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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영필 Zho YP Feb 05. 2016

맥주에 대하여

조영필

세상에서 한국만큼 맥주가 맛이 없는 나라는 없을 것이다. 나는 이 사실을 아프리카의 키갈리에서 뮤치히 맥주를 맛보면서 새삼 깨닫는다. 이 맥주는 정통 라거형 맥주인데, 독일의 필스너 거진 다 왔다.


처음 일본에 갔을 때는 일본 맥주들이 다 특색 있게 맛있었다. 그러나 독일에 가서 필스너를 맛본 후, 그것이 렉스터 위에 우뚝 선 BMW만큼이나 높은 수준의 성취라는 것을 이해하는 데에는 몇 번의 점심으로 충분하였다. 물 한 잔은 3 유로인데, 생맥주 한 잔은 2 유로였으므로, 어쩔 수 없는 강제 시음이었다.


독일 맥주에 대한 신앙을 종식시킨 것은 기네스이었다. 아시다시피 기네스는 아일랜드의 맥주로 영국 계통의 맥주인 에일의 일종이다. 맥주에는 보통 상면발효맥주와 하면발효맥주가 있는데, 에일이란 상면발효맥주의 통칭이고, 라거나 필스너는 하면발효맥주의 통칭이다. 그런데 기네스는 약간 재료를 볶은 것을 첨가하여, 색깔이 까만 것이 특징이다.


기네스 맥주 공장은 더블린에 있는데, 더블린의 모든 식당, 주점에서 공장에서부터 직접 새벽에 배송한 신선한 기네스 생맥주를 먹을 수 있다. 더블린에는 따로 기원(棋院)이 없는 까닭에, 시내의 한 맥주집에서 일주일에 한 번 모임을 갖는다. 내가 그 모임에 가서 더블린 기우회의 최고수인 폴란드 친구와 일합을 겨루는데, 그때 기네스를 한 잔 가져다주었다. 현지에서 맛보는 기네스 생맥주의 맛은 달콤하고 부드러우면서도 묵직하다.


시원한 기네스를 홀짝이면서 서양인들과 수담(手談)을 두는 기분은 가히 무릉도원의 신선놀음에 비견할 수 있을까? 기네스 한 잔은 보통 5-6 유로 하였다. 더블린의 최고수로 인증받으니, 회원 중의 한 사람이 나의 맥주 한 잔은 자기가 항상 지불하겠노라고 했다. 감사히 잘도 마셨다.


나는 원래 배가 찬 체질이어서, 맥주는 몸에 잘 안받았다. 그러나 맛이 있는 것을 몸이 안받는다고 안 먹을 수 있는가? 해외 출장 시, 저녁에 자기 전에 그 나라의 맥주 한 모금은 그날 하루를 마친 내 몸에 대한 조그만 보상이다.


누가 그랬지만, 한국 맥주는 치킨에 그만이다. 세계의 유수의 맛있는 맥주를 먹으면, 안주가 따로 생각이 안 난다. 반대로 한국 맥주는 밍밍하므로 안주가 필수인데, 치맥은 그 나름의 최적태이다. 한국의 맥주 맛이 떨어지므로 한국에선 마이크로 브루어리 맥주집이 잘될 줄 알았는데, 오히려, 다양한 메뉴를 장착한 치킨집이 성업이다.


최근에 전지현을 모델로 한 맥주가 출시되어 처음 조금 맛있다가, 물량이 늘어나니, 품질이 떨어졌다. 차라리 전통의 **프리미엄이 훨씬 맛있다. 싼 맥주가 더 맛있으니, 고마운 일이다. 이젠 한국에서도 저녁에 운동하고 와서 500 리터 한 캔 마시고 잔다. 하루를 무사히 마치기만 하면 뭐 하는가? 맥주 한 잔 마시는 낙도 없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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