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갈문왕고

今西龍, 이부오 역

by 조영필 Zho YP

今西龍(1922), 新羅 葛文王考, 藝文 (13/5).

[번역] 이부오(2004), 신라 갈문왕고(今西龍), 신라사학보(2), pp. 248-265.



금서룡은 갈문왕이 異姓 追封王이라는 기존설을 부정했다. 이는 원래 왕의 살아있는 유력한 친족에 대한 位號였는데 중고기에는 추봉 왕호를 겸하다가 하대에 추봉왕으로 변했다는 것이다.(이부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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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상대에는 왕의 아버지, 왕비의 아버지, 왕의 외조부 등이 갈문왕 칭호를 가진 경우가 많다.

(1) 日知갈문왕

儒理이사금의 장인이다. 혹은 逸聖이사금의 아버지라는 설도 있다. 단<삼국유사> 왕력편에 "일성이사금은 아버지가 弩禮王(유리를 가리킨다)의 형 혹은 祗摩王이라 한다. 妃는 △禮부인으로서 日至갈문왕의 '父'('女'의 착오가 아닐까)이다. △△△禮부인은 지마왕의 딸이다. 어머니는 伊刊生부인으로 혹은 △△왕의 부인 朴氏라 한다"


(2) 許婁갈문왕

婆娑이사금의 妃인 金氏 史肖부인의 아버지라 한다. 혹은 유리왕의 비로서 박씨 허루왕의 딸이라는 일설도 있다.


(3) 摩帝갈문왕

지마의 비 김씨 愛禮부인의 아버지라고 한다....(손목의 <계림유사>에서는 머리를 麻帝라고 했다).


(4) 阿道갈문왕

일성이사금 15년에 박아도를 갈문왕으로 봉했다고 한다.... 일성왕의 장인으로서 阿多羅王의 외조부인 박씨 支所禮王과 아도는 혹은 동일인이 아닐까....(지소례왕은 허루왕과 마찬가지로 歷代 중에 이름이 보이지 않는다).


(5) 骨正갈문왕

<삼국사기>에는 혹은 忽爭갈문왕으로 표기한다고 되어 있다. 伐休이사금의 아들로서 助賁이사금과 沾解이사금의 아버지라 한다. <삼국사기>에 "전왕(벌휴)의 태자 골정과 둘째 아들 伊買가 먼저 죽고 太孫이 아직 幼少하여 이매의 아들을 세우니, 그가 奈解이사금이다"라고 했다. 태손이라는 것은 두 아들 조분·첨해 중에서 조분을 가리킬 것이다. 이 사서에서 조분이사금은 내해이사금의 사위라는 조건 때문에 내해의 유언에 따라 즉위했다고 기록되었다.... <삼국사기>에서는 첨해왕이 즉위하고서 아버지 골정을 봉해 世神갈문왕으로 삼았다고 한다.


(6) 仇道갈문왕

골정갈문왕의 장인으로서 조분이사금과 첨해이사금의 외조부이다. 또한 김씨 시조왕인 味鄒이사금의 아버지이다. <삼국사기>에서는 미추이사금 2년에 아버지 구도를 봉해 갈문왕으로 삼았다고 한다.


(7) 伊柒갈문왕

미추이사금의 외조부로서 박씨이며, <삼국유사>에는 伊非갈문왕으로 되어 있다.


(8) 奈音갈문왕

儒禮이사금의 외조부로서 박씨이다. 유례왕은 조분의 장자라 하고 조분의 비 阿爾兮부인은 내해왕의 딸이므로 그(유례왕)의 외조부는 내해왕이 아닐 수 없다. 따라서 이를 내음이라고 하는 것은 기사에 모순을 보인다.


(9) 巴胡갈문왕

<삼국사기>에서 慈悲마립간의 비는 舒弗邯 未斯欣의 딸이며, 자비마립간의 아들 炤知마립간條에도 그 어머니를 서불한 미사흔의 딸이라 했다. 그리고 <삼국유사>에도 자비왕비는 "파호갈문왕 혹은 未叱希각간의 딸"로 되어 있다... 일본사에서 微叱己知波珍干岐 혹은 微叱許智伐旱이라고 표기되는 인물이다.... 珍의 옛 訓이 突의 字音에 가까웠던 것은 신라 고지명 연구에 의해 확실해졌다.... 이 사람을 美海라고 표기한 것은... 파호는 미사흔의 형인 卜好인 것 같다. 복호는 <삼국유사> 본편에는 寶海라고 되어 있다.


(10) 期寶갈문왕

<삼국유사>에서는 소지마립간의 장인을 기보갈문왕이라 했는데, <삼국사기>에서는 乃宿이벌간이라 했다. 또한 <삼국유사>에서는 智證마립간의 아버지를 訥祗王의 동생 기보갈문왕이라 했다. 그런데 기보는 奈勿王의 아들로서 눌지·미사흔·복호와 형제관계이다.


(11) 習寶갈문왕

<삼국사기>에서는 지증마립간의 아버지로서 내물왕의 손자라고 한다. 그렇다면 눌지왕의 조카가 된다. 눌지에게는 미사흔·복호 외에 다른 형제가 있었던 것이 아닐까 한다. <삼국유사>가 지증왕의 아버지라고 한 기보는 혹은 습보의 아버지라고 추정할 수 있다. <삼국유사> 異次頓 기사에서 元和 연간에 南澗寺 승려 一然이 지었다는 촉향분례불결사문을 인용하는 중에 이차돈의 증조부를 습보갈문왕이라 했다. 같은 책 注에 인용된 김행용 찬 아도비문에서는 이차돈의 증조부를 乞解대왕이라 했다. 걸해대왕은 내물의 前王이므로 <삼국사기>의 습보와는 시대가 맞지 않는 전혀 별개의 인물이다.


(12) 立宗갈문왕

眞興王의 아버지로서 法興王의 동생이다. 즉 지증왕의 아들이며 眞平王의 외조부가 된다.


(13) 福勝갈문왕

진평왕비 김씨 摩耶부인의 아버지로서 善德女王의 외조부이다.


(14) 飮갈문왕

<삼국유사> 왕력편에서 선덕여왕의 남편이라 했다.


(15) 國飯갈문왕

진평왕의 동생으로서 眞德女王의 아버지이다. <삼국사기>에서는 혹은 國芬이라 했으며, <삼국유사>에서는 國其安으로 되어 있다.


(16) △△△갈문왕

진덕여왕의 외조부이다.


(17) 文興갈문왕

太宗武烈王이 아버지 伊干 龍春을 추봉한 것이다.... <삼국유사>에서는 卓文興갈문왕이라 했으나 '卓'의 글자 뜻을 풀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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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아버지 : ★ ★ ★ ★ ★ ★ ★ ★

왕의 장인 : ★ ★ ★ ☆ ★ ★ ★ ★

왕의 외조부 : ★ ☆ ★ ★ ★ ★ ★ ★ ★

여왕의 배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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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의 아도갈문왕은 지소례왕과 동일인으로 추정할 수 있으니....


왕의 아버지로서 갈문왕을 칭했다는 기록이 보이지 않는 경우는 (a) 파사왕의 아버지라는 설이 있는 奈老, (b) 벌휴의 九鄒각간, (c) 내해의 伊買, (d) 基臨의 乞淑用干(각간)..(d) 訖解의 于老각간, (e) 내물의 末仇각간, (g) 實聖의 大西知각간, (h) 진평의 銅輪 등이다.

왕의 장인, 즉 왕비의 아버지로서 이 칭호가 보이지 않는 경우는 (a) 자비의 미사흔, (b) 소지의 이벌간 내숙, (c) 지증의 이벌간 登欣, (d) 법흥왕의 朴氏, (e) 眞智의 朴起烏公 등이다. 文武王 또한 그 장인 金舒玄(문무왕의 외조부이며 무열왕의 장인?)을 추봉하지 않았다.(김유신은?)

왕의 외조부로서 이 칭호가 없는 경우는 (a) 실성의 昔登保阿干, (b) 소지의 미사흔, (c) 법흥의 登欣, (d) 진지의 英失 등이다.

또한 왕의 조부로서 이 칭호가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왕의 아버지에게는 갈문왕 칭호가 없고 장인에게는 이 칭호가 있는 사례도 있다. 진평왕의 아버지가 동륜태자이고 장인이 갈문왕 승복(복승?)인 경우가 그것이다. 내해이사금의 경우도 아버지는 伊買이고 비는 助賁이사금의 누이인데, <삼국사기>에 의하면 조분의 아버지 골정은 갈문왕이다. 그렇지만 골정이 갈문왕이 된 것은 혹은 조분이사금代라고도 볼 수 있으므로 이 사례에 들어가기 어렵다.

또한 하대에 갈문왕으로 기록된 경우가 한 사람 있다. <삼국사기>에서 僖康王의 비 文穆부인의 아버지를 갈문왕 忠恭으로 기록한 것이 그것이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추봉되었다고 인정할 만한 인물로 골정갈문왕과 국반갈문왕이 있다. <삼국유사>가 문흥대왕을 문흥갈문왕이라 한 것도 바로 추봉의 사례이다. 생시의 봉호였다고 짐작되는 사례로 아도갈문왕이 있다. 기타 대다수는 어느 쪽에 속하는지 명확하지 않다.

갈문왕 칭호에 시호를 덧붙였다는 기사는 첨해왕이 아버지 골정을 추봉해 世神갈문왕으로 삼았다는 예가 있다. 그렇지만 신라 상고기에 왕에게 시호를 올리는 것 같은 전례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상고기·하고기의 국왕이름은 생시의 美稱에 지나지 않는다..... 국왕조차 시호를 가지지 못한 것이다.... 추봉과 같은 사상과 전례가 있었다면, 이런 예우를 받지 못한 왕의 친족이 너무 지나칠 정도로 많았던 셈이다.... 무열왕이 추봉한 문흥왕도 세간에서는 문흥갈문왕으로 불렀으리라 짐작된다.


현존하는 창녕 진흥왕 순수관경비에는 갈문왕이라는 글자가 있다.... 갈문왕은 당시 하례하던 신라 貴人 중에서 최고이며 특수한 位에 있었던 사람일 것이다. 이미 죽은 자를 이렇게 기록했다고는 생각할 수 없다.... 또한 <삼국사기>·<삼국유사>에 의하면, 상고기에 역대 왕으로도 기록되지 않고 갈문왕으로도 불리지 않은 3왕이 있다. (1) 허루왕, (2) 마제국왕, (3) 지소례왕이 그들이다... 허루왕이라는 것은 차라리 보통명사로 취급해야 할 것이다.... 許婁는 葛과 같은 것이다. 허루왕은 '갈문왕'에서 '文'字가 생략된 것이 지나지 않는다... 國이라는 말은 아마 전국시대에 동방으로 전해져 고구려·신라에서는 忽 등의 글자를 빌어 표시하는 말이 되고...忽은 현대의 음이 hul이지만, 古音이 kol이었다는 것은 <삼국사기>에서 骨正을 忽爭으로도 쓴다고 한 점에서 명백하다.


마제국왕의 '國'은 갈문의 '葛'[kal]이 국이라는 말 kol에 가까운 점 때문에 끼워 넣어진 것 같다....


... 葛 kal 자를 빌어 표시한 말은 骨 kol 자를 빌어 표시한 친족 가족의 뜻을 가진 말일 것이다. 즉 骨品의 骨로 볼 수 있다.... 갈문왕의 '王'자는 중고기에 한자의 사용이 유행할 때, 법흥왕이나 진흥왕 때쯤 한역된 것으로서, 백제에서는 '君'자를 사용하고 일본에서는 '雞彌 '[님]라 칭하고 신라에서는 '錦' 혹은 '今'의 假字를 사용해 말을 만들었을 것이다.


백제 蓋婁王·蓋鹵王의 이름은 [<일본서기> 웅략천황 5년 4월에 나오는] 加須利인데....許婁는 백제의 己婁와 같은 말로서...

.... 假字로서 勿·彌가 서로 통용되며 (加洛 居叱彌王을 今勿王으로도 표기한다), 勿·文 또한 통용된다...


... 왕의 친족으로서 이 位號가 없던 자 중에는 일찍 사망해 이를 받지 못한 자도 있었을 것이다. 진평왕의 생부 동륜태자 같은 경우는 혹은 이 중 한 사람이 아닐지, 혹은 중국풍으로 태자에 추봉되었기 때문에 갈문왕 칭호를 전하지 않는 것인지 또한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또한 신라의 假字法을 보면 '文'의 자음을 표시할 때 訓 없이 '汶'자를 사용한 경우가 있다. '葛'은 支所禮王의 '支所禮'에 가깝고 '文'의 訓 kul이 吉士의 '吉'에 가까운 사실에 주의해야 한다.... 伊梨柯須彌를 泉蓋蘇文이라고 표기하므로 '文'이 '彌'라는 것은 유래가 오랜 것이다.

끝으로 kol, kal이란 말의 변이에 대해 소견을 밝혀보면, 이 말은 '氏'에 해당될 수 있을 것이다. 崔世珍의 <훈몽자회>에서는 氏를 kak-si로 풀이했다...




감상:

100년이 지난 지금 보아도 (신라의 새로운 금석문의 발견을 감안할 때) 설득력이 높고, 통찰력이 대단한 명논문임.


이 논문 이후로 신라3비의 발견이 있고 삼국유사 파른본의 발견이 있어 갈문왕에 대한 정보가 조금 더 추가되었다. 그것은 지도로갈문왕이다. 그는 비부가 아니면서 또는 추봉되지 않고 갈문왕이었고 또 갈문왕에서 왕이 되었다. 또 비부로서의 갈문왕이 최소 1인이 더 추가되었다.

갈문왕은 원래 추봉에서 출발하여 이후 형제에게도 부왕으로서 자격을 부여하는 것으로 발전하였다. 형제를 사위 삼아, 자신의 부의 직계로만 왕위계승을 단속한 것이 성골주의이다. 성골이란 말 자체가 불교적이어서 진평왕대의 산물이다. 그것은 아마도 진지왕계를 배제하기 위한 것이고 진지왕을 폐위시킨 세력간 모종의 합의이었다. 그러나 여성의 왕위계승에는 이견이 있어 칠숙의 난, 비담의 난 등의 정변을 겪어야 했다. 그것은 가야계의 성장에 대한 신라 정통 골품 세력 내부의 경계심 또한 작용했을 것이다.

백제와 고구려의 강력한 압박이라는 내우외환의 과정에서 이를 돌파하기 위해서도 무열왕은 그리고 진지왕계와 결합한 가야계는 삼국통일을 완수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이다.

갈문왕에서 ‘문’은 존칭어미이다. 그 자체로 님이 되는 ‘미’이다. 그러면 남는 것은 갈이다. ‘갈’을 骨로 새기면, 그것은 왕이다. ‘갈’을 空으로 새기는 일설이 있다. 이렇게 되면 부왕은 될 수 있다. 그러나 고대어에서의 용례가 없어 채택하기 힘들다. 이마니시는 ‘골몸’으로 추론하였다. ‘문’을 ‘몸’으로 보았다. 갈문은 매금과 쌍동이일 가능성이 있다. 갈문이 있음으로 인해 대왕이라는 매금이 성립되기 때문이다. 나는 갈문은 왕의 지표라고 생각된다. 그리고 왕과 갈문의 결합만이 왕을 낳을 수 있으며, 자신의 부가 왕이나 갈문이 아니었을 경우에는 새로 갈문으로 추봉함으로써 새로운 적통의 표지를 만드는 것으로 생각된다. 갈문은 골brand(님)이다. (2024. 12.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