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러스트

프랜시스 후쿠야마

by 조영필 Zho YP

[트러스트 - 사회도덕과 번영의 창조], 프랜시스 후쿠야마 저/ 구승회 역, 한국경제신문.




28쪽/ ... 공동체적 기질이 결여되었을 때는 경제적 기회가 주어지더라도 이를 활용할 수 없음을 알 수 있다. 문제는 제임스 콜맨(James Coleman)이 말하는 '사회적 자본' - 사람들이 공통의 목적을 위해 단체와 조직 내에서 함께 일할 수 있는 능력 - 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인적 자본의 독특한 측면은 사람들이 서로 결속할 수 있는 능력과 관계가 있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경제생활뿐 아니라 그밖에 사회적 삶의 모든 국면에 대해서도 결정적인 중요성을 지닌다. 결속할 수 있는 능력은 역으로 공동체가 얼마나 규범과 가치를 공유하고 개인의 이익을 보다 큰 집단의 이익에 종속시킬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 이러한 공유 가치로부터 신뢰가 탄생하며 신뢰는 중요한 경제적 가치를 지닌다.


47쪽/ 수많은 저자들이 통신혁명의 결과 우리 모두가 언젠가는 관계망으로 연결된 소규모의 '가상기업'에서 일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말은 회사가 철저히 소형화되어 결국 '핵심 능력'만 남긴 채 모든 활동을 박탈당하고, 광케이블 전화를 통해 공급품이나 원료에서부터 회계나 마케팅, 서비스에 이르기까지 모든 업무를 다른 소규모 회사에 외주(外注)하게 되리라는 이야기이다.


49쪽/ 신뢰는 집적회로나 광섬유 케이블에 귀속되는 것이 아니다. 신뢰는 정보의 교환을 수반하지만 정보로 환원될 수는 없다. '가상'회사는 관계망을 통해 공급자와 계약자에 관한 풍부한 정보를 입수할 수 있다... 신뢰가 없으면 이러한 활동을 사내로 끌어들이고 낡은 위계질서를 회복하기 위한 경력한 유인이 있어야 한다.


51쪽/ 사회적 자본의 구성요소인 '자발적 사회성(spontaneous sociability)'이라는 낱말이다. 현대 사회조직은 끊임없이 생성되고 파괴되며 수정된다. 전통적 공동체나 집단 밑에서 일하는 능력보다는 자신이 확립한 조건 하에서 서로 협력할 수 있는 새로운 결속체를 구성하는 능력이야말로 가장 유용한 사회적 자본이 된다. 산업사회의 복잡한 노동분배를 통해 생성되었으면서도 계약보다는 공적 가치에 바탕을 둔 이런 유형의 집단은 뒤르껭(Emile Durkheim)이 '유기적 연대성(Organic Solidarity)'이라고 이름 붙인 바로 그것이다.


54쪽/ ... 중국 유교의 요체는 다른 어떤 사회적 충성심보다도 가족의 결속을 중시한다는 점이다. 하지만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일부 지역도 역시 이런 특성을 가지고 있다.


79쪽/ ... 우리는 흔히 경제적 성장을 기술적 발전과 연관시키지만, 산업혁명이 시작된 이래 조직상의 기술혁신 역시 마찬가지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경제사가인 더글라스 노스(Douglas North)와 로버트 토마스(Robert Thomas)는 이것을 "효율적인 경제조직은 성장의 열쇠이다. 서구 유럽에서 효율적인 경제조직이 발달한 사실이 서구의 번영을 설명해 준다"고 했다.


89쪽/ ... 사회주의 국가에서만 중개(매개)집단이 약화된 것은 아니다. 프랑스, 스페인, 이탈리아 같은 다수의 라틴계 카톨릭 국가와 라틴 아메리카의 여러 나라들도 역시 한쪽에 견고한 가족, 한쪽에는 강력한 국가, 그리고 그 사이가 상대적으로 약화되어 있는 안장형 분포를 보인다.


98쪽/ 더글라스 노스(Douglas North)와 로버트 토마스(Robert Thomas) 등 경제사가들은 안정적인 재산권체계의 창출이야말로 상업화과정의 결정적인 출발점이라고 단언한다.


101쪽/ 막스 베버(Max Weber)는 <중국의 종교(the Religion of China)>라는 저서에서 강력한 중국의 가족 중심주의가 현대적인 기업조직에 필수적인 보편적 가치와 비인격적인 사회적 유대의 발전을 저해함으로써 소위 말하는 '혈연의 족쇄'(지나치게 한정적인 가족유대)를 만들어 냈다고 주장했다.


145쪽/ 이탈리아에서 ‘사회적 자본’의 축적이 가장 높은 지역은 북부(피에드몬테, 롬바르디, 그리고 트렌티노)에 있고 특히 투스카니와 에밀리아-로마냐 등 ‘테르짜 이탈리아’ 지역에 있다.


146쪽/ 이탈리아에서 지난 한 세대 동안 경제적으로 가장 역동적이었으면서 ‘사회적 자본’이라는 측면에서 도무지 알 수 없는 수수께끼를 낳았던 지역은 역시, 대만, 홍콩과 가장 흡사한 테르짜 이탈리아이다.


147쪽/ 테르짜 이탈리아의 영세 가족기업을 연구하던 비평가들은 가족기업이 알프레드 마샬Alfred Marshall이 19세기에 최초로 밝혀냈던 산업지역에 몰려드는 경향이 있으며 그곳에서 기술과 지식의 지역연합의 이점을 이용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이 지역은 이탈리아판 캘리포니아의 [실리콘 밸리] 혹은 [보스턴 128번 가]라고 부를 수 있다.


148쪽/ 영세적이면서 장인조합을 지향하고 첨단 기술 기업들이 밀집해 있는 이 산업지역은 미셸 피오레Michael Piore와 찰스 사벨Charles Sabel이 명쾌하게 개념을 규정했던 ‘융통성 있는 전문화’라는 패러다임의 실례이다. 피오레와 사벨은 거대 기업들과 연관된 대량 생산이 산업혁명의 필연적 결과는 아니라고 주장했다. 장인 기술에 기초한 소규모 기업들은 거대 기업들과 더불어 살아 남았다. 뿐만 아니라 고도로 분절적이고 세련된 급속히 변화하는 소비자 시장의 진화로 인해 오직 소규모 조직만이 가질 수 있는 융통성과 발빠른 적응성까지 가지고 있다.


149쪽/ 북부와 중부 이탈리아의 고도한 사회적 자본이 이 지역의 경제적 번영을 설명하는 데 결정적인 것이었음은 명확하다. 경제학은 사회 속에 존재하는 ‘자발적인 사회적 진화’(혹은 그의 용어를 쓰자면, 시민 공동체)의 정도를 예측하지 못한다는 로버트 퍼트남의 말은 확실히 옳다. 심지어는 경제적 성취를 예측함에 있어서 경제적 요소만 가지고 측정하는 것보다는 자발적 사회성이라는 요소를 추가함으로써 더 잘 예측할 수 있다. 1870년 통일될 때만 해도 북부 혹은 남부 이탈리아의 어느 쪽도 산업화되지 못했다. 단지 북부의 농업인구가 약간 더 많았을 뿐이었다. 그러나 1871~1911년 사이 남부지방은 도시화, 산업화가 지체되었던 반면 북부지역에서는 급속한 산업발달이 시작되었다.


150쪽/ 그러나 퍼트남의 설명대로 사회적 자본의 축적도가 가장 높은 중부 이탈리아에서 소규모 가족기업이 지배적인 것은 왜일까?… 어쩌면 북부지역에서는 거대 규모의 조직을 증진시키고 중부에서는 그것을 방해하는 사회적 자본과는 무관한 외적인 요인들 - 정치적, 법적, 혹은 경제적 - 이 있을 수도 있다.


151쪽/ 한편 이 기업의 작은 규모와 그 관계망의 구조는 때로 임의적인 선택의 문제라기보다는 제도화시키는 데 있어서의 약점과 무능력의 결과라는 증거도 역시 있다… 최근의 연구는 중국의 경우처럼 적어도 14세기 이래로 핵가족이 유럽 전체를 통틀어 이전까지 생각하던 것보다 많았음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한 가지 예외가 중부 이탈리아의 경우인데, 이곳에서는 중세 이래로 이탈리아식 복합가족이 비교적 강하고 응집력 있는 형태로 지속되었다. ‘복합가족’은 중국의 결합가족과 완전히 다른 것은 아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결혼한 아들들 및 그 가족들과 함께 혹은 서로 가까이에 사는 것이다. 이러한 대가족 유형은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다.

테르짜 이탈리아에서는 인구의 약 50%가 복합가족을 이루고 살고 있는데, 이는 북부 삼각지역(롬바르디, 피에드몬테, 리구리아)의 27%, 그리고 남부지역에서는 고작 20%인 것과 비교된다.


152쪽/ 사람들은 이탈리아에서 중국과 가장 닮은 지방이 남부 이탈리아인데, 이곳에서는 신뢰의 범위가 핵가족을 넘어서지 못한다.


153쪽/ 남부 이탈리아의 가족들은 너무나 작고 원자화되어 있고, 또 약해서 사업체를 일구어내는 기본단위로서는 아무런 쓸모가 없다. 중국인 가족, 그리고 결과적으로 중국인의 가족기업은 아들, 딸, 아저씨, 조부모, 심지어는 문벌조직 내의 먼 친척들에게까지 사업을 하는 데 도움을 요청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은 테르짜 이탈리아의 가족구조 - 현재 이탈리아 가족기업을 지탱하는 원천으로 이용되는 가족구조 - 와 정확히 일치하는 것이다.

몇몇 사회학자들이 중부 이탈리아의 가족기업의 융성을 설명해 줄 것으로 주목하는 또다른 요인은 그곳의 분익계약제도였다. 분익계약은 토지소유자와 한 집안의 가장 사이의 장기적인 계약에 토대한 것인데, 그들은 상대편 가족성원을 위해 이 계약을 체결했다. 토지 소유자는 자기땅을 효과적으로 경작할 만큼 가능한 한 큰 규모로 소작인 가족을 유지시켜야 한다. 또 분익계약은 그에게 소작인 가족이 떠나거나 심지어는 결혼하는 문제에 대해 상당한 통제권을 부여해주었다. 많은 경우 각 구획지는 핵가족이 혼자 경작하기에는 너무나 컸다. 따라서 대가족에 대한 경제적인 유인동기로 충분했으며, 그 가족은 경작하는 땅에서 집단으로 거주하는 경향이 있었다.


154쪽/ 중부 이탈리아의 분익계약을 맺은 가족은 한 단위로 일했고, 대부분이 재산 - 경작기구와 가축들 - 을 소유하고 있었다. 근검절약과 기업가정신을 장려하는 방식으로 유인동기가 구조화되었는데, 이는 남부의 노동자들에게는 없었던 요소이다… 이는 산업화 이전에 일어났으며, 그후에 가족기업을 일으키기 위한 자연스러운 토대가 되었다.


155쪽/ 로버트 퍼트남의 말에 따르면

14세기 초반까지 이탈리아는 하나가 아니라 사회적 문화적 특색들과 연관된 두 개의 혁신적인 통치유형 - 남부의 유명한 노르만 봉건귀족제와 북부의 창의적인 자치제적 공화제 - 을 양산해오고 있었다.


그 이후 수년간 북부지역은 다시 봉건화되었고, 연이은 중앙집권화된(그들 중 상당수가 외국에 의한 것이었다) 권위와 통제 아래 편입되었다. 그러나 르네상스 시기에 만들어진 공화주의적 전통은 북부문화의 일부로서 현대에 와서는 남부에서보다 더 높은 자발적 사회성을 낳는 원천이 되기에 충분할 만큼 잘 존속되어 왔다.


158쪽/ 이런 관점에서 이탈리아의 소규모 가족기업들 사이에서 생겨난 관계망은 미래의 물결이라기보다 새로운 시장과 기술적 기회를 이용하는 데 필수적인 방법인 좀더 효율적인 규모와 수직적인 통합으로 변모하지 못하는 무능력의 반영일 수도 있다. 이 기업들이 대만의 영세기업들처럼 공작기계, 도자기, 의류, 디자인 그리고 기타 거대한 규모가 이롭지 않은 사업들을 특화해 온 것은 우연이 아니다…

많은 비평가들이 이탈리아를 유럽대륙에 비유하곤 했지만 내가 아는 한 중국에 비유하는 사람은 없었다. 이 두 지역이 역사, 종교, 그리고 기타 문화적 측면에서 크게 상이함에도 몇가지 결정적인 측면에서는 실제로. 매우 유사하다. 양측 모두 사회구조 중 가족이 중심적인 역할을 맡고 있으며 이에 상응하여 비혈연관계에 기초한 조직이 미약하다. 또한 양측의 산업구조 역시 상호독립성이라는 복잡한 망으로 묶여진 상대적으로 영세한 가족기업으로 이루어져 있다.


159쪽/ 따라서 산업구조의 측면에서 이탈리아의 이 지역은 본질적으로 유교적인 것이며, 경제적 조건을 변화시키고자 할 때 그들이 해결해야 할 과제도 유사할 것이다.


184쪽/ 산업화 이전에 한국, 일본, 중국은 모두 공식적인 사회계급으로 엄격히 계층화되어 있었다. 그러나 한국의 계층 간 경계선의 틈새가 일본이나 중국에 비해 한층 폐쇄적이었다.


189쪽/ 한국인들은 비교적 집단지향적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대다수 서양인들처럼 강한 개인주의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다.


198쪽/ 실제로 한국인들은 정부 보조금을 국영기업이 아닌 민간업체들을 통해 공급함으로써 프랑스나 이탈리아식 산업정책의 여러 가지 함정에 빠지지 않으면서 경제를 의도했던 방향으로 만들어 갈 수 있었다고 말할 수 있다. 한국의 재벌이 유럽이나 남아메리카의 많은 국영기업이나 정부가 보조하는 기업에 비해 더욱 경쟁적일 수 있었던 것은 한국의 정부 감독자들이 그들로 하여금 고도로 경쟁적인 해외시장에 주력하고 그곳에서 성공하도록 철두철미하게 강조해 온 데 힘입은 것이다.


199쪽/ ... 모든 국가가 한국처럼 효과적인 산업정책을 운영할 수 있을 만큼 문화적인 능력을 갖추고 있는 것은 아니다. 한국이 아니었다면 여러 해에 걸쳐 기업에 제공된 막대한 보조금과 혜택은 엄청난 부정과 부패, 투자자금의 엉터리 배분으로 흘렀을 가능성이 있다... 박정희 대통령은 자신의 숱한 결함에도 절제적이고 엄격한 개인적 생활양식을 지켰고, 경제적으로 한국을 어디로 이끌어 갈지에 대해 분명한 비전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경제적 지도자로서 훨씬 훌륭한 일을 했다. 다른 사람이 그와 같은 강력한 경제적 권한을 가졌더라면 아마도 대재난을 초래했을 것이다.


227쪽/ 일본에서 대기업의 가족소유권은 1945년 미국의 점령으로 갑작스럽게 끝났다. 맥아더(Douglas MacArther)에게 조언했던 뉴딜(New Deal) 행정부는 재벌 독점에 의해 나타나는 커다란 부의 집중은 비민주적이며 일본 군국주의의 지지세력이라고 생각했다... 대가족의 신뢰를 바탕으로 한 소유주는 '재벌 해체위원'에게 주식을 맡기라는 명령을 받았다. 재벌 해체위원들은 그것을 대중에게 매각했다.


290쪽/ 독일 사회에서 신뢰에 관해 주목할 만한 사실은 독일군 내의 '임무가 없는 장교(Noncommisioned Officer)'의 역할이다... 어떤 군에서건 NCO들은 교육 수준이 낮거나 육체 노동자라는 배경을 갖고 있으며, 역할로 보아 단위 부대 내에서 화이트 칼라 출신 장교보다 지위가 낮다... 독일 NCO와 부하와의 관계는 마이스터와 직공의 관계처럼 친밀하고 동등하다.


291쪽/ 베버의 가장 유명한 이론은 권위를 전통적 권위, 카리스마적 권위, 그리고 관료적 권위로 구분한 것이다... 베버에 의하면 합리성의 최종적인 구체화는 근대의 관료주의이다...

베버에 의하면 근대 경제세계는 계약의 발생과 밀접한 관계에 있다. 베버는 결혼과 상속 같은 계약은 수천 년간 지속되어 온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신분계약'과 '목적계약'을 구분했다...


382쪽/ ... 흑인은 주변의 백인공동체로부터 신용을 얻지 못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앞으로 살펴볼 이유 때문에 그들 서로도 신뢰를 갖고 있지 않다...


384쪽/ ... 흑인들은 은행업에서 얼마간의 성공을 거두었고 미용실, 이발소, 장의사 등 한정된 특정 분야에서 번창할 수 있었다...

흑인이 자기 지역 내에서조차 사업을 장악하지 못한 것은 엄청난 분노와 갈등의 원천으로 작용했다.


385쪽/ ... 소규모 사업에서 흑인들의 성취도가 상대적으로 빈약한 데 대한 설명 중 가장 흔한 것은 이를 외부, 환경의 탓으로 돌리는 것이다.


386쪽/ ... 그러나 이 모든 것은 흑인에게 물건을 파는 흑인이 왜 그토록 적은가, 또는 흑인 자신은 왜 비흑인의 물건을 사기를 더 좋아하는 것처럼 보이는가 하는 데 대한 설명과는 무관한 사항이다.


387쪽/ ... 무엇보다도 미국에서 소규모 사업체가 은행 대부로 설립된 예는 거의 없으며, 대다수가 개인의 저축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이것은 공급이 부족한 것은 신용 대부가 아니라 흑인 기업가라는 사실을 보여 준다.


432쪽/ ... 중국, 프랑스, 남부 이탈리아 등을 비롯한 저신뢰 사회는 모두 강력한 정치적 집중화의 시기를 거쳤는데... 이와 반대로 일본, 독일, 미국 등의 고신뢰 사회에서는 중앙집중화된 국가 권력이 오래 지속된 적이 없다...


455쪽/... 성공적인 자본주의 경제는 안정된 자유민주주의의 수호자로서 매우 중요하다... 산업화 과정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면 고등교육을 받은 성숙한 국민을 필요로 하고 세분화된 노동분업을 요구한다. 이 두 가지 조건은 민주주의 정치제도를 뒷받침한다.

... 사회적 협동의 능력은 시장의 형성에 일정한 역할을 하는 이전의 습관, 전통, 규범에 의존하고 있다. 따라서 성공적인 시장경제는 안정된 민주주의 때문이라기보다는 사회적 자본이라는 그 이전의 요인에 의해 결정될 가능성이 크다.


456쪽/ ... 시장은 민주제도를 강화하는 '사회성을 가르치는 학교' 역할을 할 수 있다.

사회적 자본이라는 개념은 자본주의와 민주주의가 왜 밀접히 연관되어 있는지를 분명히 설명해 준다. 건강한 자본주의 경제란, 그 토대인 사회가 충분한 사회적 자본으로 사업, 기업, 관계망 등을 스스로 조직화할 수 있는 경제를 말한다. 스스로 조직하는 능력이 없을 때는 국가가 주요 기업과 사회의 각 부문에 끼어들 수 있다. 그러나 시장은 사적인 행위 주체들이 의사결정을 내릴 때 더욱 효율적으로 작동한다.

... 민주적인 정치제도... 이와 같은 제도는 조직화되어 있지 않은 고립된 개인들의 무리(mass)를 토대로 해서는 생겨나지 않는다... 이런 조건 하에서는 전제주의와 선동정치를 초래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공동의 이해관계를 가진 사람들이 공동의 목적을 위해 타인과 함께 일할 수 있을 때에만 비로소 안정된 정당조직이 생겨날 수 있다. 이런 능력은 결국 사회적 자본에 달려 있다.

자발적 사회성의 이런 경향성은 지속가능한 기업을 세우는 데도 중요하지만, 효율적인 정치조직을 수립하는 데에도 필수 불가결하다.




감상:

훌륭한 책이다. 1995년 작으로 출판 당시에는 꽤나 신선했을 시각과 통찰력이다. 시기적으로 지금은 독서의 매력도가 많이 옅어진 듯하다. 제도를 중시하는 제도경제학파의 관점에 문화적 시각을 강화하여 해당 사회의 신뢰 수준을 관찰하는 측면에서 많은 계발적 시사점이 있다.

(2001. 7.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