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거안제미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영필 Zho YP Feb 04. 2016

기내식에 대하여

조영필

비행기로 여행을 할 때마다 가장 기다려지는 건 바로 기내식이다. 기내식이란 별로 새로울 것도 없다. 땅위에서 먹던 것을 흉내 낸 것이라고나 할까? 누군가는 내게 이런 얘기도 해주었다. 해외 출장나갔다가 돌아오는 길인데, 자기 바로 앞에서 고추장비빔밥이 동이 나버렸다. 그때, 그것이 너무나 먹고 싶어서 조금 소란을 피웠나 보다. 그래서 승무원이 흥분하는 그를 달래기 위해 1등석에서나 맛볼 수 있는 컵라면을 자신에게 제공해주었다고 무슨 무용담처럼 들려준다.


사실 기내식에서 이코노미석의 비빔밥이라고 하면 이것은 햇반의 출현이 없이는 또한 가당치도 않은 설정이다. C사가 처음에 햇반을 상품화하여 출시하였을 때, 맨밥을 돈 주고  사 먹는 정신 나간 사람들이 많지 않아서, C사는 꽤나 고전하였었다. 5 년간이나, 지지부진하던 매출에 돌파구를 연 것은 다름 아닌, 기내식 납품이었다. 햇반과 함께, 고추장을 납품하여, 오늘날의 국민 기내식 비빔밥이 탄생한 것이다. 그리하여, 한국인들은 해외에서 귀국할 때, 국적기를 타게 되면, 그리운 한국의 메뉴, 비빔밥을 먹을 수 있게 되었다. 참으로 아름다운 이야기이다.


그런데 기내식은 왜 그리도 맛있는 것일까? 물론 항공사들이 각고의 노력을 다해 훌륭한 음식을 제공하기 때문일 테지만 그래 봤자, 지상의 레스토랑에 비할 수 있을 것인가? 혹자는 이렇게도 말하리라. 평소에 맛보기 힘든 메뉴를 기내식은 제공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비빔밥만 예를 들더라도, 평소 못 먹어보던 음식은 아닌 것 같다. 그럼에도 비행기에 탄 모든 사람들이 얼마나 기내식 배식시간을 고대하고 기다리는지 모른다. 내 생각에 기내식이 맛있는 이유는 다음 세 가지이다.


그 첫째는 공짜이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는 어딜 가기 위해서 비행기를 타는 것이지, 기내식을 먹기 위해서 타는 것은 아니다. 물론 티켓값에 그 비용이 다 들어있다고 하겠지만, 그렇게 사람이 계산적인 동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어쨌든 공짜로 제공받는 서비스는 달콤하다.


둘째는 앉아서 제공받기 때문이다. 무언가를 먹기 위해서 어디로 갈 필요도 없다. 가만히 앉아 있으면 찾아오는 서비스이다. 편한 서비스에 만족감은 배가된다. 게다가 토털 서비스이다. 식당이자, 다방이자, 술집으로 후식에, 커피에, 와인까지 준다.


마지막으로 그것은 기대하지 않은 서비스이기 때문이다. 누가 이렇게 하늘 끝까지 올라와서 이처럼 훌륭한 정찬을 대접받을 줄 꿈에서나 생각했으랴. 그러나 항공사들은 그런 불가능한 미션을 거뜬히 수행해내고야 만다. 이 얼마나 거룩하고 또 갸륵한 일이란 말인가. 아무리 칭찬해도 침이 마르지 않겠다.


그런데 이렇게 비행기에 타서까지 지상에서처럼 밥을 먹고 있는 것이  제정신인지 나는 그것이 못내 궁금하다. 예전 우리 어릴 때, SF 소설에서는 사람들이 하루에 특수 제조된 알약 하나만 먹어도 영양보충이 되는 미래가 나온다. 굳이 밥 먹는 수고를 할 필요도 없고, 시간도 절약되고, 소화하는데 에너지를 들일 필요도 없고, 화장실에 자주 갈 필요도 없다. 얼마나 간편한 일인가? 일상생활에서도 알약 하나면 충분한데, 하늘을 날게 되면 당연히 그런 특수 영양제를 먹는 것이 더 합리적이지 않을까, 또 그렇게 문명이 발달하는 것이 정상적이지 않을까, 이것이 내가 예전에 상상해오던 미래상이었다. 그런데, 그런 사회는 전혀 오지 않고 있다. 그것이 이상하게 느껴진다.

어느 것이 합리적일까? 복잡한 인간의 원시적 욕구에 부응하는 것이 합리적인가? 불편한 상황이라면, 효율을 위해 기술에 인간이 적응하는 것이 합리적인가? 나는 시간을 중히 여기고, 식사를 영양보충으로 생각하는 사람이어서, 알약을 선호하는 편이지만, 오늘날의 인간 문명도 결코 잘못된 것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기술은 인간의 욕구에 최대한 봉사하고 있다. 인간은 절대 기술의 편리에 종속되지 않고 있다. 기내식의 현주소를 통해, 사업가들에게 충고한다면, 우리의 문명에서 인간을 길들여 기술을 적용할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다. 젊은 시절, 나는 밥 먹는 시간이 아깝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던 나도 이젠 사회생활의 고단함 속에서 어느덧, 입맛을 다시면서 기내식을 기다리고 있다. 미식가가 따로 없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