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성계(空城計)

조영필

by 조영필 Zho YP

제대를 막 하여 시골에 머물 때 이야기이다. 당시 우리 집은 동네와 조금 떨어져서 논 한가운데 위치하여 있었다. 트랙터 하나 정도 넓이의 농로를 따라 한참을 걸어 들어가야 했다. 오후 조금 늦게 집에 들어가려고 막 농로에 접어들 무렵이었다. 갑자기 나의 발걸음이 허공에서 탁 멈춰졌다.


당시 나는 다른 생각에 잠겨 먼 곳을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에, 나의 발이 땅을 더 이상 디디지 못한 것은 분명 나의 의식적인 행동은 아니었다. 그것은 아마도 내 몸 어딘가에서 내려진 긴급한 정지 명령이었다(중뇌 상구의 시각반사). 그래서 나는 발을 든 채 발 밑을 바라보았다. 무슨 지렁이 같은 것이 내 발 밑 바로 아래 길을 가로질러 순식간에 지나갔다.


그 생물이 길 주변의 풀섶으로 사라지는 것을 보면서 나는 깜짝 놀랐다. 그것은 실뱀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냥 보려고 해도 잘 보이지 않을 것이었는데 용케도 나는 발을 디디지 않았다. 아마 디뎠으면, 타이밍상 뱀을 밟았을 것이다. 그 뒤로 나는 그 길을 걸을 때 다시는 슬리퍼를 신고 걷지 않게 되었다(트라우마).


15만의 대군을 이끌고 위(魏)의 사마의(司馬懿, 179년 ~ 251년)가 촉(蜀)의 제갈량(諸葛亮, 181년 ~ 234년)을 공격할 때, 촉의 성문은 공격하기 좋게 열려져 있고 성 위 누각에서는 제갈량이 거문고를 즐기고 있었다(탄금 주적 彈琴走敵). 이것은 간과하기 힘든 비정상이었고, 그 과도함이 또한 사마의의 (지각적) 경계를 불러일으켰다. 노련한 장수답게 사마의는 객관적으로 확률 높은 이득보다 만의 하나 있을지 모를 손실을 기피하였다(프로스펙트 이론).


공성계는 허술 이상의 과도한 노출을 추구한다(虛者虛之). 그것이 상대의 마음 속에 걷잡을 수 없는 의심을 불러일으킨다(疑中生疑). 이것은 훅이 일품인 복서가 종반에 지쳐 가드를 내린 격이다(剛柔之際).


상대의 마음 속에는 사전에 형성된 가설적 인지구조가 있었다(스키마). 그러나 고수는 아무리 형세가 기울어도 상대의 기대를 절대로 충족시켜 주지 않는 법이다. 승부사가 모든 것을 걸고 하는 승부에 속단은 금물이다(奇而復奇).




Note:

끝나기 전에 끝나지 않는 승부가 오늘 있었다. 그것은 박정환과 이세돌의 응씨배 바둑 준결승 제3국으로 결승 진출 결정국이었다. 초반에 실리를 많이 확보한 박정환이 중반무렵에 대마마저 수습하여 거의 승부가 난 느낌이었다. 그러나 그때부터 바둑의 재미는 분출하기 시작한다. 막판에 이세돌은 상상불가의 비틀기를 보여주었고 박정환은 기계적 냉정으로 골인의 수순을 찾아갔다. 끝까지 눈을 돌릴 수 없는 명승부이었다.

(2016. 6.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