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스코 포파의 시론

Vasko Popa

by 조영필 Zho YP

당신의 여러 시들 중 하나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 조그마한 상자는 무엇을 뜻하는가 하는 질문을 받는다. 그 질문이 당신을 이 시에 대한 공상으로 이끌어갔으며 그리고 그 공상이 다음과 같은 일련의 질문들로써 당신에게 대답한 것이다.


그 조그마한 상자는 무엇인가? 아니면 더 정확히 말해서 그 조그마한 상자는 누구인가? 어린 사생아인가 그리고 인간인 그의 아버지는 물론 알려져 있지만 어머니(목제의, 철제의, 크리스탈제의, 혹은 신분이 높거나 낮은 또다른 가문의 출신인)는 그렇지 못한 기이한 사생아인가?


그것은 이번에는 인간과 한 동물과의 부정을 뜻하는 것이 아니며(사이렌도 아니며 켄타우어도 아니다), 또한 종족이 서로 다른 동물 간의 부정을 의미하지도 않는 새로운 괴물인가(용도 아니며, 일각수도 아니다?) 그것은 어느 대상과, 기계와의 인간의 부정을 뜻하며(반은 소녀, 또한 반은 기계) 우리들의 불쾌한 공상 속 산업이라는 초지(草地)에 사는 굶주려 있거나 아니면 벌써 죽어버렸을 늙은 괴물을 대신하려고 등장한 새로운 괴물인가?


아니면 성스럽게도 인간이 정자로 수태하듯이 위대한 세계로 수태하고 태내의 아이에 대하여 그러하듯이 그 같은 세계에 대해 조심하며 그것을 낳으려 하지 않는 반신(半神)인가?


아니면 아주 반대로, 위대한 세계를 전부 아가리 속에 처넣고는 그 다음 더욱더 못살게 굴려고 그것을 잘게 부수어버린 반악마인가?


어쩌면 그것은 그 자신의 보고(寶庫)이며 온 세상을 자기의 내부에 숨기고는 더욱이 그것을 더욱 잘 감시하기 위하여 작게 만들어버린 출납계원일까?


아니면 반대로 그 자신의 교도소이며 온 세상을 자기 안에 유폐시키고, 세상이 그곳에서 도망하는 것을 더 어렵게 하기 위하여 그것을 난장이로 변신시켜버린 여간수일까?


그것은 아주 단순히, 물론 약간은 4각형이고 근래에는 주로 상자를 생산해내고 있으며 그 자신 하나의 상자, 의문의 기적을 음모하는 조그마한 상자로 변해버린 사람의 머리일까?


아니면 우리의 주변 도처에 감추어져 있는 - 당신과, 모든 사람의 벽장 속에 - 우주의 여러 구멍 중의 하나일까? 그리고 한번은 커지기도 하고 한번은 숨쉬기가 어려울 정도로 쪼그라들기도 하는 그런 것일까?


아니면 세상에 대해서도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무엇인가를 시작할 줄 모르며, 무엇을 시작한다 하더라도 그것을 어떻게 끝내야 할지를 알지 못하는 세상의 공허함 자체일까?


아니면 단지 객관화되고 커다란 인간의 욕망인, 이 작은 상자에 불과한 것일까? 인간이 경탄하고 동시에 두려워하지만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그에 맞설 수는 없는 욕망일까?


그 작은 상자는 무엇인가? 그 작은 상자는 누구인가? 사실은 당신의 공상이 여기에서 열거했던 그 모든 것일까? 아니면 그 모든 것 중의 아무것도 아닐까?


당신의 시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는 질문을 받는다. 왜 사람들은 사과나무에게는 그 열매 - 사과가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묻지 않는가? 사과나무가 말을 할 수 있다면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씹어 보아라, 그러면 너희는 그것이 의미하는 것을 알게 되리라!


어떻게 당신은 시에서 의미를 끌어내려 하는가? 어떻게 당신은 당신에게 물어오는 그러한 것들을 시 즙이나 시의 분말이나 쟁반 모양의 시로 대접하기 위하여 시에서 즙을 짜고, 부수어 빻고, 요리하려 하는 것인가?


당신은 - 거침없이, 장난으로 - 당신의 시에 관한 시를 한 편 쓸 수 있다. 그것은 초라한 시가 될 것이다! 그것은 사과나무가 그 줄기와 가지와 잎에서 사과를 하나 손질할 때와 같은 것이 될 것이다! 수많은 것들이 그렇게 함으로 해서 이익을 보게 되리라! 그러나 그것은 사과나무와 마찬가지로 당신도 당신의 열매에 대해서 무엇인가를 말해야만 하는 사명은 받지 않았다는 사실을 증명해 준다! 곁들여 말해 두건대, 그것은 또한 당신의 시와 결코 닮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지 않는가? 단지 당신의 시들이 흡사해 보일 뿐이다. 그리고 그들에게는 당신의 이름이 공통분모로서 주어지는 것이다!


그 외에 사과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왜 아무도 당신에게 답변해 주지 않는가? 당신의 시는 당신의 내부 어딘가에 생겨나 무르익은 하나의 비밀을 의미하며 그것이 무르익었을 때 당신이 당신의 언어의 음절로써 나타낸 것이다. 이 비밀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당신이 알았더라면, 그렇다면 그것이 태어나 태양 아래로, 사람들 사이로 그리고 구름들 아래로 가게 하는 그러한 수고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당신에게가 아니라 다른 이들에게, 그 비밀이 배워서 알 수 있는 것인지 아니면 다만 그에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는 것인지 사람이 누설할 수도 있는지, 아니면 다만 동의만 할 수 있을 뿐인지 하는 물음에 사람은 그 비밀 속에서 포로가 되는 거라고 답변해 줄 수 있다.


당신이 뒤에 당신의 시를 살펴보면 그것은 당신의 손에서 사라지고 없다. 당신은 침묵하고 잠시 휴식하거나 아니면 최소한 휴식할 것을 생각한다. 당신은 그것이 자기 자신에게 스스로 답변하도록 풀어놓아 준다. 당신은 단지 그 독자로서 당신의 시에 대해 말할 수 있을 뿐이다. 왜냐하면 당신은 당신의 시의 첫 번째 독자이기 때문에. 그러나 그것은 결코 당신이 또한 권위 있는 최고의 독자라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당신의 시의 의미에 대해서 당신에게 질문하는 이들 중에는 당신 자신보다 더 영리하고 경험 많고 편견 없는 독자가 분명히 있다.


당신은 어떻게 시를 지었냐는 질문을 받는다. 사람들은 왜 돌에게는 그것이 어떻게 작은 돌멩이를 만들었는지를, 아니면 새에게는 어떻게 알을 낳았는지를, 그리고 부인에게는 그녀가 어떻게 아이를 낳았는지를, 묻지 않는가?


돌은 말할 수 없다 (우리는 얘기할 수 있다). 새의 언어를 아무도 이해하지 못한다 (혹은 그것을 인간은 잊어버렸다). 그리고 그 부인은 자기의 사랑을 얘기할 것이다, 자기의 사랑의 길을, 자기의 사랑의 상태를. 그러나 근본에 있어서 그녀는 아무것도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무엇이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인지를. 아니면 사람들은 자기가 어떻게 그 아이에게 두뇌를 만들어주었고 자기가 어떻게 그에게 영혼을 불어넣어주었는가 하는, 어머니가 했을지도 모르는 그 얘기를 이미 그녀에게서 들은 것일까? 당신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녀는 그럴 리가 없다고 그러나 그러한 이유로 해서 자기가 아이를 낳은 것은 어느 누구와의 사이에서도 아니었다고 주장하는 일을 그녀가 그만두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당신도 역시 당신이 어떻게 시를 썼는가를 대답할 수 없다. 당신은 이 물음 앞에, 머리는 팔 아래에 감추고 (날개를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자애로운 눈길을 하고서, 돌부처처럼 서 있다. 당신은 그렇게 새처럼, 돌처럼, 부인처럼 (아니면 거의 그렇게), 어찌할 바를 모르는 채, 말없이 그리고 묵묵히 서 있다. 그리고 사람들이 당신에게서 요구했던 이러한 답변은 당신이 시 각각에 지불해야 할 댓가일지 모른다 - 당신은 어쩌면 시쓰는 일을 그치게 될지도 모른다. 아니면 아주 끝에 가서는 당신 자신이 시를 쓴다는 사실을 의심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의심은, 우리끼리 얘기하는데, 근거가 없는 것이다!).


당신은 당신으로 하여금 시를 쓰게 하는 그 의식Zeremonie에 대해 뒷얘기를 할 것이다. 근본에 있어서는 시가 생겨나기 전에 앞서는 당신의 행동을 이야기하는 것이며, 또한 당신이 유일하게 알고 있는 시적 의식의 외적 측면을 얘기하는 것이다. 시가 생겨남과 더불어 최후의 장식을 하게 되며 또한 당신의 내부에서 완성이 되는 의식의 또다른 신비로 가득한 측면에 대해서는 당신은 아무에게도 어떤 것을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당신은 당신에게 질문하는 이들과 마찬가지로 그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시의 창작에 있어서의 당신의 역할은 중개자 역할이다. 당신의 내부에 구성되어 있는 시가 세상에 밝히 알려지는 것과 그것이 이 빛 중에 존재하고 미래에는 홀로 당신의 도움 없이 생존하고 영향을 미칠 수 있도록 중개한다. 그것은 사소한 일도 쉬운 일도 아니며 사람들이 단순히 그에 대해서 무엇인가를 정말로 말할 수 있는 일도 아니다. 모든 일이 그러하듯이, 일하는 사람 자신의 내부에 있는 이러한 주요하고도 결정적인 부분은 이미 끝이 난 상태이지만 그러나 알지 못한다.


당신은 종종 시를 위한 단어들을 어디에서 취하는가 하는 질문을 받는다. 당신의 목 안에 박혀 있는 단어의 뼈Wort-Knochen가 있다. 당신은 그것들이 목에 걸려 질식할 수도 있다. 당신의 마음 속으로 떨어져내리는 단어의 작열함Wort-Glut이 있다. 당신은 그에 타 죽을 수도 있다. 당신의 머리 속에 또아리를 틀고 있는 단어의 뱀들Wort-Schlang이 있다. 당신을 위하여 당신의 마적(魔笛)을 연주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단어는 조심스럽게 다루어야만 하는 것이다. 그리고는 무엇보다도 단어-열쇠Wort-Schlüssel가 있다. 이 단어-열쇠들은 살아 있는 유일한 단어들이며 그러한 것들로 당신은 한 편의 시를 지을 수 있다. 이러한 단어들은 언제나 당신에게 예기치 않게 오지만 그러나 결코 우연히 오지는 않는다. 그것들은 당신의 머리 속의 창궁에 별처럼 혹은 성좌처럼 돌연히 나타나 미래의 시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또다른 단어와 문장들 사이에서 빛난다. 이러한 단어들은 그 시의 전조로서 빛나는 것이다. 이러한 단어들만을 식별해내야 한다. 그것들은 마치 당신의 단어들이 아닌 것처럼 그렇게 당신을 당황하게 한다. 그리고 당신은 어느 때 어느 곳에선가 이미 들었던 것처럼 희미하게 그것들을 기억한다. 다만 장소와 시간을 알지 못할 뿐이다. 그리고 이러한 기억은 당신에게 언제나 희미한 채로 남아 있으며, 그 시를 집필한 후에도 역시 명백해지지 않는다.


당신의 경험이 풍부하고 원숙할수록 그것은 당신에게 시어(詩語)들이 그 근원으로부터 당신에게로 오고 있음을 가르쳐준다. 그밖에 그것들은 어느 곳으로부터 또 올 수 있을까? 살아 있는 단어들(단어-열쇠)의 이러한 근원들이 어디에 있는가 하는 것은 당신도 어느 누구도, 그에 대해서 당신에게 묻는 이들에게 말해줄 수 없다. 당신은 물론 이러한 근원들로부터 오는 그 길이 당신의 가슴을 통과하고, 당신의 머리를 통과하고, 당신의 영혼을 통과해 간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리고 그것이 당신에게 시를 쓸, 당신이 그를 위해 정성을 쏟을 만큼 그만큼 쓸 수 있는 가능성을 준다. 시인이라는 것은 - 모든 다른 것들보다도 - 인간, 살아가면서 자기의 시어들을 그 근원으로부터 이끌어내는 인간임을 의미한다. 자기 망각이 없이는 정신 집중이 없고, 정신 집중이 없이는 영감이 없으며, 영감이 없이는 계시(啓神)가 없고, 계시가 없으면 시가 없으며 또한 있을 수도 없다. 최소한 당신이 원하는 만큼의 시는 있을 수 없다.


그리고 종종 당신은 당신의 시어들을 누구에게로 보내는가 하는 질문을 받는다. 당신은 저기 당신이 받았던 곳으로 그것들을 돌려보낸다. 그것들을 그 근원으로 돌려보내는 것이다. 이번에도 역시 이러한 근원들이 어디에 있는지는 당신도 어떤 누구도 말할 수가 없다. 당신은 다만, 살아 있는 단어의 근원들로 돌아가는 그 길이 가슴을 통과하고, 머리를 통과하고, 모든 사람의 영혼을 통과해 간다는 것을 알 뿐이다. 그리고 그것은 다시금 모든 사람에게 그들 또한 - 그 시어들에 관해 - 생명을 희사하는 이러한 근원들과 교섭할 수 있는 가능성을 준다. 거기에는 공통된 것인 시적 행위와 시작활동의 인간애와 휴머니즘이 있으며 다른 어디에도 그것은 없다. 시인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이 살아 있는 단어의 근원들과 얘기하고 싶은 일상적인 욕구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때때로 그는 어느 정도인지를 알지 못한다.


그리고 모든 사람과 모든 독자에게는 그들이 시어들에 정성을 들이는 데에 있어서 따르는 법칙이 이러한 단어들이 그들의 소유가 되기를 바라는 때에 적용된다. 아니면 그가 - 그는 언제나 아주 높이 있기를 바란다 - 시의 위에 서 있을 수 있을 때 시는 그에게 결코 명백해지지 않는다. 시 속의 단어들은 하나의 폐쇄된 원을 형성한다. 그것들이 윤무를 춤춘다는 것은 알지만 무엇을 중심으로 하여 춤을 추는지는 알 수 없다. 시 속의 단어들은 그것들이 솟아나오고 지금 다시 그쪽을 향하여 흘러가고 이는 근원의 형상을 밝혀 준다. 그 단어들은 시의 위에서 몸을 구부리고 서 있는 사람에게는 등을 돌린다고 말할 수 있으리라. 그리고 그 사람든 다만 내심으로 자만하지 않고서 이러한 윤무 속에 끼어 있을 때, 단어들의 이러한 윤무가 그를 어디로 데려갈 것인지를 묻지 않을 때, 그리고 그가 방향을 바꾸지 않을 때, 그때에만 단어들을 정면으로 대할 수 있다. 다만 그와 같이 해야 그에게는 시가 명백해진다. 시가 내부로부터 그에게 나타나게 된다. 시 속으로 들어가는 또다른 입구와 통용문은 없다.


당신은 왜 시를 쓰는가 하는 질문은 언제나 받는다. 당신이 왜 사는가를 알기 위해 - 그를 위해 당신은 시를 쓴다. 살아 있는 단어들은 그들의 근원으로 가는 끝없는 길에서 때때로 당신의 내면에 투숙하여 밤을 지내거나 낮을 지낸다. 단지 그것들을 보고서 당신은 왜 사는지를 알게 된다. 그것들이 없다면 결코 당신의 들판을 둘러싸고 있는 산들 뒤에 감추어져 있는 것을 당신의 시야에서는 보지 못할 것이다. 결코 당신은 당신의 들판이 있는 곳을 알지 못하며 아무것도 들판 위에서는 발견되지 않을 것이다. 당신의 문장들은, 당신이 죽을 때까지는 다만 한줌의 흙에 불과하며 그후에야 비로소 옳은 것이 되리라. 당신은 들판 저 너머로 비틀거리며 걸어가서는 눈을 뜨고도 보이지 않는 벽에다 이마를 들이박을 것이다.


당신은 당신을 관통해 가는 이 끝없는 길의 한가운데에서 성장하며 살아 있는 단어들을 기다리고 있다. 당신은 그들을 마중하고 당신이 유일하게 가지고 있는 것을 선물로 그들에게 전한다. 깨어 있음과 침묵을, 그와 동시에 당신은 그들에게 음식과 음료도 내주길 원한다. 당신은 그들이 집에서처럼, 그들에게 어울리는 바에 따라 천개 밑이나 지하의 심연 속처럼 느끼도록 가지고 있지 않은 숨결도 그들에게 마련해 준다.


당신은 살아 있는 단어와 이러한 근원들로부터 먼 곳에서 성장한다. 당신은 그 근원들을 본 적은 없지만, 그러나 무언가 그 울림을 듣고, 무언가 그 모습을 감지하며 당신의 모든 시 속에서 무언가 그 명료함을 보는 것만 같다. 당신에게는 이러한 근원들이 언젠가는 고갈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없다. 당신에게는 그것들이 누군가를 독살하거나 유폐시킬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없다. 당신은 어떠한 유례없는 욕설도, 어떠한 저주도, 어떠한 돌멩이도 그에 이를 수 없으며 그 심연 속으로 떨어질 수 없기 때문에 이 근원들은 탁해질 리가 없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당신이 그렇게 살아 있는 단어들이 그 근원으로부터 가고 있는 길 한가운데에서 자라난다면 그렇다면 그것은 괜찮다. 당신은 이 길이 황폐해지고 쉽사리 빽빽하고 침투하기도 어려운 굉음으로 화하게 될지 모른다는 것과 아니면 그 길이 침묵이라는 두꺼운 먼지층 밑으로 가라앉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즉 그렇게 되면 당신은 탁월한 시는 더 이상 창작하지 못할 것이다. 당신의 이마는 다시금 온 세상을 덮고 있는 묘 위의 대리석으로 변하게 된다. 이 대리석 밑에는 당신이 육안으로는 볼 수 없는 모든 것이 영원히 놓여 있다. 그리고 당신은 더 이상 당신이 사는 이유를 알지 못하게 된다. 그것을 당신에게 말해줄 어떠한 살아 있는 단어도 거기에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당신, 시작활동에 몰두했던 당신은, 어디에 당신의 자리가 있는가 하는 질문을 받는다. 당신의 자리는 살아 있는 당신의 시어에 대해 일상적인 욕구를 지니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있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이유로-당신이 그것을 알고 있으므로 - 당신은 이 단어들을 침묵해서는 안 되며, 누구나 당신을 있지도 않은 것들을 암거래하는 밀매자라고 공언할 때에도 그래서는 안 된다. 당신은 누군가 당신을 존재하는 것들에 대한 범죄자라고 공언한다 해도 이 살아 있는 단어를 말못하게 해서는 안 된다. 진술된 시어는 모든 사람들을 위해서 생명도 희사하기 때문이다. 진술되지 않은 단어, 육체와 침묵 속에 매장되어 있는 이같은 단어는 부패하고 부서져 떨어지고 모든 사람들의 내부에서 독성을 지니고 그들을 죽음으로 이끌 수가 있다. 그리고 여기에서 모든 시대와 마찬가지로 현대의 살아 있는 단어에 대한 당신의 책임이 시작된다. 인류 자신이 그 빛이어야 하는 이 조그맣고 창작력 풍부한 별의 존재 또한 문제가 되고 있는 오늘날, 이전보다도 오늘날은 더 살아 있는 시어를 듣는 일이 요구된다.


당신의 자리는 수세기를 지내는 동안 당신처럼 그와 같은 까다로운 작업에 관계되어 있었던 당신의 언어 속 사람들의 긴 행렬 속에 있다. 그들은 얼마 안 되는 땅과 마음 속에 지니고 있었던 넓은 하늘을 한 편의 시로 변화시켰다. 그들은 창작할 마음이 내켰기 때문에 시를 쓴 것이 아니라 죽기를 원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죽기를 원치 않았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자기 주변의 사람들이 죽는 것도 보고 싶어하지 않았다. 그들은 자기들을 시 속에서 구원하기 위해 세상을 한 편의 시로 변화시킨 것이다. 그들에게 있어서 시를 쓴다는 것은 사랑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렇지 않다면 당신은 아무것도 생각할 수가 없다. 당신은 시를 썼을 때, 당신의 자리가 최종적으로 당신의 시와 관련을 맺고 있는 곳이 어디인지를 안다. 시 속에서 당신의 자리는 확실하지 않다. 당신이 사과 속에서 사과나무에 양분을 공급해 주었던 토양을 발견하리라고 상상하는가? 그 시의 후면에도 당신의 자리는 없다. 당신의 그림자가 시 위에 떨어져 불투명하게 할 것이다. 시의 밑바닥에, 그 아래 깊은 곳에 당신의 자리가 있다. 자양이 되는 모든 토양처럼.


-『언어의 세계』제2집 (1983년 가을, 청하) 에서

(출처: sitong.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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