秋日抒情(추일서정)

김광균

by 조영필 Zho YP

秋日抒情




落葉(낙엽)은 포-란드 亡命政府(망명정부)의 紙幣(지폐)

砲火(포화)에 이즈러진

도룬市(시)의 가을 하날을 생각케 한다

길은 한줄기 구겨진 넥타이처럼 풀어져

日光(일광)의 폭포 속으로 사라지고

조그만 담배 연기를 내어뿜으며

새로 두시의 急行車(급행차)가 들을 달린다

포프라 나무의 筋骨(근골)사이로

工場(공장)의 지붕은 흰 이빨을 드러내인 채

한 가닥 꾸부러진 鐵柵(철책)이 바람에 나부끼고

그 우에 세르팡紙(지)로 만든 구름이 하나

자욱-한 풀버레 소래 발길로 차며

호을로 荒涼(황량)한 생각 버릴 곳 없어

허공에 띄우는 돌팔매 하나

기울어진 風景(풍경)은 帳幕(장막) 저쪽에

고독한 半圓(반원)을 긋고 잠기여 간다





(人文評論, 1940년 7월; 寄港地, 1947; 한국모더니즘시인30인선-2 그리스도폴의강, 서음출판사, 1988; 조남익, 한국현대시해설, 미래문화사, 2008)


*急行車(급행차): 急行列車(급행열차)라고 되어있는 판본이 많으나, 서음출판사 판본을 따라, 급행차로 하였습니다.


*도룬시

토룬(폴란드어: Toruń, 독일어: Thorn)은 폴란드 중부 비스와강의 중하류에 위치해 있는 중공업 도시이다. 1997년에 구 시가지가 세계유산에 등록되었다. 13세기 중반 프로이센의 정복과 복음 전도의 기지로 세워졌으며, 한자 동맹의 일원으로서 상업의 중심지로 발달하였다. (위키백과)


*폴란드 망명정부

Rząd Rzeczypospolitej Polskiej na uchodźstwie.

2차대전 당시 독일의 침공으로 인해 폴란드 제2공화국이 무너지자 세워진 폴란드의 망명정부.
파리와 런던에서 재건하면서 서유럽의 연합군에 참여했고, 1945년에 귀국을 시도했으나 좌절됨.

폴란드 본토를 장악한 소련군과 NKVD의 후원하 모스크바와 루블린에서 단합대회를 개최한 폴란드인 사회주의 세력들이 폴란드 공화국 임시정부를 창립하고 1947년의 부정선거를 바탕으로 인민민주주의 표방 폴란드 공화국 인민정부 수립, 1952년에는 공산주의 표방 폴란드 인민공화국을 선포.

전간기의 폴란드를 대표하는 정부로서 민주공화국 체제로 복귀할 때까지 계속 존속한다. 동유럽 혁명 이후 폴란드가 민주화되고 오늘날의 폴란드 제3공화국이 건국되면서 1990년에 국새, 대통령기, 국장을 전부 레흐 바웬사에게 넘겨준 후 해체하였다. (나무위키)



토룬(Torun)은 폴란드 중부에 있다. 수도 바르샤바에서 자동차를 북서쪽으로 운전하면 세 시간이 채 걸리지 않는다. 비스와 강이 지나는 아름다운 도시. 토룬은 시문(市門)이란 뜻이다. 1231년 폴란드에 진출하는 독일 기사단의 요새로 건설되어 교통과 무역의 요충으로 발전하였다. 근대 이후 폴란드의 주요한 중공업 도시가 됐다. 성 요한, 성 야곱, 성모교회 등 13~14세기 고딕식 사원을 비롯해 옛 건물이 많다. 199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가톨릭 사제이자 철학자, 천문학자인 미코와이 코페르니크가 토룬에서 태어났다. 라틴어로는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 '태양중심설(지동설)'로 근대 자연과학의 지평을 갈아치운 사람이다. 이탈리아에서 유학할 때 알게 된 아리스타르코스의 태양중심설을 천착해 지구중심설(천동설)의 오류를 지적하고 지동설을 확립하였다. 그의 천문학 체계를 집대성한 책이 '천구(天球)의 회전에 대하여'다. 코페르니크는 이 책이 나온 해에 죽었다.

......

김광균이 '도룬 시'라고 쓴 곳이 바로 토룬이다. 그가 어떻게 이 시를 쓸 수 있었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시인은 개성에서 태어나 송도상업학교를 졸업하고 고무공장 사원으로 군산과 용산 등에서 일했다. 폴란드를 여행했다는 기록이 없는 그가 중공업 도시 토룬의 이미지를 선명하게 포착하여 시어로 읊어내고 있는 것이다.

추일서정은 인문평론 1940년 7월호에 게재되었다. 폴란드가 나치 독일과 소련의 침략을 받아 서부 지역은 독일에, 동부 지역은 소련에 분할 점령된 이듬해다. 강대국의 손에 떨어진 고도(古都)는 과연 처량했을 것이다. ......

1896년 5월 18일 민영환이 이끄는 조선의 사절단 일행이 러시아 황제 대관식에 참석하러 가는 길에 바르샤바에 들렀다. 역관 김득련이 ‘환구음초’와 ‘환구일록’에 이 때의 일을 적었다. 1927년 7월 17일에는 화가 나혜석이 유럽여행을 하다 바르샤바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그는 자동차로 시내를 구경하고 기록을 남겼다.

......

1936년에 마라토너 손기정이 기차를 타고 베를린올림픽에 참가하러 가는 길에 바르샤바를 거친 기록도 있다. 같은 해 고고학자 한흥수와 영문학자 정인섭도 바르샤바에 들렀다... 어쨌든 김득련이나 나혜석, 정인섭 같은 사람들이 남긴 기록은 시기로 보아 김광균이 시를 쓰는 데 크게 도움이 되었을 리 없다. 추일서정은 기적 또는 수수께끼다.

김광균은 신문을 읽고 토룬의 현실을 상상했을 수 있다. 영감이 그의 뇌리를 스쳤으리라. 우주의 운행을 직관하는 데는 저녁 하늘을 가로지르는 유성 하나만으로도 충분하다. 영감은 접신(接神)과도 같아서 현실의 구렁텅이에서 진리의 문턱에 이르는 길을 단숨에 열어 놓는다. 코페르니크의 지동설도 그러했을지 모른다. 눈으로 별을 살피는 자의 가슴에는 늘 시심(詩心)이 일렁이게 마련이니까.

(허진석, [에세이 오늘] 추일서정, 아시아경제, 2018.11.23.)


도룬(Torun)은 폴란드의 도시이다. 제2차 세계대전 중 도룬에는 나치 독일의 전쟁포로수용소가 있었다. 나치는 폴란드인들을 괴롭혔지만 특히 인근의 유대인들을 모두 없애버렸다. 전쟁 말기에 소련군이 도룬시에 진격하자 이번에는 조상대대로 살아오던 독일계 시민들이 모두 소련군에 의해 없앰을 당했다.

전쟁초기부터 영국에는 폴란드 망명정부가 있었으나 폴란드를 점령한 소련도 전쟁중 폴란드 망명자들을 조직해서 병력으로 실컷 써먹은 영국도 전쟁이 끝나자 폴란드 망명정부를 모른 체 했다. 폴란드인들 중 상당수가 망명정부를 지지했고 망명정부의 지시에 따라 1944년 여름에는 그 끔찍한 바르샤바 봉기까지 감행했지만 모두 소용이 없었다.

전쟁이 끝나자 그동안 폴란드 망명정부가 발행했고 폴란드인들이 사모았던 화폐는 아무 가치가 없게 되었다. 마치 거리에 뒹구는 낙엽처럼.

(GotchaNews갓차뉴스, 문득 김광균 선생의 추일서정을 읽는 가을날, 2020.11.27.)


poland.travel의 Torun


poland.travel의 Torun


토룬(Toruń)은 폴란드의 북중부에 위치한 도시로 13세기 중엽에 튜턴 기사단에 의해 만들어졌으며 비스툴라강(Vistula River)의 요지에 자리하여 주요 무역 도시로 성장하였다. 폴란드의 다른 도시들과 마찬가지로 수세기 동안 토룬은 많은 전투를 겪어왔을 뿐만 아니라 침략, 점령당하기도 하였으나 다행히 2차 세계 대전에서는 큰 타격을 입지 않아 도시만의 독특한 건축 양식과 매력을 유지하고 있다. 현재 토룬은 “북의 진주”라고 불리며 폴란드에서 가장 방문하고 싶은 도시 중 하나로 손꼽히며(2017년 약 250만명 방문) 매력적인 도시로 주목받고 있다. (Arts & Culture(http://www.artsnculture.com, 2018.9.16.)


우리는 코페르니쿠스를 과학자로 생각하지만 그는 평생을 로마 교황청의 사제로 살다간 인물이다. 그는 지금으로부터 500년 전 폴란드 중서부의 조용한 도시 토룬이라는 곳에서 태어나 자랐다. 토룬은 우리에게는 다소 낯선 지명이지만 1997년 유네스코에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중세풍의 아름다운 도시이다. 다락방 한 구석에 먼지를 뒤집어 쓴 낡은 책들처럼 토룬은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곳이다. 토룬의 구시가지 광장은 장엄한 고딕 양식의 건물에서부터 화려한 르네상스식 건물까지 시대를 달리한 다양한 건축물이 많아 '건축박물관'이라고 불릴 정도로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풍긴다. 도시의 외형적인 이미지에서부터 토룬은 오래 묵은 커피나 친구 같은 그윽한 향기를 풍긴다.

바르샤바에서 북서쪽으로 200㎞ 정도 떨어진 토룬은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날 때까지 프로이센령에 속한 도시였다. 비수아 강 유역에 자리한 토룬은 발트 해의 요정이라 불리는 그단스크에서 생산되는 호박을 바르샤바나 크라쿠프로 수송하는 중계지로서 번영을 누린 상업도시이다.

토룬이 도시 형태를 갖추기 시작한 것은 13세기로 독일 기사단이라고 불리는 튜튼기사단에 의해 계획적으로 도시가 건설되었다. 14세기부터는 독일인이 결성한 한자동맹에 가입해 독자적인 상선을 가지고 네덜란드와 직접 교역하며, 막대한 부를 축적했다. 그 후 토룬은 15세기 중엽 튜튼기사단의 지배체제가 서서히 붕괴되자 폴란드의 통치를 받게 되었다. 폴란드 왕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은 토룬은 300여 년 동안 특혜를 누리며 상업 자유도시로 성장했지만, 1793년 프로이센왕국에 의해 점령되었고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다시 폴란드에 반환되었다.

독일에 오랫동안 지배를 받은 탓인지 도시 전체의 분위기는 폴란드의 여느 도시와는 달리 프로이센왕국의 이미지가 남아 있다. 발트 해의 그단스크와 비슷하면서도 조금 색다른 모습을 지닌 토룬은 코페르니쿠스의 고향이라는 것과 도시 전체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선정되었다는 이유만으로도 여행자들이 한번쯤 방문하고 싶어하는 마을이다.

시내 코페르니쿠스 동상

(매일경제, 트래블리포터, 2009. 6. 28.)


Note:

전체적으로 조사해보니, 토룬(도룬)은 소련의 포화가 일부 있었겠으나, 제2차 세계대전의 참화에서는 벗어나 있다. 제2차 세계대전의 참화라고 하면 독일 작센의 유서깊은 도시 드레스덴이 생각난다. 드레스덴에는 전쟁의 상흔이 도시 곳곳에 아직도 고스란히 남아있다. 어쨌든 시인의 상상력에 의해 나는 폴란드와 토룬에 대해 뜻밖의 눈호강을 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