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필역
왜 토마스 에디슨은 단순한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는가?
‘이 세상에서 옳다는 것 다음으로, 모든 것들의 최고는 명백하고도 확실히 틀린 것이다.’
- 토마스 헨리 헉슬리(T.H.Huxley)
이번 주에 나는 위대한 발명가, 토마스 에디슨에 대한 짧은 이야기를 골랐다.
에디슨의 장대한 저택에 방문한 손님들은 그의 건물 내 문들을 여는데, 엄청난 힘이 드는 것을 알고 놀랐다. 그들은 가까스로 문을 열고 들어서서는, 속으로 생각했다: ‘에디슨은 그토록 위대한 발명가이면서, 왜 자기 집 문들은 제대로 작동되도록 하지도 못하는 걸까?' ‘기름칠만 약간 하면 될 텐데’
많은 손님들이 이렇게 의아해 하였지만, 그들 중 누구도 먼저 에디슨에게 그가 문을 제대로 관리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묻지 않았다.
마침내, 노년에 한 지인이 에디슨에게 왜 그가 문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지를 물었다. ‘문제라고?’ 에디슨은 대답했다, ‘그 문들은 우물로부터 물을 퍼올리는 장치에 연결되어 있어요. 손님들이 문을 열 때마다, 약간의 물이 길어 올려지는데, 이것으로 나는 많이 수고를 덜게 되지요.’
아시트의 관점에서 보면, 이 이야기에는 두 가지 흥미로운 점이 있다.
1. 이것은, 물론, 아시트의 통합 기법을 사용하는 고전적 사례이다. ‘물을 길어 올리는’것은 문제 세계 내의 대상들(손님들)에 의해 행해지는데, 그 대상들은 이 행위를 하도록 대개는 고려되지 않는다. (문들은 손님들과 우물 물 사이의 매개 역할이다.)
2. 이 이야기의 서두에 형성되었던 태도와 말미에 형성된 태도의 반전은 아시트의 질적 변화의 원리가 적용된 멋진 사례이다.
서두에서는 문을 여는 것이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위대한 발명가로서 에디슨의 이미지는 부정적이었다. 그렇지만, 이야기의 말미에서 얻은 정보(손님들이 실제로는 에디슨을 위해 물을 길으고 있었다는 사실)로 인해 우리는 깨닫는다, 문을 열기가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에디슨의 이미지는 향상되고 있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