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나라의 뇌과학

김대식

by 조영필 Zho YP

10-13/ 과학기술의 성공은 '과학기술을 하는 사람들의 성공'이 아니라 인간의 본능과 편견이 결정적 선택을 좌우할 수 없도록 유도하는 '과학기술 방법론의 성공'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정치, 사회에도 과학기술방법론을 도입하면 어떨까?

상호관계와 인과관계를 혼동해선 안 된다는 점, 동일한 조건 아래 반복된 관찰을 통해 검증된 결과만 받아들여야 한다는 점...

정치가 과학기술에서 배웠으면 하는 또하나가 있다. 바로 이 세상 모든 일에 반드시 특정 원인이 존재할 필요는 없다는 점이다...

물론 사회, 경제, 역사를 좌우하는 거시적 흐름은 존재한다... 선형회귀분석을 생각해보자... 모든 점을 직접 연결해버리면 과거 데이터는 100퍼센트 설명할 수 있겠지만 미래 예측은 어려워진다. 과도한 과거해석을 위해 미래 예측과 미래 설계능력을 포기하게 되는 이런 상황을 '과적합화overfitting'라고 부른다.


과거와 현재를 '과적합화'하는 순간, 우리는 대한민국의 미래를 좌우할 거시적 문제가 아닌 의미없는 랜덤 오차로 모든 사회적 에너지를 낭비하게 되는 것이다.


16-32/ [드레스 색깔 논란]


[1984]는 몸의 통제를 통해 마음을 컨트롤하려는 나라를, [멋진 신세계]는 마음을 유혹해 우리 몸을 제어하려는 나라를 소개한다. 하지만 영화 [브라질]의 독재는 인간의 마음과 몸을 송두리째 장악하려는 '백화점식 전체주의'에 가깝다.


이 모든 것은 잔인한 고문으로 인해 미쳐버린 주인공의 뇌가 만들어낸 허상이란 사실이 밝혀진다. 하지만 영화는 이 역시 갑갑한 직장의 '미생'으로 살아야 하는 주인공의 꿈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어느 날, 거울에 비친 호수의 기사 랜슬롯을 본 샬롯 공주, 외로움 때문이었을까?... 그의 얼굴을 '똑바로' 보고 말겠다고, 자신의 운명이었던 베틀을 밀어내고 공주는 뒤돌아선다... 세상의 아름다움을 눈으로 확인한 공주는 자아도 의식도 없는 인형 같은 상태가 되어 보트에 올라탄다. 그리고 이미 이 세상의 존재가 아닌 여인의 몸을 실은 보트는 카멜롯을 향한다. 떠내려온 보트에서 발견된 아름다운 여인의 얼굴을 바라본 랜슬롯은 질문한다.

"이 아름다운 여인은 누구일까? 감긴 눈은 무엇을 보며 살았을까? 여인은 왜 이 작은 배를 타게 됐을까?"


경험, 교육, 환경, 음싵, 상상, 꿈, 사랑, 희망, 좌절, 죽음 같은 것들이 우리의 뇌를 바꿔놓을 수 있고 우리의 세상 역시 바꿔놓는다. 문제는 각기 다른 뇌를 가진 즉 각기 다른 세상을 사는 우리가 모두 '같은 세상'을 산다고 착각하는 데서 벌어진다.


문제의 원인은 간단하다. 뇌가 머리 안에 있기 때문이다... 1.5 킬로그램의... 고깃덩어리는 두개골이라는 컴컴한 '감옥' 안에 갇혀있다... 뇌는 단지 1000억개(1011개를 수정)의 신경세포들로 만들어진 고깃덩어리일 뿐이다.


플라톤은 인간을 어두운 동굴 안에 갇혀 사는 죄인들과 비교한 바 있다... 진화적으로 이미 오래전에 만들어진 후각과 촉각은 시공간적 해상도가 낮다... 청각은 시간적 변화에는 예민하지만 공간적 인식능력은 뒤떨어진다.


뇌의 영역 중 적어도 25-30개가 시각정보를 처리하고 뇌 전체 영역의 3분의 1정도가 '보는' 데 사용된다... 안타깝게도 눈은 마음의 창문이라고 하기에는 부족한 점이 무척 많다.


직접 보고 듣는 그 자체만으로 얻을 수 있는 정보가 한정적이기에 우리가 지각하는 세상엔 언제나 뇌의 수많은 과거경험과 미래 희망과 현재가설이 포함되어 있다. 즉 지금 우리 눈에 보이는 세상은 '인풋'이 아니라 뇌의 해석을 이미 거친 '아웃풋'이다.


개구리는 모든 물체를 움직이는 것과 움직이지 않는 것으로만 구별한다. 박쥐는 초음파로 세상을 인식한다.


즉 '언어의 해상도'가 '인식의 해상도'보다 낮기에 서로 다르게 보는 세상을 동일한 단어로 표현하게 되는 것이다.


독일 철학자 라이프니츠의 말대로 우리는 어쩌면 서로 소통할 수도 알아볼 수도 공감할 수도 없는 '나'란 자아들에 갇힌 우주에서 가장 외로운 존재들일 수도 있다.


34-46/ [행복의 가격]


바로 창피할 정도로 낮은 '국민행복지수Gross National Happiness GNI'다. 여론조사 업체 갤럽이 얼마 전 소개한 자료에 의하면 대한민국,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가봉, 아르메니아의 국민행복지수는 59점(100점 만점)으로 조사 대상 143개국 중 공동 118위를 차지했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행복은 50퍼센트가 유전, 10퍼센트는 환경, 40퍼센트는 자신의 의지에 따라 결정된다고 한다... 만약 '나의 행복'이 '타인의 불행'의 원인이 된다면? 독일 철학자 칸트는 "내 자유는 타인의 자유가 시작되는 지점에서 끝난다"고 했고, 폴란드 출신 정치이론가 로자 룩셈부르크는 "자유란 언제나 나와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의 자유다"라고 했다. 그렇다면 진정한 행복 역시 '타인의 불행을 최소화한다는 조건 아래 최대화할 수 있는 나의 행복'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아무리 좋은 의도로 시작한대도 국가와 사회가 '행복한 삶'을 정의하는 순간 대부분의 국민은 불행해지며 끝난다는 것이다... 결국 행복 그 자체를 찾는 것은 타인에게 절대 '아웃소싱'해서는 안 될 개인의 숙제다.


왜 하필이면 서양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난 것일까? 니얼 퍼거슨 하버드대 교수는 치열한 경쟁, 과학, 법치주의, 의학, 컨슈머리즘, 근로윤리 등 여섯가지 조건을 서양만 모두 가졌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제레드 다이아몬드 UCLA 교수는... 마키아밸리적인(?)... 이언 모리스 스탠퍼드대 교수는... 유럽 특유의 지형이... 역사학자 줄리어스 노르치와 데이비드 아불라피아는 '지중해'라는 지형적 특성이야말로...


개개인의 행복을 '상납'해 이제야 겨우 제1차 산업혁명을 이루었다는 말이다... 우리는 겨우 도착했는데 다들 또다시 떠나고 있는 것이다... 러셀이 찬양하는 '게으름'은 꼭 해야 할 일을 미루는 게으름이 아니다. 필요없는 일을 생략하는 ('중립'에 놓고) 무조건 액설러레이터만 밟아대는 비효율적인 바쁨을 피해가는 현명한 게으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66-86/ [존재적 외로움]


'나'는 '내 기억'의 합집합이다. 기억이 존재하기에 내가 존재할 수 있고, '어제저녁의 나'를 기억하기에 '오늘 아침의 나'는 '어제의 나'와 같은 인물이란 걸 인식한다. 우리는 아침마다 확신한다. 오늘 아침 '잠에서 깨어난 나'는 어제저녁 '잠든 나'와 같은 인물이라고, 인간의 삶은 매일매일 '어젯밤의 나'와 '오늘 아침의 나'의 만남으로 시작된다고


1308년, 아름다운 고향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추방당한 시인 단테는 질문했을 것이다. '왜 나는 사랑하는 피렌체에서 살 수 없는 것일까? 무엇이, 언제부터 꼬였던 것일까?... 인간은 왜 고향에 오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타국에서 살면 고향이 그리워지는 걸까? 왜 피렌체를 떠난 단테는 견딜 수 없는 그리움과 외로움을 베아트리체란 '마음속 고향'을 통해 달래려 했을까?


이민, 이주, 망명, 귀향, 추방...... 이렇게 고향을 떠난 우리는 더 이상 그전의 우리가 아니다. 이유는 뇌 발달과 연관돼 있다. 1000억개 신경세포들 간의 수많은 시냅스들의 위치와 구조를 유전적으로 물려받기는 불가능하기에 뇌는 미완성 상태로 태어난다. 대신 뇌는 약 10년간의 '결정적 시기critical period'란 걸 갖고 있다. 결정적 시기 동안 자주 쓰이는 시냅스들은 살아남고 사용되지 않는 시냅스들은 사라진다. 결정적 시기의 뇌는 찰흙같이 주변 환경에 의해 주물러지고 모양이 바뀔 수 있다.


고향이 편한 이유는 어릴 적 경험한 음식, 소리, 얼굴과 풍경, 이 모든 것들이 우리의 뇌를 완성시킨 바로 그 요소들이기 때문이다. 나란 존재를 만든 고향, 그 고향을 떠난다는 건 나란 존재의 원인과 이유를 의심하기 시작한다는 말과 같다. 질문이 무의미한 고향과 대답이 무의미한 타향.


만약 이민을 떠나지도 망명이나 추방도 당하지 않았지만 내 고향이 더이상 내가 자란 그 고향이 아니라면?


수백, 수천 년 동안 세상의 시계는 멈춘 듯했다. 우연한 마을, 우연한 가족에서 태어나 죽도록 일만 하다 마흔 살이 되기 전에 죽는다. 그것도 그나마 운이 좋을 경우에만 말이다. 신, 영웅, 귀족이 아닌 평범한 인간에게 시간의 흐름이란 무의미했기에 결정적 시기에 뇌를 완성시킨 세상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겐 불변의 진실이었다. 하지만 더 이상 변하지 않는 것은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는 오늘날, 오늘은 어제와 다르고 내일은 예측 불가능하다. 오늘의 진실은 내일의 이단이고 어제의 패션은 오늘의 난센스다. 나는 변하지 않았지만 세상이 변했기에 나는 고향에서조차 이방인이 돼버린다는 말이다... 우리의 뇌를 완성한 고향이 더이상 존재하지 않기에 우리는 어쩌면 고향에서도 이방인으로 살아야 하는 '존재적 외로움'을 느끼는지도 모른다.


... 키르케의 섬에서 탈출한 오디세우스는 지옥 하데스에서 예언자 테이레시아스를 만나서 그에게 물어본다. 자신은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느냐고...


"그래, 오디세우스야, 오랜 시간이 걸리겠지만 넌 결국 이타카로 돌아갈 것이다... 하지만 오디세우스야, 이것만은 알아야 한다. 네가 아는 고향에 도착한 넌 다시 네가 아는 고향을 떠나야만 너의 진정한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단다......"


... 아킬레우스를 설득하러 온 오디세우스는 이 세상 최고의 보물과 여자와 말을 약속한다. 하지만 아킬레우스가 원하는 것은 말도 여자도 보물도 아니었다... 지식, 부, 그리고 나만은 다르다는 자부심 역시 세상과 타협하는 하나의 방법일 뿐이다. 하지만 아킬레우스는 타협을 거부한다. 더이상 자신의 고향이 아닌 지금 이 순간의 세상을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아킬레우스의 분노는 다시 돌려놓을 수 없는 시간, 다시 원상태로 되돌아갈 수 없는 세상에 대한 인간의 마지막 자존심인 것이다.


고향을 떠난 이방인들, 미국에 사는 한국인은 한국을 그리워하고, 한국에 사는 한국인은 과거를 그리워한다. 과거에 살던 사람들은 더 먼 과거와 더 먼 곳의 진정한 고향을 동경한다. 마치 망가져서 거꾸로 돌아가는 필름같이 온 세상 사람들은 잃어버린 세상을 그리워한다... 빅뱅에서부터 나란 존재까지 단 한 번도 끊긴 적 없는 존재들의 꼬리 물기. 무한으로 반복된 탄생과 소멸. 우리는 다시는 되돌아갈 수 없는 그런 무한의 고향들을 영원히 그리워하며 살고 있는 것이다.


88-104/ [사람과 좀비]


'루게릭병'이라는 희귀병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끌어올리기 위한 이벤트였다. '아이스 버킷 챌린지ice bucket challenge'라는 이 행사를... 근위축성 측삭 경화증Amyotrophic Lateral Sclerosis, 줄여서 ALS라는 이 병은... 멀쩡히 살다 어느 날 갑자기 계단에서 넘어지고 손에 힘이 빠진다... 가려움, 아픔, 지루함, 슬픔, 절망...... 모두 느낄 수 있지만, 결국 손끝부터 발끝까지 모두 마비돼버리는 잔혹한 병... 몸과 마음, 언제나 함께할 것 같은 존재의 동반자다. 하지만 루게릭병에 걸린 육체가 '나'라는 자아에게 최악의 감옥이 돼버리는 순간, 우리는 '정신'이라는 그 무언가를 통해 우리 몸을 움직이고 제어할 수 있다는 사실 그 자체에 다시 한번 놀라게 된다.


최근 조지워싱턴 대학의 모하마드 쿠베이시 교수팀이 사람의 의식을 전기적 자극을 통해 켜고 끌 수 있는 '정신 스위치'를 발견했다고 보도해 논란이 되고 있다... 바로 '전장claustrum'이라는 피각putamen과 뇌섬엽insular cortex 사이의 작은 영역이다. 거의 모든 뇌 영역과 연결돼 있는 이곳을 자극하면 환자는 마치 로봇이나 좀비가 된 양 행동한다. 숨을 쉬고 눈은 뜨고 있지만 의식적 지각이나 행동은 더이상 불가능해진다... 영원히 죽지 않고 살아 있다고 하더라도, 영혼과 자아, 정신이 부재한 채로 존재하는 좀비와 같다면 그것을 '삶'이란 일컫기 어렵다는 것이다. 죽을 수 없는 삶이란 얼마나 잔혹한가, 본디 삶이란 죽음이 있기에 의미 있어지는 법이다.


"시간! 내 얼굴을 그리기나 하라고, 이 게으름뱅이야, 우리의 껍질을 벗기는 수백 년의 광기! 마치 장님들을 향해 가고 있는 마지막 인간의 눈알같이 고독하게 홀로인 나." 1913년 러시아의 시인 블라디미르 마야콥스키가 이 시를 쓰고 불과 몇 개월 후...


젊은 블라디미르 마야콥스키는 이런 주장을 한 바 있다. "그냥 열여덟 살이어선 안 된다"고. 무슨 말이었을까? 열여덟 살, 더이상 어린아이가 아니지만 아직 삶의 무게를 경험해보지 못한 나이, 아직 아무것도 해본 게 없기에 모든 게 가능해보이는 나이, 너무 어리기에 '영원한'이란 단어를 입에 담을 수 있는 나이, 전쟁, 착취, 빈부 격차, 고통도 없는 유토피아를 꿈꿔볼 수 있는, 아니 꼭 한 번은 꿈꿔봐야 하는 나이. 하지만 열여덟 살의 마야콥스키는 아저씨가 됐다. 중년이 된 마야콥스키의 고향은 그가 그렇게도 두려워하던 '눈먼 자들의 나라'가 돼 있었다.


왜 그냥 열여덟 살이어선 안 될까? 우리는 모두 언제까지고 열여덟 살이 아니기 때문이다. 삶의 무게를 경험해봤고 이미 너무 많은 것을 시도해봤기에 우리는 시작의 끝은 대부분 좌절과 절망이란 사실을 잘 안다. '영원히'란 단어를 입에 담기에 너무나 나이를 먹어버린 우리. 그리고 우리는 잘 안다. 오늘의 먼 미래가 언젠가는 그날의 오늘이 되고 우리가 두려워하는 그날이 오는 날, 우린 이미 '나'란 존재가 아닌 그저 타인의 머리 안에 남겨질 보잘것없는 추억일 뿐이란 걸. 그리고 그것도 잠깐. 부모의 부모의 부모가 더이상 아무 의미없는 사람들이듯, 우리 자식의 자식의 자식에게 우리는 무의미할 것이다.


다양한 추측들이 가능하지만 약 1000억 명의 사람들이 살고 죽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기억에도 남아 있지 않은 1000억 명, 그들은 정말 존재했던 것일까?... 왜 우리는 죽은 자에게 집착해선 안될까? 죽은 자는 잊혀야 하기 때문이다. 잊힌 죽은 자는 다시 자연이 되고, 자연은 삶을 가능하게 한다... 우리는 언제나 잊힌 죽은 자들에게 둘러싸여 있다.


... 내가 죽으면 난 더이상 없다...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 이론에 따르면 내 주인공은 사실 내가 아닌 내 유전자들이기... 정보에게 소유자는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난 죽지만 내 유전자는 살아남는다.


모든 죽음은 의미가 있다. 아니, 의미없는 죽음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죽음을 통해 기억이 만들어지고 죽음을 통해 유전자가 남는다. 죽음은 삶의 의미를 만들어낸다. 그렇다면 만약 죽음이 죽는다면... 죽음의 죽음은 의미의 죽음을 의미한다. 무의미한 죽음이 가능하게 하는 '의미있는 삶'과 삶의 의미를 불가능하게 만들 '죽음의 죽음', 우리는 무엇을 선택해야 할까?


124-130/ [기억하는 과거 vs 경험한 과거]


미국 노스웨스턴 대학 연구팀은 뇌가 과거 기억을 계속 편집한다는 결과를 소개해 화제를 모았다.


우리는 어느새 잠들고 눈을 다시 뜨면 이미 다음날 아침이다... 매일 7, 8 시간을 의식도 생각도 없는 '좀비'로 사는 것이다... 현대 뇌과학에선 기억과 학습을 수면의 주요 기능 중 하나로 본다... 특히 수면 상태때 해마의 역할은 흥미롭다... 수면상태인 뇌의 특정영역을 잘만 자극하면 미래 행동을 결정할 수 있다는 말이다!


140-142/ '순간'이란 경험을 압축하고 왜곡하는 과정은 해마라는 뇌 영역을 통해 이뤄진다고 많은 전문가가 믿는다. 우리가 경험하는 많은 순간은 우선 '기억할 가치가 있는' 정보와 '기억할 필요가 없는' 정보로 나뉜다. 이때 나눔의 기준은 무엇일까? 많은 기준이 가능하겠지만 대부분 '예측 코드predictive coding'를 통해 분류된다는 가설을 세울 수 있다.


끝없는 예측을 통해 뇌는 '예측한 세상'과 '경험하는 현실'의 차이를 계산한다. 예측과 현실에 차이가 없다면... 충분히 예측가능한 무의미한 정보이기에 특별히 기억할 필요가 없다.


뇌의 예측과 현실의 가장 큰 차이, 만약 그것이 트라우마의 정체라면 트라우마는 그 어느 경험보다 더 많은 '정보'를 갖고 있다.


269/ '직업'이라는 개념은 그다지 오래되지 않았다. 인류는 오랫동안 타고난 신분과 운명에 따라 살았을 뿐이다.


275/ 새로운 것이 없는 것을 새롭다고 재포장할 수 있는 애플의 능력... 소니는 전자책을 처음으로 만들었지만 돈은 아마존이 벌었고, 카메라 달린 휴대폰은 교세라가 제일 먼저 제시했지만 시장에서는 성공하지 못했다.


284/ '모든 발명의 어머니는 전쟁이다'라는 속담과 마찬가지로 영국 정치학자 이언 모리스는 역사의 대부분의 발명품뿐 아니라 경제, 정치, 사회적 혁신 역시 전쟁을 통해 이뤄졌다고 주장한 바 있다. 전쟁을 통해 부가 늘어나고, 개혁이 가능해지고, 혁명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289/ 이제 더이상 볼 수 없지만 예전엔 길을 가다가 '약장수'들을 종종 발견할 수 있었다. 이런 병, 저런 병 치료에 아무런 부작용 업싱 도움된다는 약을 자랑하던 이들...... 제공하는 볼거리는... 바로 '만병통치약'!


302/ 대한민국에는 제국적 마인드가 절실하다. 약한 나라를 침략하고 약탈하는 로마, 영국, 일본식 제국주의를 말하는 게 아니다. 나에게 지금 일어나는 사건들을 나, 그리고 나의 감정이라는 우연의 한계를 뛰어넘어 수백만 개의 역사, 종교, 정치, 경제, 과학적 변수들을 동시에 고려하고 분석할 수 있는 능력이야 말로 진정한 '제국적 마인드'다.


미래의 행복을 위해 현재의 아픔을 컨트롤할 수 있는 냉철함, '내가 만약 북한, 일본, 중국, 러시아라면?' 하고 시뮬레이션할 수 있는 인지적 객관성, 인정하고 싶지 않은 역사적 진실 역시 받아들일 줄 아는 '쿨'한 태도...... 이런 제국적 마인드 없는 대한민국은 앞으로도 계속 국제 사회라는 서치라이트 앞에 눈부셔하며 얼어버리는 나약한 사슴 한 마리에 불과할 것이다.


304/ '위버'라는 단어가 해외에 알려진 건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 덕분이기도 하다. 허무주의자였던 그는 현재의 인간을 능가하는 '위버 멘슈(인간 위의 인간)'를 추구했고, '위버'는 영어권에서 '무엇을 능가하는' '매우' 같은 의미를 갖기 시작한다.


김대식, 이상한 나라의 뇌과학(Brain Science Adventures in Wonderland), 문학동네, 2015.



Note:

그간 저자의 논설을 많이 봐온 나에게 있어 이 책은 커피 한 잔 마시는 정도의 분량밖에 되지 못했다. 그간 지면으로 발표해온 지난 글들을 신선한 느낌의 제목으로 마케팅을 동원하여 새로 엮은 정도라고 할까? 그러나 막상 밑줄 그은 것들을 발췌 정리해보니 내용이 그리 가벼운 것만은 아니다. 결론적으로 다시 보면, 묵직한 주제의식과 깊은 울림이 있는 1부에 비해, 2-4부의 수준이 너무 떨어진다. 크고 웅장한 입구(1부)에 비해 다 쓰러져 가는 초가집(2-4부)의 비대칭이다.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감도 만만치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