결국, 개인정보 유출 논란에 휘말리면서 주가가 폭락하였고 미래 성장성에 대한 의문마저 제기되는 상황이다.


앞서 살펴본 Y-Combinator는 업종도, 사업화 단계도 다른 300개 기업에 해 7% 지분을 받는 대신 12만달러를 지원했다. 이는 선정된 기업들에 대해 가치평가 없이, 동일한 기업 가치평가를 적용하여 투자한다는 것과도 같다. ‘기업 가치 평가 없이 신속하게 투자한다’라는 개념은 실리콘밸리에는 이미 보편화 되어 있다. 2013년 Y-Combinator가 창안한 ‘미래지분을 위한 간단 계약(SAFE, Simple Agreement for Future Equity)’은 투자자와 창업자의 미팅 바로 다음날 투자자금 입금을 가능 하게 하는 방식으로도 유명하다. 최근에는 국내 시장에서도 주목받고 있으며, 이로 인해 ‘조건부지분인수계약’이라는 이름으로 법제화 및 도입이 추진되고 있다.

SAFE는 투자자에게 장래에 지분을 취득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는 증권형태의 투자방식으로, 투자 계약시 신주 발행가액에 한 최소한의 조건만 결정하고 취득할 주식의 발행가액, 즉 가치평가와 세부적인 투자조건 결정은 미래로 이연시킨다. 이를 통해 투자조건 협상과 계약서 작성 등에 드는 시간과 법률비용으로 말미암아 제때 투자하지 못하는 문제를 방지한다. 다만, SAFE는 그 이름과도 같이 5페이지 이내로 이루어진 간단 계약으로 주주, 채권자 등 이해관계자가 많지 않아 법률관계가 단순한 경우에만 활용할 수 있다는 제약이 있다.


자료 : ycombinator.com

이 계약의 주요 구성 요소로는 후속사건(Events), 평가 상한(Valuation cap), 할인율(Discount rate)이 있다. 먼저, 후속사건은 SAFE 형태로 투자한 이후 미뤄두었던 투자조건을 결정하는 시점을 말하며, 구체적으로는 후속투자, 기업공개, 인수합병 등 가치평가가 수반되는 사건을 의미한다. 후속사건이 발생하면 SAFE 투자자에게 자동으로 신주를 전환할 수 있는 권리가 발생하며, 이때 투자자가 권리를 행사하면 최초 투자금(Purchase amount)에 대해 조정된 전환비율로 신주가 발행된다... 일반적으로 평가 상한과 할인율은 불확실성이 높은 창업초기 단계에 투자하는 SAFE 투자자에게 후속사건 투자자보다 낮은 가격으로 투자할 수 있게 한다는 측면 에서 그 본질이 같다.




IV. 패러다임 변화와 국내 벤처투자의 현실


... 속도와 규모의 투자 소프트뱅크 손정의 회장은 1995년에 27세의 Jerry Yang을 만나 피자와 콜라를 먹으며 얘기를 나눈 뒤 1억 5천만달러를 투자했으며, 2000년에는 마윈의 비전에 공감하여 단 6분의 면담으로 2천만달러를 투자하기도 했다.

... 근래 들어 손정의 회장의 투자는 속도 보다는 규모가 더욱 부각되고 있으며, 그 중심에는 1,000억달러 규모의 소프트뱅크 비전펀드(이하 “비전펀드”)가 있다. 2017년 설립된 비전펀드는 사우디아라비아와 일본의 자본을 바탕으로 하고, 영국 런던에 거점31)을 둔 다국적 투자자본이다. 이 펀드는 결성 당시 미국의 벤처투자 규모의 1년 3개월 치에 해당했으며 기존 최대였던 블랙스톤 펀드(2006년 설립)의 217억달러를 크게 뛰어넘는 규모로, 스타트업 투자의 패러다임을 변화시킨 일대 사건으로 평가되었다. 비전펀드는 투자 대상의 선별에 있어 ‘이익창출 능력’이 아닌 ‘규모에 기반을 둔 시장지배’를 중요시했다. 이는 앞서 살펴보았던 Blitzscaling의 지향점과도 맞닿아 있다고 하겠다. 구체적으로는 글로벌 성장 잠재력을 갖추어 시장점유율이 50~80%에 이를 수 있는 기업을 대상으로 ‘성장에 충분한 자금’을 투자했다...

손정의 회장은 4차 산업혁명의 여러 핵심기술 중에서 AI를 모든 화두의 중심에

두고... 이러한 AI 중심 新시대의 실현방식으로 ‘군(群) 전략’을 제시하였다. 이 전략은 업계 최고들의 연합과 시너지만이 그의 비전인 ‘AI가 모든 사업을 재정의하는 세상’을 가능하게 하리라 믿고 비전펀드를 AI 분야 최고기업들의 ‘군(群)’으로 구성하겠다는 것이다. 그 결과 비전펀드는 앞서 나왔던 우버, 위워크 등 88개 스타트업에 엄청난 규모로 투자하였고 많은 경우 과점주주가 되었다…



손정의 회장 의 시각을 따르면, 이들 기업의 성공 여부는 ‘원가절감을 통한 이익전환’에 있는 것 이 아니라 ‘어떻게 AI를 적용하여 차이를 만들어 낼 것인지’ 또는 ‘비전펀드의 AI 군(群) 사이에서 어떠한 시너지를 창출할 것인지’가 판단 기준이 될 것이다.



기술이 촉발하는 경제사회 변화에 해서는 언제나 두 가지 시각이 존재했다. 과감한 투자와 ‘AI 기업이 모든 사업을 재정의하는 세상’이라는 비전을 이야기하는 손정의 회장의 시각과 달리 2019년 4월 The Economist는 유니콘을 고깔모자 쓴 조랑말로 비유했다. 2013년 Aileen Lee의 비유(상상의 동물 찾기만큼 어렵다)와는 달리 2018년 들어 유니콘이 드물지 않게 된 현실을 비꼰 것이다. 더구나, 이들 기업이 절벽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고 묘사하면서 ‘이익 없는 유니콘’의 지속가능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이렇듯 ‘기술이 촉발하는 현상’들에 대한 의심 어린 시각은 앞서 살핀 테크버블, 유니콘의 지속가능성 논란을 넘어 경제사회 전반으로 그 범위가 확장되고 있다. 근래 들어 미국에서는 ‘테크래시(Techlash)’라는 용어가 시대의 화두로 부상하고 있다. 이 단어는 기술(tech)과 역풍(backlash)의 합성어로 기술 변화에 대한 반발심 또는 견제가 나타나는 사회현상을 말한다. ‘고임금 기술기업 집중으로 실리콘밸리 지역의 주거비용 급증에 따른 노숙자 증가 및 시위 확산’, ‘아마존의 독과점(Amazon effect)에 따른 규제 도입 논의’, ‘개인정보 남용 의혹으로 2018년 4월 페이스북 CEO인 Mark Zuckerberg의 미국 의회 청문회 출석’, ‘유럽의 디지털세(구글세) 도입 추진’ 등이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