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공디스커버리 총서, [코끼리 세계의 기둥]과 [알렉산더 대왕]
<전투용 코끼리>
코끼리를 '길들이는 것'은 군사적인 목적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베다에 등장하는 코끼리는 거의 전쟁과 관련된 모습으로 등장하기 때문이다. 모헨조다로나 하라파에서는 코끼리의 이러한 모습을 찾기 힘들다. 베다의 군대는 언제나 코끼리부대, 기병대, 전차부대, 보병대 등 네 개의 부대로 구성된다. 기본 전투단위인 파티(patti)는 코끼리 한 마리, 전차 한 대, 말 세 마리, 보병 다섯 명으로 이루어진다.
가장 큰 전투단위인 아크샨히니(akshanhini)는 코끼리 2만 1,870마리, 동수의 전차, 말 6만 5,610마리, 보병 10만 9,350명, 다시 말해 2만 1,870개의 파티로 구성되는 것이다.
가장 기본적인 전투대형은 코끼리 45마리, 전차 45대, 말 220마리, 보병 675명으로 이루어진다.
코끼리는 적의 전선을 절단하여 적을 교란시키고, 방책이나 성벽을 무너뜨리는 임무를 맡는다.
미친 듯이 날뛰는 코끼리 한 마리는 6,000마리의 말과 맞먹는 힘을 발휘한다. 또한 코끼리는 짐을 나르거나 인간이 걸어서 건널 수 없는 깊은 강을 만날 때, 이동식 다리 역할을 하기도 한다.
코끼리 한 마리 한 마리는 각기 군사장비를 갖춘 하나의 팀을 형성한다. 등에 탄 조련사와 두세 명의 병사, 코끼리를 보호하는 소수의 병사, 수레, 그리고 그 뒤를 따르는 비전투요원들이 한 팀을 이룬다.
전투용 코끼리는 울타리가 쳐진 방목장에서 각별한 보호와 훈련을 받으며, 주기적으로 감시와 검사를 받는다. 그곳에서 코끼리들은 복종하고 공격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가끔씩 술을 먹여 흥분시키기도 한다). 코끼리는 가죽갑옷으로 보호를 받으며, 등에 올라탄 전투요원이 사용할 수 있도록 창이나 화살 같은 투척용 무기들을 담은 전통(箭筒)을 매달고 다닌다.
인도의 왕들 간의 빈번한 전쟁에서는 일반적으로 쌍방이 갑옷을 입힌 코끼리들을 대결시킨다. 따라서 전쟁은 강력한 상아를 가진 거대한 수컷들의 육박전에서 시작되곤 했다.
(이상 [코끼리 세계의 기둥] 48-52쪽)
<전쟁터에 나선 코끼리, 포루스와 알렉산더의 대결>
서구의 전투용 코끼리의 모든 역사는 알렉산더 대왕과 더불어 시작된다. 알렉산더 대왕은 B.C. 331년, 가구가멜라에서 페르시아의 왕 다리우스의 15마리 코끼리와 대적한 바 있다. 그리고 B.C. 326년에는 히다스페 강가에 200마리의 코끼리, 5만 명의 보병, 4,000명의 기병, 300대의 전차를 집결시킨 인도 왕 포루스와 맞서 싸웠다.
마케도니아군의 기병대는 적군의 기병대보다 우세했다. 페르시아의 전차들은 1,000명의 마케도니아 기병대원들 앞에서 무력하게 뿔뿔이 흩어졌다.
무시무시한 코끼리들을 상대한 것은 보병밀집부대였다. 그들은 코끼리를 한 마리씩 에워싼 뒤 화살과 투창과 긴 창으로 상처를 입혔으며, 낫 달린 창으로 코끼리 코를 절단하고, 코끼리 조련사들을 죽였다. 그리고 마침내 녹초가 된 괴물 같은 코끼리들을 그들의 본대 쪽으로 몰아붙였다.
포루스가 직접 지휘한 마지막 공격이 실패한 뒤 코끼리들은 술 취한 배처럼 기우뚱거리며 퇴각했고, 그 중 80 마리가 사로잡혔다. 전하는 바에 따르면, 부상을 당한 포루스가 죽을 때까지 그가 탔던 코끼리가 곁에서 포루스를 지켰으며, 한편 알렉산더 대왕이 탔던 전설적인 명마 부세팔루스도 죽었다고 한다.
코끼리와의 그 끔찍했던 백병전에서 많은 병사들이 희생되었다.
따라서 살아남은 병사들은 또다시 코끼리떼를 거느린 군대와 마주칠까 두려워 알렉산더 대왕을 따라 인도의 중심부로 진격해 가는 것을 거부했으리라는 추정이 가능하다. 알렉산더 대왕은 마침내 200여 마리의 코끼리를 수중에 넣었지만, 어떠한 전투에서도 결코 코끼리를 이용하지 않았다.
(이상 [코끼리 세계의 기둥] 76-78쪽)
<전투용 코끼리의 한계와 약점>
코끼리를 본 적이 없는 군대와 싸웠던 초창기에는 코끼리를 이용한 카르타고가 승리를 쟁취했다. 코끼리를 본 놀라움이 가져다 주는 효과가 지대했기 때문에 특별히 작전을 세울 필요도 없었다.
인위적으로 흥분된 코끼리들은 곧장 적진으로 돌진해 들어가 병사나 방책이나 말들을 닥치는 대로 짓밟아 버렸다.
코끼리 등에 올라탄 병사들은 나무로 만든 망루로 보호받기도 했는데, 이러한 장치를 고안해 낸 사람은 아마도 피루였을 것이다. 코끼리를 탄 병사들은 그 위에서 화살과 독침을 쏘고 창을 던졌다. 그러나 완전히 노출된 조련사들은 코끼리를 마음대로 다루기가 용이하지 않았다. 방어하거나 되받아 공격하기는 비교적 수월했지만, 공격을 멈추거나 급히 뒤로 몸을 돌리기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더구나 코끼리를 공격하는 다양한 전술들이 개발되었다.......
사실 다루기 힘들고, 쉽게 치명적인 타격을 입는 코끼리는 전투에서 별로 믿을 만한 존재가 못되었다. 코끼리는 쉽게 지치고, 엄청난 식욕과 까다로운 식성을 갖고 있다. 또한 운송하는데 어려움이 있고, 조련에 오랜 시간이 소요되며, 값이 몹시 비싸고, 대체가 용이하지 않다는 듯 수많은 단점을 갖고 있다.
따라서 전투에 이용된 코끼리는 서구세계에 대단히 강렬한 인상을 심어 놓았지만, 전투에 이용되었던 기간은 별로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코끼리가 전투에 이용된 기간은 알렉산더 대왕에서 한니발과 카이사르에 이르는 3세기에 불과하다.
(이상 [코끼리 세계의 기둥] 86-87쪽)
<포로스와의 전투>
이번에는 인도의 왕 포로스를 치기 위해 한여름에 히다스페스강을 건넜다.
"포로스는 주위에 코끼리 40마리를 거느리고 적진을 향해 돌진하여 치명적인 손실을 입혔다. 그는 다른 기사들 보다 덩치가 크고 힘도 셌으며 2.2m가 넘는 장신이었다....... 또한 그는 쇠뇌 같은 힘으로 창을 던졌다." 디오도로스
"인도 보병대의 사상자는 족히 2만 명은 되었다. 기마병은 약 3,000명이 죽었고 전차들은 모두 파괴되었다." " 어떤 코끼리들은 주인이 땅바닥에 쓰러져 있을 때 방패구실을 하는가 하면, 또 어떤 코끼리들은 주인이 쓰러졌을 때 그를 보호하려고 직접 싸우기도 했다. 성이 나서 주인을 죽인 코끼리가 절망에 빠져 죽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아리아누스
드디어 전투가 벌어졌다. 포로스는 전차 300대와 선두에 배치한 전투용 코끼리 200마리에게 기대를 걸었다. 전차는 이내 싸움터의 진창 속에 처박혀 마케도니아군을 무찌르는데 아무 쓸모가 없었다. 반면에 알렉산더의 투창수들과 사수들이 코끼리 조련사들을 명중시켰음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병사들이 코끼리에게 깔려 죽었다.
...... 이 난관을 극복한다 해도 엄청난 전력 - 전차 2,000대와 무장시킨 코끼리 4,000마리 - 을 자랑하는 난다 왕조의 마가다라는 왕이 기다리고 있었다. 페제왕이 가져온 이 같은 불안스러운 정보를 듣고도 알렉산더는 히파시스강을 건너기로 작정했다.
(이상 [알렉산더 대왕] 100-103쪽)
(2013. 1.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