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와 2부
다큐 [돈의 힘] - 나래이터: 니얼 퍼거슨, 1부와 2부
1부: 탐욕의 시작
잉카인들은 금과 은을 단지 귀금속으로만 생각했다. 그들은 금을 해님의 땀, 은을 달님의 눈물이라고 불렀다. 그들은 가치의 단위는 노동력으로 인식하였다.
1532년 피사로가 엘도라도의 전설을 찾아 잉카에 왔다. 까하마르까 전투를 거친 후, 안데스산맥의 볼리비아 포토시에서 현재까지 채굴된 은은 62,000톤이다. 당시 잉카인들은 왜 유럽인들이 금과 은에 열광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금과 은은 휴대할 수 있는 권력이며, 가치의 저장소이고 계산의 단위이다.
스페인인들은 강제노동제를 적용하였는데, 포토시에 들어간 사람 8명 중 1명은 살아 돌아올 수 없었다.
은을 지나치게 많이 채굴하여, 은의 가치가 떨어졌다. 똑같은 물건에 더 많은 가치가 매겨지면서 물가는 오르기만 했다.
4000년전 바그다드의 점토판에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금융거래기록이 있다. 그 내용은 수확때 채무자가, 채권자에게 곡식 330되를 갚는다로 되어 있는데, 특이한 것은 점토판의 소유자에게도 보리 4되를 준다고 되어 있다.
영국의 20파운드 지폐에는 소비자의 요구시 20파운드를 지불할 것을 약속합니다.(Promise to pay the Bearer on Demand the sum of 20 pounds)
사람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돈에도 만족한다. 돈은 곧 화폐발행자에 대한 믿음 그뿐이다. 금속이 아닌 것이다. 상호신뢰체제가 근간이다. credit(신용)은 라틴어 credo(나는 믿는다.)에서 왔다.
초기 대부업자들은 천대를 받았다.
서기 1200년 이탈리아 북부는 서로를 믿을 수 없는 위험한 곳이었다. 로마숫자로는 큰 수의 계산이 곤란하였다. 피사에는 7가지 종류의 주화가 통용되었고, 간단한 거래에도 주판이 필요했다.
레오나르도 피보나치 [계산의 책(리베르 아바치)]은 이자 계산을 위해 쓰여졌다
베네치아는 대부업의 실험장이었다. 그 당시를 셰익스피어는 베니스의 상인에서 그리고 있다. 샤일록은 당시 3000두카트를 빌려주었다. 이때 Ducat은 12세기부터 1차세계대전전까지 통용되었다.
여기서 말하는 '좋은 사람'이란 신용이 있는 사람이란 뜻이다. 대출에는 항상 문제가 있을 수 있으므로 그 보상을 이자라고 한다. 베네치아에는 ghetto nuovo라는 유대인 지구가 용인되었다. 그들은 작은 탁자(banco)에서 대부를 하였다. 대부업은 중세교회의 엄격한 제한이 있었다. 유대인도 마찬가지였지만, 구약 신명기 23장에 형제들에게는 대부하고 이자를 받을 수 없다고 되어 있다. 따라서 비유대인들에게는 대부를 할 수 있었던 것이다.
대부업자는 탐욕하고 무자비하게 묘사된다.
15세기 이후 이탈리아에서 메디치가는 400년간 피렌체를 지배하면서, 여러 왕비와 교황 3명을 배출하고, 르네상스 전체를 후원하였다. 그 작품들이 우피치 미술관에 보관되어 있다.
메디치가도 처음에는 데대감비오라는 양모조합거리에서 대부업을 하였다. 1390년에는 동네불량배 수준으로 5명이나 사형을 당하였다. 지오반니 디비치 데 메디치가 독창적 회계법을 개발하였다. (리브로 세그레토?) 그는 상업어음의 중요성을 인식하여, 무역거래시 환전의 댓가로 적은 수수료를 받았다. 대출이자는 없었다. 가불을 할 경우에도 그 기간만큼 수수료를 받았다. 예금자에게도 보상을 하였는데, 이자는 없이, 신용을 사고 팔 수 있게 하였다. 고리대금방지법을 회피하였던 것이다.
또한 규모보다 다양화를 추구하여, 조합형태의 분권체계가 수익의 비결이었다. 위험이 분산이 되면, 이는 또한 채무자의 비용을 줄여주었다. 피렌체, 베네치아, 로마 등을 네트워크로 운영하였다.
그는 1429년 사망시, '금융기준을 지켜라'라고 유언함. 따라서 은행업은 떳떳한 장사, 돈이 남는 장사가 되었다. 그의 아들 코시모 대에 이르면, 그의 부는 곧 권력이 되었다.
"정치는 코시모의 집에서 이루어진다. 우리가 그렇게 부르지 않을 뿐, 그가 바로 왕이다."라고 그 당시의 한 교황이 말하였다. 은행가들이 하느님과 가까와졌다. 그것은 [동방박사의 경배]라는 그림에 잘 표현되어 있다.
(대출과 외환?) 귀족들은 돈을 갚지도 않고, 돈을 받으러온 은행직원을 쫓아내기도 하였다. 불량채권이 문제였다.
미국 테네시주 멤피스는 파란 스웨이드 신발과 립바베큐 구이와 파산자들로 유명하다. 메디치가는 부유한 사람에게 돈을 빌려주었지만, 미국은행은 평민, 즉 누구에게나 대출해준다. 여기저기, 매혈, 차량소유권, 급여담보, 백화점 전당포가 보인다. 파산자들을 상대로 먹고사는 경제이다. 글래스고우의 동쪽 끝이다. 빚 대신 차를 회수. 차는 매주 500대 정도 경매되고 있다. 미국 자본주의는 손쉬운 파산에 기반을 두고 있다: 불량채권. 파산전문변호사. 13000명이 파산했다. 돈을 갚는 대신에 파산을 선택하고 있다. 파산법 7장은 청산에 관한 것이고, 13장은 회생에 관한 것이다. 파산권이 천부인권으로 보장된다고 말하여지고 있다.
-------------------------------
2부: 세계의 채권시장 - 지불약속
7조불. 금융거래 - 정부, 빌 그로스 핌코회장. 은행의 대부 - 채권시장, 전쟁자금/ 600년전 이태리, 워털루전쟁, 남북전쟁, 아르헨티나가 무릎꿇다.
헤라클레이토스는 '전쟁은 모든 것의 아버지'라고 말했다.
85조불 채권시장, 채권이 포화되면, 집값이 하락한다. 피렌체, 피사, 시에나 전쟁(탐욕과 돈)
콘도 티에리(용병징집인). 피렌체 대성당에 전쟁광이던 죠바니 아큐티(호크우드?)가 있슴. 그는 밀라노, 파도바, 피사, 교황을 위해 전쟁을 수행했으며, 1364년에 피사와 피렌체를 대리하여, 한쪽을 위해 전쟁하다가 다른 쪽을 위해 전쟁하기도 했슴
전쟁으로 인해 부채가 증가하면, 시민들에게 강제적으로 돈을 빌린다. 그러나 이자를 지급한다. 5만 플로린에서 5백만 플로린으로 정부채권을 발행(유동자산?) 시민들이 투기자가 되고 모두에게 남는 장사. 이자를 낼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채권을 더 많이 발행한다. 채권의 가치가 급락한다.
1509~29, 16세기초 베네치아에서 군인의 폭동이 일어났다. 채권가치가 급락하였기 때문이다. 액면가의 10%에 거래되나, 액면가에 따라 이자가 지급된다. 이것이 채권시장의 원리이다.
1818년 6월 18일 아침. 워털루 전투. 데이슨 로스차일드. 국가의 신용이 자신의 손에 달려있다. 유럽전체에 41채의 저택을 소유. 1810~36년 기간에 국제금융계의 거물로 부상(3남 에이선은 영국에 거주). 형제들간의 편지는 주덴도이치(히브리어를 독일어로 쓰는 것)로 썼다.
워털루 전투에서 프랑스군은 약탈로 군수품을 조달하였으나, 영국군은 채권으로 조달하였다. 웰링턴 공작은 군인들의 임금을 지급하기 위해 금이 필요하였다. 로스차일드는 영국정부의 대리인으로 금과은을 모아 웰링턴 공작에게 공급하였다. 군대가 해산되면 금값이 떨어진다 -> 도박판
1815년 공채를 대량 매입 -> 1817년 채권 매도. 시세차익으로 6억 파운드를 기록. "사랑받기 보단 두려워 하게 만들라"
남부군은 목화를 채권지급담보물로. 전전가격으로 프랑스회사가 받음. 남부연합은 목화로 영국을 위협. 리버풀항구로는 목화 출항을 금지하였다. 따라서 목화가격이 오르고, 채권가격이 올라, 영국경제에 타격을 주었다. 당시의 목화기근은 인위적 기근으로서 맨체스터의 방직공장은 올 스톱. 실업 급등
그러나 1862년 4월 뉴올리안즈 함락으로. 루이지애나 중립(?) 총17억불(장당 1센트) 물가 90배 폭등: 인플레이션 남부몰락
빌그로스는 카드플레이어로 블랙 잭 선수이기도 하였다. 그가 두려운 것은 인플레이션
인플레이션 초기에 채권가격 하락
1946년 2월 후안 페론. 아르헨티나는 '은의 강'이란 뜻
1989년의 위기. 70년 내전. 80년 영국과의 전쟁
공채를 발행 - 인플레이션이면 휴지 - 투자자 외면 - 공채 폭락 - 중앙은행이 화폐발행을 못해, 국고가 바닥이 남
당시 부총채, '이것은 물리적 문제입니다.' 종이가 떨어져서 지폐를 발행할 수 없었다. 점점 더 액면가가 높은 화폐를 발행할 수밖에 없었다.
채권시장에서 채권을 팔아 국고를 충당할 생각이라면 인플레를 고려해야 함.
감상:
KBS 걸작 다큐로 6부까지 있으나, 1부와 2부가 흥미로왔슴. '전쟁은 모든 것의 아버지'로서 채권(공채)도 발명함.
(2015. 3.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