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쿠가와 이에야스

by 조영필 Zho YP

도쿠가와 이에야스(대망)

조선사람의 세계여행





어제부터 대망을 읽기 시작해서, 아직 한권도 미처 못 읽었는데. 하루 해가 짧다.


대망 2권째 진입. 난세의 길? 사건의 설명 시점이 교묘히 다르다.


대망 6권째. 드뎌 다케다 가 나왔다. 주말내내 빗소리와 오수를 더불어 진도를 엄청 뺐다. 대망이 손에 있으니 만사가 귀찮다. 삼성 인터넷 TV에서 내가 젤 좋아하는 보석게임 시간도 줄였다.


안타깝다. 다케다 신겐이 총에 맞아 죽다니. 대망에선 만나자 마자 이별인 셈이다. 카케무샤 영화를 2 번 보았는데. 그대로 책에서 그 장면이 재현되었다. 이제 7권을 집는다.

다케다 가문은 우리나라의 태껸을 일본에서 柔流 로 천황의 무술사범으로 천년간 보존해온 가문이라고 합니다. to believe or not.


잠이 부족하다. 일하고 술먹고 남은 짜투리 시간에는 대망까지 읽고 있으니.


대망을 읽다가 놀라운 구절을 발견. 7권 말미 317쪽에서 다케다의 가신이 이렇게 말한다. ‘신라사부로 新羅三郎 이래 대대로 이어져온 겐지 源氏 라는 명가. 어쩌구’ 한풀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던 역사의 진실을 일본 소설가가 또 이렇게 기록하고 있는 것이 마냥 신기하다.(신라사부로는 신라신사에서 성인식을 가졌기 때문에 명명된 이름이므로, 신라사부로가 신라계라는 것을 보증하지는 못한다.)


대망 8권에서 '나가시노 전투'의 전말을 감격스레 보았다. 카케무샤 에선 그 전투가 영화의 마지막인데. 이책에선 아직 1편에 불과하다. 그리고 9권에는 오다의 최후가 나올 예정이다. 오다는 그 최전성기에 벼랑에서 떨어진 것이다. 이것은 대부분의 영웅의 운명처럼 느껴진다. 다케다도. 이마가와도... 나가시노 전투에 대해 어렴풋이 알고 있던 것과 전투의 실상은 많이 달랐다. 참으로 의미심장한 전투이라 하겠다.

혼노사의 변까지 제1부 완독. 이제 파괴자 오다의 변덕은 가고, 개천 용의 주인공 도요토미의 스토리가 펼쳐지는 것일까?


대망 10권 아케치 미츠히데는 혼노사의 변을 일으키고, 정권을 장악하나, 누구도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신속하게 정보를 장악하고, 동시에 명분을 세우며 민심의 대세를 장악한 도요토미에게 덜미를 잡히고 만다. 나는 이 구절을 읽으면서 1979년의 한국에서도 이와 비슷한 인물 전형들이 나타나는 사건이 있었음을 떠올린다.


오다가 죽고 변수가 많아진 11권 150쪽 부근 정말 잼 있다. 1번 출근에 50쪽. 퇴근때도 50쪽. 하루에 100쪽. 책1권은 350쪽. 그러므로 주중에 1권 주말에 1권이면. 1주에 2권. 아직 남은 책은 22권. 앞으로 3달 동안 계속 읽고 있을까? 술이 술을 먹듯이. 책이 책을 읽어야 할 듯.


대망 11권-12권은 전국 정략의 깊이도 깊이이지만 작가의 필력이 거침없이 터져 나오기 시작하는 느낌이다. 붓의 몸이 풀린 것이다. 13권에서 도쿠가와는 종기로 중병에 시달려 죽음 일보 직전까지 가나, 쑥뜸으로 기사회생한다. 쑥뜸에서 고름이 뿜어져 나오는 장면은 꽤나 사실적이다. 이 장면에선 인산(仁山) 선생님이 자연스레 떠오른다. 그의 의술은 어디서 온 것일까? 14권에서는 큰 지진이 일어난다. 오늘의 동일본 지진이 느껴진다. 예나 지금이나, 일본에서 지진은 자연이며 역사인 것이다.


대망을 읽는 것이 일본만을 읽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된다. 슬슬 풍신(도요토미)의 세계경략이 나오더니, 조선도 언급되기 시작한다. 그런데 조선은 갈매기 같은 느낌이다. 별로 먹을 게 없다는 것, 그래서 오사카(사카이)의 상인들은 풍신의 관심을 남만으로 돌리고자 한다니, 참, 나;;; 일본이 유럽을 포함하여 세계정세를 논하고 있는 16세기이다. 일본에서 바라본 조선과 세계~


‎15권부터 천주교가 나온다. 그 당시 전래된 천주교가 주는 느낌은 오늘날의 '여호와의 증인' 같은 느낌이 아니었을까? 병역의무를 인정할 수 없다며, 국가권위를 부정하는 것이나, 천주나 사제에 대한 경외 아래 천황이나 쇼군을 두는 신민들에게 지배자의 당혹감이란 이루 말로 다할 수 없을 것이다. 결국 서구의 왕은 천주의 권위를 빌림으로써, 권위의 허울을 쫓다가 결국 民主를 잉태한다. 민주란 천주가 왕권을 견제하여 비로소 탄생한 것이다. 그래서 기독교는 어디서고 피의 탄압을 받아야 했는데. 내가 보기에 이것은 天乃人이다. 남은 의문은 희랍 民主의 성격 규명이 필요해진다.


대망 16권 268쪽 놀라운 사실. 정종(正宗) 이 일본 전국시대의 최고의 칼. 브랜드 였네요. 소슈의 마사무네. 라고여.


드디어 덕천(도쿠가와)의 에도 시대가 열린다. 그것은 풍신의 교묘한 정략인 영지 교체 명령에 의한 것이었다. 영지교체는 기득권의 상실을 뜻하므로, 그 당사자에게는 고난의 길이었던 셈이다. 그러한 전기를 발판 삼아 제2의 오사카(오다와 풍신의 거성)가 건설되고, 이젠 제1의 도시(에도, 동경)가 되었다. 정도전의 한양 도읍지 결정과 비교하면 같은 점도 있고 다른 점도 있다. 역성혁명과 기존 정치세력을 벗어난 점은 유사한 점이나, 도읍의 계기와 도읍 결정의 Logic은 다른 점이다. 항구의 바다를 향한 자세를 중시하는 섬나라와 배산임수의 풍수를 중시하는 반도의 차이. 이 섬에서는 안에 후지산이 있고, 바깥에는 바다가 있으므로, 배산임해가 기본이었다. 반도에서는 산줄기가 많아 물줄기와 조화가 필요하여 풍수가 탄생. 대륙은 모두 평지이거나 산이므로 풍수가 없다.

영지교체란 회사에선 뺑뺑이에 해당한다.


반야탕이 뭔가 했더니 술이네요. 난 개장국인가 했는데.


대망17권. 다도의 예 를 추구하기 위해 리큐선사는 풍신과 맞장뜨다가 할복한다. 권력의 추구와는 다른 道의 추구, 그리고 신념을 위한 산화(散花). 전국(戰國)의 백화쟁명은 다양한 예인들의 흐름을 낳았으니, 다도, 명검의 장인, 춤, 노래, 연극 뿐만 아니라, 바둑, 장기의 명인까지 풍신의 진중에 함께 한다. 전란이 끝나면, 전쟁 외에 달리 할 것을 찾아야 하는데, 이 점에서도 풍신이 개척자이고, 덕천은 이를 충분히 음미하여, 名人 제도를 만든 것이다. 덕천의 기량은 적진에 들어가서 왕위를 쟁취한 현대사의 누구를 연상케 한다.


일본에 간 참에 대망 일본말 만화를 한 권 샀다. 일본은 임진왜란때 이미, 지금의 일본과도 같은 선진국이자, 강대국이 되어 있었다. 왜 우리는 그 진실을 애써 외면하는 걸까? 그때도 중국과 일본이 우리나라땅에서 싸우고, 그들끼리 강화협상을 하고 있다.TT


예전에는 예능도 道 이었다. 도를 추구하지 않고서는 그 극한의 경지까지 도달하긴 힘들지 않았을까? 일본 전국시대의 芸人들은 할복까지 마다하지 않으면서 사무라이들과 대결하였다. 오늘날의 예능은 어떠한가? 거의 도인이 다 된 송창식과 IDOL 들을 비교하면서 기술이 된 예능의 가벼움을 바라본다. 이것을 우리는 예능의 껍질이라 할 것인가? 본질이라 할 것인가!!!


대망 27권째. 덕천은 엄청나게 오래 산다. 오사카성은 아직도 살아있다. 덕천이 그처럼 장수하지 않았었다면? 하는 가정이 가능하다. 그만큼 덕천은 내버려둔다. 문제의 불씨를.


도쿠가와 이에야스 전32권 완독. 시계를 보니 8월7일 0시20분. 1편 9권(오다의 전성기). 2편 11권(도요토미의 전성기) 여기 까지는 영웅들의 쟁패전. 3편 12권(도쿠가와의 치세) 후반은 잠룡들을 잠재우는 신룡의 솜씨. 그러나 도쿠가와는 전형적인 수비형. 후반에 접어들면서 선제골을 지키기 위한 놀라운 자물쇠 수비. 맨유 다음에 박셀로나 보다가 이태리 축구를 보는 것은 시간이 다하기를 기다리는 마음. 그렇게 아무런 미련없이, 책에서 일어난 망집도 책 속에서 꺼트려 버리고 난 책을 덮는다. 이제 또 무슨 낙을 찾을까? 하며.


임란 이후 200년간 12번의 조선 통신사. 그들은 도대체 무슨 일을 한 것인가? 서양문물을 흡수하는 일본 문명의 발전을 목도하고도 선진문화를 전파한다는 우월감에 사로잡혀, 아무런 자기반성의 계기로 삼지도 못하였으니.~~


연행사(청의 연경으로 간 사신) 는 北學派로 조선에 영향을 미쳤으나, 통신사 는 큰 영향을 끼치지 못한 이유 중 하나는 언어의 장벽일 수 있다. 일본은 10세기에 이미 그들의 글자(가나)로 대중문화를 발달시킨 반면, 조선의 사신들은 자기네 글(한글)도 언문이라 깔보는 마당에 가나로 된 일본책을 이해하고 싶은 맘은 추호도 없었을 터이다. 대신 어려서부터 갈고 닦은 한문실력을 본바닥에서 유감없이 발휘하면서 상호 친근감이 고양된 청에 간 사신들은 고증학과 서학을 조금 가져왔다. 明이 망한 뒤 마지막 남은 소중화의 자부심이 묻어나는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를 보며 드는 생각이다.


조선사람의 세계여행을 완독함. 조선사람으로 세계를 일주한 것은 1896년 민영환 일행이 처음이다. 도쿠가와 이에야스 17권 부록에 보면, 일본은 텐쇼 견구사절이 희망봉을 돌아 1582~90년에, 케이쵸 견구사절이 태평양과 멕시코를 건너 1613~20년에 유럽을 방문하고 있다. 이 근 300년의 조선과 일본과의 견구의 차이는 용기의 차이라고 생각된다. 부끄럽더라도 일단 부딪쳐보고 그 차이를 몸으로 느껴야 발전할 수 있다. 일본의 유럽방문은 바르톨로메우 디아스의 1486~8년 희망봉, 바스코 다 가마의 1497~8년 인도, 콜럼버스의 1492년 아메리카, 마젤란의 1519~22년 세계일주에 비추어 시기적으로 결코 그리 늦지 않은 방문이라 생각된다. 이러한 경험이 오늘날 일본을 G7의 No.2에 올려놓은 힘이다.


센고쿠(戰國)시대의 일본인들은 자신들의 세계를 天下로 인식하였다. 오다와 도요토미는 자신을 天下人으로 규정짓고 지역(영주) 수준의 세력 확대나 이해타산을 넘어 천하(일본 전체)의 평화와 안녕을 위해, 자신이 존재한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살았다. 우리의 경우, 중화의 세계 속에서 천자(중국왕)의 봉신(封臣)으로 스스로를 인식한 것과 비교된다. 일본의 이러한 세계인식과 자신감이 훗날 중원정벌을 목적으로 임진왜란을 일으키고, 근세에 접어들어서는 중국을 반식민지로 유린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우리의 역사를 퇴고해볼 때, 영토적 측면에서는 살수대첩과 한산대첩이 가장 중요했다. 전자는 우리의 강역을 중국의 일개 군현으로 전락되지 않게 한 명확한 불가침의 공간을 역사시대 초기에 제공하였다. 다음으로는 떠오르는 가공할 만한 일본의 육지전 전력에 대한 후방지원을 차단한 이순신의 제해권 장악이다. 현지의 비협조에 더하여 충분한 보급선과 퇴로를 차단당한 군대의 사기는 전쟁을 지속할 수 없게 하고, 한반도 점령(한반도를 봉지화)의 의욕을 좌절시켰다.


일본인들은 자신의 세계를 천하로 인식함과 동시에 안(內)으로 인식하였다. 일제시대에 조선을 병탄하고 조선인을 일본인화하기 위해 창씨개명을 단행하고, 전쟁에 동원할 때, 내선일체라고 하였다. 우리의 감각으로는 선뜻 이해되지 않는 용어이다. 섬나라 주제에 자신들을 內地人으로 인식하고 있으니까, 이용악의 詩 팔원에 보면, 내지인 이라는 단어가 있다. 난 원래 그것을 내륙인으로 언뜻 잘못 이해하였는데, 이제사 그것이 일본인을 뜻하는 것임을 알게 된다.


다테는 오사카성 공략시 자기 사위인 이에야스의 아들이 적에 대한 공격을 서두르는 것을 막았다. 이것은 훗날 부자 대면 금지의 벌로 이어지는데, 이제야 알겠다. 다테는 도쿠가와를 벤치마킹한 것이라는 것을.


도요토미의 조선 침공시 도쿠가와는 제16진으로 편성되어, 후방군으로서 병력 손실이 없었기에 훗날 패권을 잡을 수 있었다. 아마도 다테 또한 그 점을 염두에 두었던 듯하다. 따라서 도쿠가와는 도요토미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이에 철저히 대비한 것이 그의 마지막 피날레이다.



(2011년 6월 28일 ~ 8월 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