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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영필 Zho YP Apr 27. 2022

장마

조영필

장마




비닐하우스는 가랑잎처럼 흔들린다

물은 검은 것이라고 성인은 말씀하셨다

검은 물이 들판을 가득 메우고

비닐하우스는 새하얗게 삐끄덕거린다


우체부가 경적을 두 번 울리고

비호처럼 사라진다

그에 대한 의심을 거두면서

그렇다면 무수한 내 편지들은

어디쯤에서 방황하고 있을까


비가 뜸한 참에

질퍽거리는 논둑길을

밀짚모자 하나 쓰고

담배를 사러 간다


진열대에는 쇳물 든 상품들

비의 기세에 바짝

주눅들었다


돌아오는 길에

기다림의 철분은 해체되었다


이를 가는 것도 짖는 것도 잊어버린 짐승이

제 숨통을 갉다가

폭우 혹

거대한 변화 속을

미친 듯이 달리고 싶은 본능의 마지막 파열음처럼


쏟아진다




(1993. 5.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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