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필 역
Taxes in the Ancient World, Almanac, Vol. 48, No. 28, April 2, 2002, University of Pennsylvania.
고대 세계의 세금
"이 세상에서는 죽음과 세금 외에 어떤 것도 확실하지 않습니다."
--Benjamin Franklin, M. Leroy에게 보낸 편지에서, 1789년.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세금
Taxes in Ancient Mesonpotamia, by Dr. Tonia Sharlach.
기원전 2500년경 "부담(burden)"이라고 하는 세금 납부를 기록한 수메르 서판.
고대 메소포타미아와 비교하면 아마도 우리는 고통을 덜 받을 것이다. 그들에게는 주화 화폐가 없었기 때문에 고대의 가구는 현물로 세금을 내야 했고, 일 년 내내 다른 세금을 냈다. 인두세는 각 남성에게 소나 양을 당국에 인도할 것을 요구했다. 한 지역에서 다른 지역으로 상품을 운송하는 상인에게는 통행료, 관세 및 기타 세금이 부과되었다. 이러한 세금들을 가능한 한 피하기 위해 그들은 밀수에 자주 매달렸다. 기원전 1900년경의 한 서한에는 본점에서 온 상인이 직원에게 다음과 같이 지시했을 때 이러한 회피 조치의 결과가 열거되어 있다:
"Irra의 아들이 밀수품을 Pushuken에게 보냈지만 그의 밀수품은 탈취되었습니다. 그러자 왕궁에서는 Pushuken을 감옥에 처넣었습니다! 경비들은 강력합니다... 제발 아무것도 밀수하지 마시오!"
가금, 선박 무역, 어로, 심지어 장례식까지 거의 모든 것에 세금이 부과되었지만, 아마도 한 가구가 직면한 가장 부담스러운 의무는 노역이었을 것이다. 이것은 바빌론 언어로 "가는 것" 또는 "부담"이라고 불렸다. 가장인 한 자유인은 정부에 수개월 동안의 노역을 해야 했다. 운이 좋다면 그의 봉사에는 정부의 보리밭을 수확하거나 운하에서 침적토를 파내는 것일 수 있다. 그렇지 않다면 그는 군역을 해야 했고, 안전한 고향을 떠나 해외에서 전쟁을 하고 아마도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것이다. 그럴 형편이 되는 사람들이 이러한 노역을 피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들은 노예나 고용한 누군가를 그들을 대신하여 보냈다. 엄밀히 말하면, 대체는 불법이지만 우리는 그것이 널리 시행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대체를 할 여유가 없는 사람들은 더 과감한 조치를 취했다. 함무라비 법전 제30조는 "병사나 선원이 노역 때문에 그의 밭, 과수원 또는 집을 포기하고 도망간다면"으로 시작하며, 그 결과 그의 가족의 토지와 가금은 모두 몰수되었다.
현재 전 세계 박물관 컬렉션에 남아 있는 거의 100만 점의 설형 문자 서판(이 중 약 30,000개는 펜실베이니아 대학 박물관에 있음)은 과세와 같은 주제에 대한 통찰력을 제공한다. 메소포타미아 전시관을 다시 방문하는 것을 권장한다. 결국 그것은 세금을 정산하는 것보다는 낫다(it beats doing your taxes)!
고대 이집트의 세금
Taxes in Ancient Egypt, by Dr. David Silverman.
여기 Merenptah (1236-1223 B.C.)의 궁전 문설주에 표시된 것과 같이, 파라오는 자신이 적절하다고 생각하는 대로 세금을 징수할 수 있었고 실제로 징수한 강력한 통치자였다.
박물관 이집트 분과 관리자인 David Silverman 박사에 따르면 과세는 고대 이집트 시대를 지속하여 모든 파라오의 주요관심사로 살아있는 사실이었다. 행정 문헌, 문학 문헌, 서신 및 무덤 벽화는 고고학자와 역사가에게 세금, 세리, 세금에 대한 (권장될 수 없는) 푸념, 심지어 운이 좋은 소수를 위한 조세 피난처에 대한 단편적이지만 명확한 증거를 제공한다.
고왕국의 제1왕조(기원전 3000-2800년)의 이른 시기에 격년의 행사인 "호루스의 수행"에 대한 문서화된 증거가 있는데, 이는 파라오가 백성 앞에 나타나 세금을 징수하는 왕의 순행에 다름 아니다. 이러한 수입은 그가 국가의 수장이자 호루스 신의 화신이라는 이중적이고 논쟁의 여지가 없는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4월 15일이 결산의 날이었다는 증거는 없지만 고대 이집트인들은 최소한 연례 업무이었던 중과세와 씨름해야 했는데, 이는 가축, 곡물에 대한 부과금 및 다양한 종류의 노역으로 하는 지급을 포함했다. 또 파라오가 적절하다고 생각할 때 언제든지 부과되는 자의적 세금이 있다(군사 행사 또는 왕묘에 대한 작업에는 추가 세입을 필요로 한다).
부과된 모든 세금으로 인해 세금에 대해 약간의 불평이 있었던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세금에 대한 고대 불만의 사례는 살아남았지만 불만을 제기한 사람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우리는 모른다. 신왕국의 한 편지에서 한 사제는 과도한 세금을 보고 항의하며 "그것은 절대 내가 내야 할 정당한 세금이 아니다!"라고 말했다(Sally L.D. Kadary, "Taxation," in D. Redford [ed.] Oxford Encyclopedia of Ancient Egypt, vol. III[New York, 2001], pp.351-356).
조세 피난처(세금 면제에 관한 왕실의 인허)는 일찍이 고왕국의 제 4 왕조(2625-2500 B.C.)부터 기록되어 있다. 종종 세수를 통해 그들 자신이 자금을 조달하기도 한, 사원과 재단은 그의 직원과 재산에 대한 강제 노동 면제를 포함하여 세금 면제를 추구하였고 이를 획득한 것으로 나타난다.
고대 로마 제국의 세금
Taxes in the Ancient Roman Empire, by Dr. Donald White.
많은 황제들과 마찬가지로 세금 제도를 개정하려고 계획했던 로마 황제 디오클레티아누스(284-305 A.D.)의 두상이 새겨진 청동 주화.
로마 시대에 세금을 내는 것이 오늘날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처럼 불쾌했는지 아닌지는 당신이 누구였으며 언제 살았는지에 달려 있다. 기원전 167년 로마 정부는 최근에 점령한 지방속주를 희생하여 그리고 스페인 은광의 수익을 통하여 성공적으로 자국을 부유하게 만들었기 때문에 더 이상 이탈리아의 시민들이 소유한 토지에 세금을 부과할 필요가 없었다.
그것은 지방속주에게는 다른 이야기이었는데, 거기에서는 인간에게 알려진 모든 불법적인 수익 창출 계획이 적용되었다. 악명 높은 publicani는 공식 세율 이상으로 가능한 모든 세금을 징수하기 위해 속주 지사에 의해 고용된 민간징세업자였다. 그들은 다른 로마의 자본가들과 결탁하여 수확기에 곡물을 저가에 구입했다가 부족할 때 부풀려진 가격으로 되팔았다. 그들은 또한 강력하게 압박받는 속주의 주민들에게 월 4% 이상의 고금리로 돈을 빌려주었다. 그들이 신약성경에서 "죄인들"과 함께 끈질기게 한 덩어리가 된 것도 놀라운 일이 아니다.
각 황제는 치솟는 행정 비용을 감당해야 하는 도전에 직면했고, 세금 제도를 개정하려는 계획은 제국이 요동치는 만큼 방황했다. 가장 큰 변화는 늦은 시간에 찾아왔다. 디오클레티아누스(A.D. 284-305)는 이탈리아의 지주에 대한 토지세(대부분 동전이 아닌 현물로 지불됨)를 복원함과 동시에 혼합된 결과를 수반하는 일반적인 가격 동결 조치를 취했다. 그는 또한 상인과 기업 협회에 특별 통행료를 부과했다. 이론상으로는 그의 계획이 다양한 납세자 계층에게 어느 정도의 경감을 제공했어야 했지만, 토지세가 지불된 후 추가 세금이 부과되었기 때문에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또한 지급 부담은 경기 하강의 경우에 재정 파탄의 대상이 되는 지역 원로원 계급에게 전가되었다. 설상가상으로 디오클레티아누스의 후계자인 콘스탄티누스는 지방자치 원로원 계급이 세습이 되도록 하였는데, 결과적으로 그들의 낭비벽 아버지가 그들과 그 가족을 가난하게 만들었다고 해도 그들은 여전히 원로원 의원으로서의 지위를 상속받으며 그 아버지의 세금 부담이 함께 딸려오게 되었다.
(2021. 8.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