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균, 쇠

재러드 다이아몬드

by 조영필 Zho YP

총, 균, 쇠




61쪽: 우리 조상들의 사냥 기술은 처음에는 아주 한심한 수준이었다가 서서히 향상되었으므로 동물들에게는 인간에 대한 공포심을 진화시킬 시간이 넉넉했다. 그러나 도도새, 모아새, 그리고 아마 오스트레일리아 뉴기니의 거대 동물들은 진화의 측면에서 아무런 준비도 갖추지 못한 채 갑자기 잘 발달된 사냥 기술을 지니고 쳐들어온 현생인류와 맞닥뜨리는 불운을 당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오스트레일리아의 거대동물들이 오스트레일리아의 역사상 수천만 년에 걸쳐 무수한 가뭄을 겪으면서도 살아남았다가 어째서 공교롭게도 하필이면 최초의 인류가 도착한 시기에 거의(적어도 수백만년이라는 긴 시간 속에서는) 한꺼번에 죽어버렸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66쪽: 남북아메리카의 대형동물들은 이미 22회에 걸친 빙하기를 겪으면서도 살아남았다. 그런데 인간이 정말 무해했다면 왜 하필 스물세번째에 와서 대부분이 한꺼번에 멸종하게 되었을까?


110쪽: 피사로는 유럽의 해양기술 덕분에 카하마르카에 올 수 있었다... 배와 더불어 중앙집권적 정치조직도 필요했다.


121쪽: 가축들이 인간에게 먹거리를 제공하는 데는 네가지 방식이 있다. 고기, 젖, 비료를 주고, 쟁기를 끄는 것이다.... 오늘날의 미국인들은 동물성단백질의 대부분을 소, 돼지, 양, 닭 등에서 얻으며 사냥하여 잡은 사슴고기 따위는 어쩌다가 맛보는 별미일 뿐이다... 젖을 짜는 포유류에는 소, 양, 염소, 말, 순록, 물소, 야크, 그리고 단봉낙타와 쌍봉낙타가 있다... 쟁기를 끄는 동물에는 소, 말, 물소, 발리소, 그리고 야크와 소의 잡종 등이 있었다.


122쪽: 수렵채집민의 어머니가 야영지를 옮길 때는 몇가지 소지품과 함께 단 한명의 아이만을 옮길 수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먼저 태어난 아이가 뒤처지지 않고 부족을 따라갈 수 있을 만큼 걸음이 빨라질 때까지는 다음 아이를 낳을 수 없는 것이다. 실제로 유랑생활을 하는 수렵채집민들은 수유기의 무월경, 성적 금욕, 유아살해, 낙태 등을 통하여 4년정도의 터울을 유지한다... 농경민족의 산아간격은 약 2년으로 수렵채집민의 절반에 불과하다.


124쪽: 조세를 통하여 비축된 잉여식량이 있으면 왕이나 관료 이외의 전업식 전문가들도 부양할 수 있다... 그리고 기억력에 의존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정보를 정확하게 보존시켜주는 필경사 등도 먹여살릴 수 있다.

가축화된 일부 동물에게서는 동물성 섬유---특히 양, 염소, 라마, 알파카 등의 털과 누에의 명주실---를 얻었다. 가축화된 동물의 뼈는 야금술이 개발되기 전에 신석기 시대 사람들이 인공유물을 만들던 중요한 재료였다. 소가죽은 무두질하여 사용되었다... 가축화된 대형 포유류는 19세기에 철도가 개발될 때까지 육상운송의 주요 수단이 됨으로써 인간사회를 더욱 혁신시켰다... 가축화된 동물 중에서 타고 다닐 수 있는 것들은 말, 당나귀, 야크, 순록 그리고 단봉낙타와 쌍봉낙타 등이었다. 그 다섯종의 동물과 라마는 짐을 나르는 데에도 이용되었다. 소와 말은 마차를 끌었고 순록과 개는 북극지방에서 썰매를 끌었다... 고대전쟁에서 말의 군사적 역할은 지프나 셔먼 탱크에 필적하는 것이었다...(B.C. 4000년경) 안장도 없이 말을 타던 시대에도 말은 아마 인도유럽어를 쓰던 사람들이 우크라이나에서 서쪽으로 팽창한 배경이 된 군사적 요소였을 것이다. 그 언어들은 결국 바스크어를 제외한 초기 서유럽의 언어들을 모조리 대체하게 되었다... 말이 끄는 전차---B.C. 1800년경에 발명됨---도 역시 근동, 지중해 연안, 중국 등의 전쟁 양상을 혁신시켰다.


164쪽: 인간이든 동물이든 먹이를 구하기 위해서는 우선 자신의 노력을 어떻게 할당할 것인지에 대해 무의식중에라도 끊임없이 선호순위를 매겨보고 선택을 한다... 거의 1만 1천년전에 시작되었던 최초의 채소밭에는 야생먹거리를 구할 수 없을 경우에 대비하여 안정적인 먹거리 공급처를 확보해두는 일종의 보험과 같은 기능이 있었다는 주장도 있다.


167쪽~: 수렵채집보다 식량생산의 경쟁력이 더 커지게 만든 요인들은...

①야생먹거리가 감소한 일이다.

②야생동물이 감소하면서 수렵채집생활의 보상이 줄어들었던 것과는 반대로 작물화할 수 있는 야생식물이 증가하면서 식물의 작물화에 따르는 보상이 많아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③식량생산에 필요한 각종기술---야생 먹거리를 채집, 가공, 저장하는 기술---의 계속된 발전이었다.

④인구밀도의 상승


176쪽: 무수한 식물들의 열매가 특정 동물에게 먹혀 퍼뜨려지는 일에 적응했다. 딸기가 새들에게 적응한 것처럼 도토리는 다람쥐에 적응했고, 망고는 박쥐에, 그리고 일부 사초(莎草)류는 개미에 적응했다.


177쪽: 우리가 씨앗을 뱉는 자리와 쓰레기장도 배설 장소와 더불어 최초의 농업연구소였던 셈이다.


181쪽~: 야생식물이 농작물로 진화되는 과정에서 생기는 변화에 대해 지금까지 설명한 것들은 초기 농경민들이 실제로 확인할 수 있었던 특성들---열매의 크기, 쓴맛, 과육의 양, 기름, 섬유의 길이 등---이었다... 그러나 그밖에도 열매를 따는 사람들이 눈으로 확인하고 선택하지 못했던 중요한 변화가 적어도 네가지는 있었다.


①많은 식물들이 종자를 분산시키기 위한 특수기법을 갖고 있다. 그러한 기법을 갖추지 못한 돌연변이 종자들만이 수확되어 농작물의 선조가 되었을 것이다.

②많은 한해살이 식물들이 발아억제물을 이용하여 위험을 분산시키는 방향으로 진화되었다... 종자를 두꺼운 껍질이나 외피로 감싸는 것이다. 그렇게 적응한 많은 야생식물 중에는 밀, 보리, 완두콩, 아마, 해바라기 등도 포함된다... 이따금씩 나타나는 돌연변이 개체들에는 종자의 두꺼운 외피를 비롯한 발아억제물이 없었다. 돌연변이들은 모두 신속하게 발아하여 다시 돌연변이 종자들이 수확된다.

③혼자서 생식하는 식물의 경우에는 돌연변이도 자동적으로 보존된다... 어떤 돌연변이 개체는 가루받이를 하지 않아도 열매를 맺는다. 씨없는 바나나, 포도, 오렌지, 파인애플 등이 그렇게 생겨난다. 또 어떤 돌연변이 자웅동주 식물은 불화합성을 잃어버리고 자화수분이 가능하게 되었다. 그러한 과정의 사례로는 서양자두, 복숭아, 사과, 살구, 체리를 비롯한 많은 과일나무들이 있다. 포도는 암컷개체와 수컷개체로 분리되어 있는 것이 정상인데 어떤 돌연변이는 자화수분을 하는 자웅동주가 되었다.


187쪽: 1만년전에 작물화되었던 밀, 보리, 완두콩을 비롯하여 비옥한 초승달지대 최초의 농작물들은 각기 많은 이점을 가지고 있던 야생조상으로부터 생겨났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 조상식물들은 이미 먹을 수 있었으며 야생상태에서도 수확령이 많았다. 재배하기도 쉬워서 그냥 뿌리거나 심는 것으로 충분했다. 성장속도도 빨랐으므로 뿌린 후 몇 달만에 추수가 가능했다... 저장하기도 간단했다. 그리고 대부분이 자화수분 식물이었다... 마지막으로 그 야생조상들은 약간의 유전적 변화만 일으켜도 금방 농작물이 될 수 있었다.


농작물 개발의 다음단계에는 B.C. 4000년경에 작물화되었던 최초의 과실수 및 견과수들이 포함된다. 그중에는 올리브, 무화과, 대추야자, 석류, 포도 등이 있었다... 이런 농작물을 재배한다는 것은 정착하여 촌락생활에 완전히 몸을 맡긴 사람들에게만 가능한 일이었다... 나중에 작물화된 나무들과는 달리, 이 나무들은 땅에 직접 꺾꽂이를 하거나 씨앗을 심는 것만으로 재배할 수 있었던 것이다.


세번째 단계는 재배하기 훨씬 어려웠던 과실수---사과, 배, 서양자두, 체리 등---였다. 이 나무들은 접목법(接木法)이라는 까다로운 기술로 재배해야만 했다.... 중국에서 처음 개발되었다... 재배가 늦어진 이 과실수들은... 타화수분을 시켜야 했다... 비슷한 시기에... 역시 재배가 늦어졌던 다른 식물들은 훨씬 적은 노력만으로도 작물화되었다. 그것은 의도적으로 농작물을 재배하는 밭에서 처음에는 잡초에 불과했던 야생식물들이었다. 잡초에서 출발한 농작물에는 호밀과 귀리, 순무와 무, 비트와 서양부추파, 그리고 양상추가 있었다.


193쪽: 떡갈나무는 처음부터 삼진을 먹고...

①떡갈나무의 느린 성장속도는 농경민들의 인내력을 소모시키기에 충분했다.

②떡갈나무는 원래 다람쥐들에게 맞는 크기와 맛의 열매를 만들어내도록 진화되었다... 이처럼 성장속도는 느리고 다람쥐는 재빠르다는 문제점은 너도밤나무와 히코리나무의 경우에도 적용된다.

③아몬드에서는 단 하나의 우성 유전자가 쓴맛을 조절하지만 떡갈나무에는 쓴맛을 조절하는 유전자가 여러개인 듯하다.


198쪽: 가축화의 후보종으로 간주할 수 있는 대형포유류, 즉 초식성이나 잡식성의 대형 야생 육서 포유류는 세계적으로 148종에 불과하다.


199쪽: 총 20만 종의 야생식물 중에서 인간이 먹을 수 있는 것은 수천 종에 불과하다...

현대세계에서 모든 농작물을 통틀어 연평균 총생산량의 80%를 책임지고 있는 농작물은 겨우 12종에 불과하다. 그 12종 중에서 곡물로는 밀, 옥수수, 벼, 보리, 수수, 콩류로는 메주콩, 뿌리 또는 덩이줄기 작물로는 감자, 마니오크, 고구마, 설탕 공급원으로는 사탕수수와 사탕무, 그리고 과일로는 바나나가 있다. 이 중에서 곡류만 따지더라도 전세계 인류가 소비하는 총열량의 절반을 넘는다.


211쪽: 비옥한 초승달지대의 농업은 초기에 작물화한 8종의 식물, '창시작물'과 함께 시작되었다. 그 8종의 창시작물은 곡류인 에머밀, 외톨밀, 보리, 콩류인 렌즈콩, 완두콩, 병아리콩, 쓴살갈퀴(bitter vetch), 그리고 섬유작물인 아마였다... 비옥한 초승달지대에서는 토종야생식물만 작물화해도 충분히 농업을 시작할 수 있었다. 다른 곳에서 야생식물을 작물화시킨 농작물들이 도착할 때까지 기다릴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233쪽: 《안나 카레니나》의 법칙

가축화할 수 있는 동물은 모두 엇비슷하고 가축화할 수 없는 동물은 가축화할 수 없는 이유가 제각기 다르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엇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불행한 이유가 제각기 다르다."


234쪽: '대형'이라는 말을 '체중 45kg 이상'이라고 정의한다면 20세기 이전에 가축화된 대형종은 모두 14종에 불과하다. 이 '고대 14종' 중에서 9종은 지구상의 한정된 지역에서만 중요한 가축이 되었다. 단봉낙타, 쌍봉낙타, 라마/알파카, 당나귀, 순록, 물소, 야크, 반텡, 가우어 등이 그렇다. 전세계에 두루 퍼져 중요한 가축이 된 것은 그 나머지인 5종뿐이다. 이 '주요 5종'의 가축화된 포유류가 바로 소, 양, 염소, 돼지, 말이다.


245쪽: 우리가 고고학적 증거를 통해 가축화 시기를 알고 있는 동물들은 모두 B.C. 8000년경~2500년경에 가축화되었다.


249쪽: 가축화가 실패하는 원인을 적어도 6가지는 찾을 수 있다.

①식성... 코알라처럼 즐겨먹는 식물을 너무 까다롭게 고집하기 때문이다... 근본적인 비효율성 때문에 육식성 포유류는 단 1종도 식용으로 가축화되지 못했다.

②성장속도

③감금상태에서 번식시키는 문제

④골치아픈 성격

⑤겁먹는 버릇

⑥사회적 구조는 가축화에도 이상적이다. 인간들은 결과적으로 이 위계질서를 고스란히 물려받게 되기 때문이다.


267쪽: 이렇게 가축과 농작물이 전해진 뒤에는 역시 비옥한 초승달지대나 그 부근에서 생겨난 발명품들도 따라왔다. 그 속에는 바퀴, 문자, 금속기술, 젖짜기, 과실수, 그리고 맥주와 포도주 제조 기술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278쪽: 거기서 다시 동쪽으로 더 가면 중국의 온대지방이 나온다. 이들지역도 중앙아시아의 사막지대, 티벳의 고원지대, 히말라야 산맥 등으로 가로막혀 비슷한 기후를 가진 서유라시아 지역들로부터 차단되어 있었다... 그러나 B.C. 2000년~1000년경에는 중국과 서유라시아 사이의 이 같은 장애물들을 부분적으로나마 극복할 수 있게 되면서부터 서아시아의 밀, 보리, 말 등이 중국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298쪽: 세균들에게 또 하나의 행운은 세계 교역로의 발달이었다... 천연두가 '안토니우스병'이라는 이름으로... 흑사병도 '유스티니아누스병'이라는 이름으로...


334쪽: 이집트의 상형문자도 대체로 독립적인 발명의 소산으로 추측되고 있지만 중국문자의 경우에 비하면 아이디어 확산에 의한 것이었다고 판단할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은 편이다. 상형문자는 B.C. 3000년경 거의 완성된 형태로 갑작스럽게 나타난다... 상형문자의 점진적 발달과정을 보여주는 증거물들이 전혀 남아있지 않다는 것도 좀 수상쩍다.


339쪽: 인류학자 클로드 레비스트로스가 말했듯이 고대 문자의 주된 기능은 '타인들의 예속화를 돕는 일'이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B.C 8세기에 와서 그리스에 다시 문자가 등장했을 때 이 새로운 그리스문자는 문자자체도 그랬지만 그 사용자와 쓰임새도 완전히 달랐다... 필경사들만 읽을 수 있고 궁전에서만 읽히던 양의 목록따위와 달리 처음 나타나던 순간부터 시와 유머의 전달 수단이었으며 각 가정에서 얼마든지 읽을 수 있었다. 예를 들자면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그리스알파벳은 B.C 740년경의 술항아리에 긁어 새긴 글이다. 그 내용은 춤 경연대회를 알리는 한 줄의 시다.


"제일 날렵하게 춤추는 자가 이 단지를 상으로 받으리라."


그 다음으로 오래된 글은...


"나는 네스토르의 술잔이로다. 누구든지 이 잔으로 마시는 자는 아름다운 아프로디테의 욕망에 사로잡히리니."


341쪽: 식량생산은 이렇게 문자가 발달하거나 도입되기 위한 필수조건이었지만 충분조건을 되지 못했다.


344쪽: 1908년 7월3일, 크레타섬의 파이스토스에서 고대 미노스 궁전을 발굴하던 고고학자들은... 기술사를 연구하는 역사학자들에게는 이 파이스토스 원판이 더 더욱 골칫거리다. 이것의 연대는 B.C. 1700년경으로 추정되는데 그렇다면 지금으로서는 세계 최초의 인쇄물이라고 할 수 있다.


349쪽: 대부분의 발명품은 호기심에 사로잡히거나 이것저것 주물럭거리는 일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개발했고 그들이 염두에 둔 제품에 대한 수요 따위는 처음부터 있지도 않았다... 오히려 발명이 필요의 어머니일 때가 더 많다.


353쪽: 두루 인정받고 있는 유명한 발명가들에게는 항상 유능한 선후배가 있었고 사회가 그들의 제품을 이용할 수 있는 시기에 발명품을 개량했던 것이다.


359쪽~: 각 사회마다 발명품 수용에 차이가 생기는 이유

①긴 평균수명

②고임금이나 노동력 부족현상

③특허권을 비롯하여... 기술혁신에 합당한 보상...

④기술훈련을 받을 기회

⑤기술발전에 투자했을 때 보상을 얻을 잠재적 가능성

⑥개인주의

⑦모험정신

⑧과학적 사고방식

⑨이단자들을 용납하는 분위기

⑩종교마다 기술 혁신에 대한 태도가 크게 다르다.

⑪전쟁은 기술혁신의 주된 자극제

⑫강력한 중앙집권적 정치체제

⑬기후

⑭자원


365쪽: 혁신에 대한 수용성은 한 지역내에서도 시대에 따라 변동한다.


367쪽: 바퀴이다. 이것은 B.C. 3400년경 흑해부근에 처음나타나서 그로부터 몇세기 이내에 유럽과 아시아의 많은 지역에 두루 모습을 드러냈다.


373쪽: 기술은 더 많은 기술을 낳으므로 어떤 발명품의 확산과정은 원래의 발명품보다 더 중요할 수도 있다. 기술의 역사는 이른바 자가촉매 작용의 좋은 예가 된다. 이것은 스스로 촉매작용을 일으켜 시간이 갈수록 가속화되는 현상을 말한다.

이렇게 기술이 스스로 촉매작용을 일으키는 한가지 이유는 먼저 간단한 문제들부터 차근차근해결해야만 발전이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자가 촉매 작용의 또 다른 주된 이유는 새로운 기술과 재료들이 재결합되어 다시 새로운 기술의 탄생을 가능케 하기 때문이다.

중세유럽의 인쇄공들은 여섯가지 발전된 기술을 한꺼번에 결합시켜 사용할 수 있었지만 파이스토스 원판 제작자는 그 대부분을 갖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이들 기술---종이, 활자, 야금술, 압착기, 잉크, 문자--- 중에서 활자에 대한 아이디어와 종이는 중국으로부터 유럽에 들어온 것들이었다... 구텐베르크의 인쇄기는 올리브 기름이나 포도주를 만들 때 쓰던 나사 압착기에서 나온 것이었고 잉크는 기존의 잉크를 개선시킨 유성 잉크였다.


398쪽: 도둑정치가들은

①대중을 무장 해제하고 엘리트 계급을 무장시킨다.

②거둬들인 공물을 대중이 좋아하는 일에 많이 사용하여 재분배함으로써 대중을 기쁘게 한다.

③무력을 독점하여 공공질서를 유지하고 폭력을 억제함으로써 대중의 행복을 도모한다.

④도둑 정치를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나 종교를 구성하는 것이다.


408쪽: 국가는 일반적으로 5만명 이상이다.


413쪽: 대규모 사회가 경제적으로 원활하게 기능하기 위해서는 호혜적 경제형태뿐만 아니라 재분배적 경제형태도 반드시 필요하다.


414쪽: 이처럼 갈등해결, 의사결정, 경제, 공간 등의 문제를 모두 고려했을 때 대규모 사회가 결국 중앙집권화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438쪽: 정복의 궁극적인 원인은 식량생산 그리고 각 사회사이의 경쟁 및 확산이었다. 거기서 시작된 인과관계의 사슬에 의해 병원균, 문자, 기술, 중앙집권적 정치조직 등 정복의 직접적인 요인들이 생겨나게 된 것이다... 언제나 공통적인 요소는 조밀한 대규모 인구와 정주형 생활이었다.


491쪽: 북중국 최초의 농작물로 확인된 식물은 가뭄에 강한 2종의 기장류였고 남중국의 경우에는 벼였다... 가축화된 돼지, 개, 닭의 뼈도 함께 발견되었다... 동물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물소였고 그밖에도 누에, 오리, 거위 등이 있었다. 나중에 나타난 중국 농작물 중에서 우리에게 낯익은 것들은 메주콩, 대마, 감귤류, 차, 살구, 복숭아, 배 등이다... 서쪽에서 들어온 가축 작물 중에서 고대 중국 경제에 특히 중요한 역할을 했던 것은 밀과 보리, 소와 말, 그리고 양과 염소 등이었다.


576쪽: 마다가스카르를 탐사한 고고학자들은 오스트로네시아인들이 적어도 A.D.800년 이전에 도착했으며 빠르면 A.D. 300년경이었을 수도 있음을 입증했다.




(2015. 05. 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