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필
오늘 만나기로 한 선생님과 연락이 잘 되지 않는다. 사무실에 거의 도착할 무렵 갑자기 문자가 왔다. 무슨 볼 일이 있어 외출하였다가 이제 사무실 들어오는 길이라고 하였다.
그래서 시간도 벌 겸 커피를 주문하여 들고 사무실로 올라갔다. 그런데 벨을 울리니 문이 열린다. 벌써 도착하셨나 싶어 사무실에 들어가는데, 선생님은 아직 오시지 않았고 근무하는 아가씨가 사무실을 지키고 있었다.
순간 당황하였다. 사무실에 한 사람이 더 있을 줄은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사람은 세 명인데 커피는 두 잔이다.
나는 바쁘게 생각을 하였다. 그냥 다시 내려가서 커피를 더 사 올까? 그러나 여긴 고층건물이어서 시간적 손실이 크다.
선생님은 사실 커피를 그리 좋아하시진 않으니까 아가씨에게 그냥 이 커피 한 컵을 줄까? 아니다. 그것은 예의가 아니다. 선생님 드리려고 사 온 커피이므로 그 결정권도 선생님이 가지고 있다. 오실 때까지 기다려야 하겠다.
그러나 선생님은 빨리 오시지 않고 커피를 먹고 싶은 욕망을 더 이상 억누를 수 없었다. 나는 기어코 좋은 생각을 해내었다.
이 커피 컵은 매우 크므로, 작은 잔에 따르면 서로 나눠 마실 수 있다. 이것은 분할이라는 사고기법을 적용한 것인데, 존재를 당연한 덩어리로 파악하는 인식의 구조에서는 쉽게 잘 떠오르지는 않는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우선 이 한 컵의 커피가 누구의 것이라는 소유적 결속을 깨야 하고, 또 이 한 컵의 커피가 1인분이라는 기능적 한계도 깨야 한다.
나는 한 컵의 커피를 작은 잔에 조금 나누어 아가씨에게 권한 뒤 컵에 남은 커피를 기분 좋게 즐겼다. 그러고 조금 있으니 선생님이 들어오셔서 나머지 한 컵의 커피를 드시는 데, 웬걸 커피를 아주 잘 드셨다.
그 커피를 통째로 아가씨한테 주었더라면, 큰 일 날 뻔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