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오웰을 1984년에 읽었듯이 지금 읽는 책

조영필

by 조영필 Zho YP

[거대한 체스판], 즈비그뉴 브레진스키 저/김명섭 역, 삼인, 2000년 4월


서평: 조지오웰의 [1984년]을 1984년에 읽었듯이 바로 지금 읽어야 하는 책




금요일 아침 지하철로 출근하며 읽을려고 이 책을 집어들고 있는데 잠깐 7시 뉴스에서는 전날 김대통령과 클링턴, 그리고 일본수상의 조문외교가 펼쳐지고 있고 중국수상의 이름도 들려온다. 전 일본수상의 장례식에 클링턴이 오다니! 부통령을 보내도 될텐데 하는 의문이 생기면서 다음과 같은 느낌이 뒤따라 왔다. 조문외교를 빙자해서 온거야 남북정상회담이 궁금했던거지. 그런데 며칠전 김정일위원장이 중국의 장쩌민을 방문했다던데. 그렇다면 러시아가 빠졌네. 하고 있는데 막 집을 나서기 직전 한 7시20분쯤이었을까. 푸틴 러시아대통령이 7월중 북한을 방문한다는 것이다. 자 정상급배우들은 다 올라왔다. 한반도란 무대위에.

그런데 한반도 무대는 과연 이들 배우들이 빠짐없이 출연할 정도로 중요한 무대인가. 우리네 대부분은 우리나라가 동북아의 끝에 위치한 조그마한 나라로서 새삼스레 호들갑들 떨고 있는 거라는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기껏해야 반도의 운명이 약간 달라지는 것일 뿐, 세계사적인 관련성은? 괜히 의미를 부여하려 드는 것이라고 여길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 책을 읽게 되면 한반도의 운명이 동북아의 정세 그리고 곧 유라시아의 평화 또한 세계의 미래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된다. 한마디로 지금은 유라시아 주변의 약간의 세력변화도 무시되기 힘든 각각의 중요성을 갖게된다고나 할까.

한반도가 통일되면 통일한국에 주한미군이 여전히 주둔할 수 있는 명분이 남는가. 유라시아 동쪽의 강국인 중국은 인접국에 패권국의 군대가 주둔하는 것을 원치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일본은 혼자서 미군기지가 되어줄 수 있을 것인가. 일본은 다시금 재무장을 해서 경제력에 걸맞는 지역적 야망을 드러내지는 않을 것인가. 그런데 미국의 입장에서 또한 세계최초의 민주공화국으로서 세계적 패권국의 세계평화적 입장에서 동북아에 미군을 주둔시키지 않고 유라시아의 평온을 확신할 수 있는가. 그렇다면 우리 주변열강들은 어떤 의미에서는 당분간은 통일한국의 출현이 바람직스럽지 않은 걸끄러운 상태일 것이다. 이런 와중에서 우리는 통일을 이뤄내야 하는 것이다..

이 책은 유라시아의 강국이 세계를 지배한다는 전제 위에 유라시아를 지배하는 전체주의적인 강국이 출현하지 못하도록 미국의 입장에서 힘과 관심을 적절히 배치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것은 거대한 체스판과도 같아서 체스판의 한쪽에서 일어나는 조그마한 변화가 결국 전체구도에 미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책을 읽다보면 유일무이한 초강대국으로서의 미국의 패권이란 어떤 세계사적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인지에 대한 해답이 자연스레 떠오르게 된다. 그것은 세계의 초강대국이 스스로가 대중민주주의인 나라로서 다른 나라들을 그와 유사한 방식으로 지도한 최초의 나라로서 미국의 역사적 의미를 찾을 수 있다. 그리고 이는 특수한 몇십 년간의 상황일 뿐이며 이제 어떤 나라도 이와 유사한 발언권을 다시 갖추지는 못할 것이다. 따라서 세계는 미래의 다원적인 평화질서를 창출하기 위해 이러한 미국의 현재지위를 잘 활용해야만 하는 것이다.

미국에 대한 감성적 반미를 넘어 용미로서, 우리는 새로 맞은 2000년의 세계질서를 어떻게 헤쳐나가야 하는 것인가. 한반도의 우리도 결코 부분적인 해에 만족하지 말고 전체적인 유라시아 및 세계의 균형 속에서 우리 미래에 대한 전략적인 사고를 한다면 훨씬 더 우리의 미래를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우리를 덮씌고 있는 우물을 제거해주는 멋진 체스교본이라고 생각된다.




(2000년 6월 11일, Yes24 투고 서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