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사서설

Charles. L. Barber

by 조영필 Zho YP

26/ 이쯤 설명하게 되면 아마도 영어를 구성하는 주춧돌이라고 볼 수 있는 45 개의 기본음은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이냐는 의문을 제기할는지 모른다. 어찌되었든 간에 분명하게 밝혀진 것은 '소리(sounds)'란 말은 알맞은 말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 말 대신에 '영어의 소리체계는 45 개의 기본이 되는 용어(term) 또는 위치(position)을 지니고 있으며 이들은 제각기 관련되는 소리 전체의 무리로 표시된다'는 말로 바꾸어 말해보자.


45-57/ '멍-멍' 이론(bow-wow theory)... 원시 언어가 동물들이 내는 울음소리와 같은 자연음(natural sounds)의 모방에서 유래한 것이라는 이론이다.


'코방귀' 이론(pooh-pooh theory)... 이 이론은... 아프거나 또는 기쁠 경우에 그 감정을 본능적으로 나타낼 때 나오는 외침에서 유래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땡-땡' 이론(ding-dong theory)... 이른바 생득이론이다. 이 이론은 우리가 이미 인지하고 있는 사실, 곧 소리(sound)와 의미(sense) 사이에는 분명히 신비스러운 조화가 있다는 데에서부터 출발한다... 외부에서 받는 모든 인상에 대해 목소리를 사용하여 표현하였다고 주장하고 있다... 아무것도 설명해 주지 못한다느 것이며... 준이론(pseudo-theory)에 지나지 않는다.


'어기여차' 이론(yo-he-ho theory)... 19세기의 학자였던 느와레(L. Noire, 1829-1889)에 의해 제창된 것으로... 육체노동에 공동으로 종사하는 무리들이 떠들썩하게 내는 소리에서... 무의식적으로 성대가 울려 소리가 나온다... 이 이론은 두 가지의 커다란 장점을 가지고 있는데, 첫째로는 언어가 자음과 모음으로 이루어진 구조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데 대한 설명을 가능하게 해주고 있다는 점이고, 둘째로는... 인간 상호간의 협동이 이루어진 상황에서... 이 이론에서는 가장 초기에 인간이 사용한 발화형태는 명령형이었다는 것을 주장하고 있는데, 우리는 이미 이와 같은 명령형이 고대에 남아있었다는 것을 증명할 만한 어떤 언어학적인 증거가 있음을 고찰한 바 있다.(43쪽: 많은 언어들 중에서 가장 초기에 사용된 형태에 나타나는 이른바 명령을 나타내는 말(예: '주어라!', '때려라!' 등)에는 특수한 어미를 덧붙이지 않게 되면 동사의 단순한 어간(stem)과 그 형태가 똑같아지기 때문에 이들 명령어(words of command)야말로 오래된 고형에 속하는 것들이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다는 점이다.


최근에 '어기여차' 이론의 변종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이론이 다이어몬드(A. S. Diamond) 박사에 의해 정교하게 다듬어졌다... 격렬한 팔운동을 수행하면서 동시에 발화되었다는 사실에는 의견을 같이 하고 있으나... 극도의 육체 운동이 요구되는 상황에 처한 인간이 서로 도움을 처하는 과정에서 언어가 발생했다고 말하고 있다.


'동작' 이론(gesture theory)... 동작을 나타내는 동작어가 말보다 앞서서 발생하였다는 주장을 취하고 있다... 북미의 아메리카 토인(Red Indians)들이 전에 사용하던 지화법(sign language)을 들고 있다. 이것은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던 인디언 부족간에 협상의 길을 터놓기 위해 사용되었던 정교하게 만들어진 동작체계였다.


동작이론을 극단적으로 지지하는 사람들은 말(speech)은 아주 늦게서야(기원전 약 3500년 전) 생겨난 것이고 초기에 사용되던 그림문자에서 유래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 문자 자체도 동작언어에서 생겨난 것이라는 주장이다... 동작 언어를 사용하려면 양손을 자유롭게 해주어야 한다. 그런데 인간이 도구를 만드는 사람이 된다거나 장인이 되는 순간에는 그의 양손은 자유로운 상태가 되지 못한다. 원시인이 가장 긴급하게 자기의 의사를 전달할 필요가 있던 시대는 틀림없이 자기 손에 도구라든가 또는 무기를 가지고 있던 시대였을 것이다... 동작은 또한 어둠 속에서는 사용될 수가 없다는 약점을 지니고 있으며...


이보다 더 매력을 느끼는 동작이론으로 리차드 파제트(Richard Paget)가 강력하게 주장하고 최근에 아이슬랜드의 교수 알렉산더 요한네슨(Alexander Johannesson)에 의해 지지되어 오고 있는 '입동작' 이론(mouth gesture theory)이라는 것이 있다... 말이 지니는 조음 성격을 밝혀 주는 동시에 '소리'와 '의미' 사이의 연결관계를 맺어주는 방법을 설명해주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음악' 이론(musical theory)... 이 이론은 덴마크의 위대한 언어학자인 오토 예스페르센(Otto Jespersen)이 제창한 이론이다.


'접촉' 이론(contact theory)... 암스테르담 대학의 심리학 교수를 지낸 바 있는 레베츠(G. Revesz)가 전개한... 언어가 발전해 내려온 일련의 단계... 접촉하고자 하는 욕구를 표출하는 접촉음으로부터 시작하는데... 그 다음 단계가 부르짖음(the cry)인데 이것은 의사전달의 첫 시도로서... 그 다음에는 부름(the cry)이란 단계가 오는데 이 단계는 어떤 특정한 개인에게 보낸다는 점에서 부르짖음(the cry)과 다르다... 마지막 단계로는 상징적 기능을 가진 말이 되는데... 최초의 말은... '명령 언어(imperative language)'였다고 생각한다.


61-70/ 그림에서 문자로 발달해 내려오는 동안에 두 가지의 중요한 과정이 일어난다.

첫째 그림이 간단해지고 관례에 따르게 되어 그림으로는 전혀 알아볼 수가 없게 되었다는 점과

둘째 그림이 직접 언어 항목(처음에는 단어로, 그 다음에는 음절로, 그리고 마지막에 가서 소리나 음소가 됨)을 나타내게 되었고 언어 항목과 똑같은 순서로 배열되기에 이르렀다는 점이다.


[그림의 관례화]

그림이 간단해지고 관례적으로 쓰이게 되는 과정은 어느 정도까지는 문자를 나타내기 위해 사용된 재료 여하에 달려있었다. 가령 진흙 위에 칼로 자국을 내어 기호를 새기거나 나무나 돌에 기호를 새길 경우에는 곡선을 피하려는 경향이 있어서 문자는 모가 나게 된다... 기원전 4000년과 3000년 사이에 어느 땐가... 수메르의 기록관들은 갈대로 만든 첨필을 써서 진흙 위에다 그림을 그렸다. 이들은 처음에는 첨필의 끝을 진흙에 대고 줄곧 잡아당기면서 그림을 조그맣게 그렸는데 첨필의 앞쪽에 진흙이 덩어리로 묻게 되어 그림이 망쳐지게 되자... 나중에는 첨필의 머리부분을 마치 스탬프나 되는 듯이 진흙에다 그저 눌러서 1인치의 3분의 2 가량 되는 길고 조그만 쐐기 모양을 한 부호를 만들어 내었다... 당시의 기록관들은 쐐기를 만들기가 무척 어려웠기 때문에 몇 가지 방향으로 향하는 쐐기를 되도록 만들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었다. 이를테면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향하는 쐐기는 만들지 않으려고 했는데 그것은 첨필을 오른쪽으로 둥글게 돌리는 작업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당시 사용된 부호들은 점차로 그 수가 한층 더 한정되어 갔으며 기호들은 갈수록 점점 더 관례적으로 쓰이게 되어 원래의 그림에서 멀어지게 되었다.



쐐기 문자는 대개 점토판에 기록되었는데, 그 특성상 특별히 필기도구에 제약이 강하지는 않았으나 대개 갈대 가지를 뾰족하게 잘라 만든 철필로 썼다. 기록물로 쓰인 점토판은 기록의 양에 비해 그 무게가 심각한 수준으로 무겁다는 단점이 있으나, 그늘에서 잘 말린 경우 보존능력은 돌을 깎아 새긴 것과 맞먹는 수준으로 후대에 등장한 파피루스, 양피지, 목간, 종이 등의 기록물보다 훨씬 보존성이 좋았다. 또한 재료를 구하기 쉽다는 것도 장점이었는데 그래서 남아있는 유물도 제법 많은 편.

기록된 점토판을 불에 구우면 굉장히 단단해지고 이렇게 남은 유물도 꽤 있다. 이 경우는 그늘에 말리는 것보다 내구성이 더 올라간다. 다만 기록자가 자의로 구웠던 경우는 적다. 대부분의 쐐기 문자 점토판은 가벼운 편지나 영수증 같은 기록이라 평시의 보존이 목적이면 그늘에 말려도 되고. 진짜 오래 보관할 목적이면 함무라비 법전처럼 돌에 새기지 굳이 귀한 연료를 써가며 불에 구울 이유가 없다. 점토판이 불에 구워진 이유는 그것을 보관하던 건물이나 도시가 전란 등의 이유로 싸그리 불타면서 본의 아니게 점토판이 불에 구워져 버린 것이다. 어쨌든 전란이나 자연재해로 소실되기 쉬운 파피루스나 양피지와 달리 점토판은 전란이나 화재 덕분에(?) 오히려 더 단단하게 구워져서 후대에 중요한 자료를 제공하게 되었다.(출처: 나무위키)


설형문자는 처음에 물상을 그대로 그렸다가 그 형상을 상징화하는 형태로 변화되어갔다. 형태가 아주 단순화 되면서 원래의 물상을 알아볼 수가 없을 정도로 추상화되었다. 그 시기는 약 기원전 3000년경이고 그 이후 기원전 2800년경에는 두 가지 큰 변화가 일어났다. 첫째, 동원된 글자의 수가 초기 글자에 대략 1000~900개 기호에서 600개 정도로 크게 줄어들었다. 이처럼 문자의 수가 줄어든다는 것은 이 문자의 성격이 변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즉, 설형문자의 초기 단계에서는 하나의 단어를 하나의 문자로 기록하는 단어문자였으므로, 사용되던 단어의 수만큼 문자의 수가 필요하게 된다. 하지만, 음절문자의 경우에는 해당 언어에서 사용되는 음절의 수만큼, 자모문자의 경우에는 그 언어에서 사용되는 소리의 수만큼만 글자 수가 필요하게 되므로 그 수가 줄어드는 방향으로 발전한 것이다. 둘째, 기원전 3차 천년 경에 글자가 90⁰ 좌측으로 눕게 되었고 그 결과 글자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쓰고 읽게 되었다. 방향전환의 정학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평판과 필기구를 잡는 방법의 변화, 필기구의 형태변화에 의한 것이라는 주장이 있다.

설형문자의 점토판이 시리아의 옛 우가리트 왕국, 페르시아 등 중동 지방에서 출토되어 현재 세계 각국이 보존하고 있는 숫자는 50만매에 달한다. 이란의 즈그로스(Zgros) 산맥의 카만사(Karmansha) 절벽에 새겨진 베히스탄의 마애비(磨崖碑), 길가메시(Gilgamesh)의 서사시, 니느위(Nineveh)의 설형문자비, 유프라테스 상류의 하란 지방에서 발굴한 마리 왕궁 터의 설형문자 점토판 등이 있다.(출처: Chinese Wiki)


(출처: britannica.com)



그림을 보면 궁극적으로 사용된 기호는 본래의 그림에서 오른쪽 모퉁이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것은 점토로 된 평판을 잡은 방식 때문에 생긴 것이다. 한때 이러한 평판들은 크기가 작아서 왼쪽 손바닥에 놓고 평판의 윗부분을 손가락 끝으로 잡았다. 기록관이 평판위에다 오른쪽 손으로 쓰게 되면 평판의 윗부분은 위쪽을 향하기보다 오히려 오른쪽 방향을 가리키게 되어 그림의 윗부분이 평판의 위쪽 가장자리를 향하지 않고 왼쪽 가장자리를 향해 가리키는 모양으로 그려지게 되었으며 그 후에 이들 평판의 크기가 전보다 훨씬 커지게 되고 평판 위에서 제자리를 지키게 되자 기록관들은 이런 방식으로 서로 맞대고 있는 기호들을 계속해서 그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기록관들이 가죽이나 파피루스에다 펜 또는 붓으로 쓰게 되면서 한 가지 앞에서와는 다른 문자형태가 나타났는데 이것이 곧 곡선(curve)으로서 그리기가 힘들기는커녕 가장 알아보기 쉽고 가장 속도가 빠른 형태를 나타낸다는 것이며 여기서 흘려 쓴 문자체가 생겨나게 된다. 이 문자체는 고대 이집트 문자에서 찾아볼 수 있다.



(출처: canadian museum of histroy)


(출처: Pinterest)


(출처: quora)



실제로 이 문자는 새길 수 있는 것일 뿐만 아니라 물감으로도 나타낼 수가 있으며, 한편으로는 사초속 식물에서 만든 종이처럼 생긴 파피루스 위에다 쓰기 위해 일종의 화필을 사용했다... 수메르 문자 및 이집트 문자에서 찾아볼 수 있는 그림문자의 관례화는 예컨대, 전통적인 한자에서처럼 어느 곳에서나 비교될 수가 있다... 그리스 인들은 기원전 900년경의 뱃사람이며 상인이었던 페니키아인임이 거의 틀림없는 서부 셈족으로부터 그들의 문자를 이어받았다. 서부 셈족이 쓰던 기호의 기원은 전혀 분명치 않으나 추측컨대 이집트의 상형문자에서 유래한 것이라는 주장이 가장 그럴 듯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이집트의 상형문자와 서부 셈족의 문자사이의 관계는 시나이 반도에서 발굴되어 기원전 1850년에서 1500년 사이의 것인 것들로 추정된 몇몇의 신비스러운 비명에 의하여 추측될 수 있다...


[어기호에서 음소기호로]

그림들이 표의문자(ideogram)의 구실을 하지 못하고 특정한 언어형태를 나타내게 되는 두 번째의 과정은 그림문자의 관례화 과정보다도 한층 더 중요하다. 우선 그림으로 나타낸 기호는 단 하나의 단어를 나타내게 된다. 가장 초기에 수메르인들이 사용하던 문자야말로 문자 대신에 숫자로 나타내기 위해 기호를 써서 사물들을 열거해놓은 목록 바로 그것인 것이다. 예컨대 4개의 반원과 황소의 머리를 그린 그림은 '네 마리의 황소'를 뜻하게 된다. 문자는 고도로 중앙집권적인 도시체제의 필요에 응하기 위해 생겨난 듯하며 최초에 쓰여진 문자는 사원이나 시유 공고에 대한 지불 및 이와 비슷한 상거래의 지불기록이다.


이렇게 해서 그림으로 나타낸 기호는 결국, 양, 황소, 태양, 집 등과 같은 구체적인 사물의 이름으로 쓰이는 여러 단어들을 나타내게 된다. 그 다음으로는 이와 똑같은 기호들이 확장(extension)이란 과정에 의해 원래의 단어와 관련된 한층 더 추상적인 단어를 나타내는 데 사용된다. 따라서 태양을 그린 그림은 '밝은' 또는 '흰'이란 뜻을 갖는 단어를 나타내게 될 수도 있으며, 좀더 나중으로 오면 '낮'과 '시간'이란 단어를 가리키게 된다. 채찍을 그린 그림은 '권위' 또는 '힘'과 같은 단어를 나타내기도 한다.


그림으로 나타낸 기호가 정말로 결정적인 발전의 계기를 이루게 된 것은 아마도 하나의 기호를 특정한 음(sound) 또는 음군과 관련화시키는 이른바 표음화현상(phonetization) 때문이다. 우선 구체적인 사물을 나타내기 위해 쓰이는 기호는 어떤 좀더 추상적인 사물을 나타내는 기호로 옮겨쓰게 되고 이 사물은 똑같거나 또는 비슷한 단어로 표시된다. 예컨대, 수메르어의 ti 란 단어는 '화살'을 의미하였으며... 그런데 수메르어에는 '생명'을 뜻하는 ti 란 단어가 있어서 화살표로 표시된 기호는 '화살'이란 뜻 이외에 '생명'을 의미하는 데에도 쓰이게 되었다. 그 뒤 화살표 기호는 ti 란 단어의 음을 나타내는 것으로 여겨져 ti 보다 긴 단어에서 음절 ti를 표시하기 위해 사용되었다. 이렇게 해서 원래 쓰이던 어기호(word symbols)가 발전하여 나중에 음절기호(syllable symbols)가 되었으며 이 기호들은 한 단어의 철자를 쓰기 위하여 함께 묶어 나타낼 수가 있데 되었다.


술집을 그린 그림은 inn이란 단어를 표시하기 위해 사용된다. 그런데 발음이 똑같다는 이유로 해서 이와 똑같은 기호가 in이란 단어를 표시하기 위해서도 사용된다. 이와 마찬가지로 눈을 그린 그림은 eye란 단어를 표시하기 위해 사용되며 기호의 확장 과정에서 sight란 단어를 표시하기 위해서도 사용된다. 이렇게 되면 결국 술집을 나타내는 기호와 눈을 나타내는 기호는 결합하여 incite와 insight란 단어로 쓰게 되어 음절을 나타내주는 기호가 되어버린다. 만약 영어와 같은 음절 문자에서 insight와 incite를 구별하고 싶다면 제3의 기호를 추가하여 그림으로 해서 둘 중의 어느 것을 뜻하는지 보여줄 수 있게 된다. 가령 incite를 의미한다는 것을 보여 주려면 웅변가의 그림을 그리면 될 것이며, '지혜'와 같은 단어를 가리키는 기호를 하나 더 그림으로써 insight를 의미한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눈을 나타내는 기호를 단독으로 쓸 경우에는 이 기호가 eye를 나타내는 것인지 아니면 sight를 나타내는 것인지를 지적하고 싶을 것이다. 이런 경우 이 두 단어를 구별하는 한 가지 방법으로는 이 기호 다음에 기호를 하나 더 추가해서 나타냄으로써 의도하는 단어에 사용된 소리 중의 하나임을 제시하는 일이다. 예를 들면, 가령 soe, seo, so와 같은 단어들을 나타내는 기호가 하나 있을 경우 이 기호를 눈 기호 뒤에 덧붙여서 나타냄으로써 우리가 요구하는단어는 s로 시작된다는 것을 가리키게 된다. 이런 방법과 비슷한 여러 방법이 고대 이집트문자와 수메르문자에서 사용되고 있다.



(출처: pinterest)



수메르인이 쓰던 문자는 표의문자. 어기호, 음절기호 및 앞서 언급한 유형에 대한 여러 종류의 표지(indicator)를 사용한 매우 혼합된 형태이긴 하나 이 문자로부터 고대 바빌로니아인과 앗시리아인이 사용한 언어인 아카드어를 나타내기 위해 쓰였고 수백년동안 근동지역에서 쓰인 문자를 지배한 설형문자의 거의 순수한 음절체계가 발달했으며, 이 체계에서 각 쐐기모양의 부호는 ba, lu, ir 와 같은 하나의 음절을 나타냈다. 이렇게 되면 사용된 기호의 수를 약 100개까지 줄일 수 있게 되므로 이와 같은 문자체계는 전체의 단어를 나타내는 부호를 이용한 체계로서는 굉장한 진보가 되는 셈이다.


고대 이집트 문자도 또한 음절체계로 발전하였으며 이 문자는 진정한 자모문자의 발달과정을 알아보는 데 특히 중요했다. 이집트 문자체계의 중요성은 모음이 필요치 않다는 데 있었다. 80개 가량 되는 대부분의 기호들은 두 개의 자음군과 어느 모음이든 상관없는 모음과의 결합을 나타냈다. 이를테면 집(par)을 가리키는 기호는 pr이란 자음군으로 나타냈으며 이것은 par, per, apr, epr, epra 등등과 같이 어느 것으로 쓰든 그 의미는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단 하나의 자음과 어느 것이든 상관없는 모음과의 결합을 나타내는 기호는 24개가 있었는데, 이를테면 입(ra)을 표시해주는 기호는 r 이란 자음으로 나타냈으며, 이것은 ra, ar, re, er 등 어느 것으로 표시되어도 마찬가지의 의미를 나타냈다. 지중해의 동부 해안 주위에 살던 서부 셈족들이 문자를 개발해냈을 때만 해도 이들은 이집트인들에게서 이처럼 단 24개의 기호를 물려받아 이를 발전시켰다. 원래 이 문자는 음절체계로 되어 있었음이 분명하며 이집트어의 ra, ar, re, er 등과 같이 각 기호들이 만들어낼 수 있는 음절의 수를 나타내주었으나 사실은 자음만을 쓰고 모음은 빼버리는 순전한 자모체계와는 형식상으로 똑같은 것이다.


그리스인들이 이와 같은 셈어의 자모를 받아들였을 때에는 모음을 나타내는 일정한 기호를 결정한 마지막 단계가 이루어졌을 때였다. 페니키아어의 자음 중 몇 개는 그리스어에는 없는 것이었으므로 그리스인들은 모음을 나타내기 위해 이와 상응하는 기호를 가져다가 썼다. 예컨대, 서부 셈어의 자모의 첫 글자는 황소(ox)의 그림에서 본떠서 만든 'aleph 였으며 일종의 h음(철자에서 ' 로 표시되는 소리임)을 나타내었다. 이 시대의 그리스인들은 이 음을 사용하는 대신에 alpha라는 철자로 받아들여 a 음을 나타내는 데 사용했다. 이렇게 해서 결국 기호가 음소를 나타내는 문자체계에까지 이른 것이며 그 뒤에 이 모든 자모체계는 궁극적으로 그리스인들이 이룩해놓은 업적에 근원을 두게 된다. 자모체계의 커다란 장점은 필요로 하는 기호의 수가 비교적 적다는 것이며, 이것은 곧 누구나 다 읽고 쓸 수 있는 능력을 가능하게 해준다는 데 있다. 문자체계가 너무 복잡하여 다루기가 힘들고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고대 도시국가의 승려계급 제도나 옛 문화의 중심지인 중국의 관료주의처럼 소수 정예가 몹시 마음을 쓰며 수호하게 되는 특권으로 전락하게 되고 만다. 자모(알파벳)야말로 민주주의 구현에 이바지하는 원동력 중의 하나가 된다. 문자가 보여 준 중요한 발전의 많은 부분이 한 민족이 하나의 체계를 받아들여 이를 다른 민족에게 차례로 넘겨 주었을 때 일어났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문자를 기록하는 기록관들은 다분히 보수적인 경향으로 흐르기 쉬우며 문자체계가 새로운 상황에 따라 받아들여져 사용되어야 하는 경우에 대부분 급격한 변화가 일어나기 마련이다.


Charles. L. Barber, 영어사서설(The Story of Language), 박영배 역, 을유문화사, 1981.



Note:

오래된 책이다. 대학 하숙시절부터 나를 따라온 책이다. 영어도 못하고 또 영문학 전공도 아닌 내가 이렇게까지 오랜 세월동안 이 책을 버리지 못한 것은 이 책이 정말로 훌륭한 책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 신체의 시간과 역량의 한계가 점차 명확해지고 있으므로, 이제 헤어질 때가 되었다. 막 버리려는 순간, 수메르 관련 문장이 갑자기 눈에 띈다. 다시금 가져와 그 부분을 발췌 기록한다. 이별의 마지막 엄숙한 예식은 필요했던 것이다.

(2022. 6.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