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욱
반송 가는 길
그대의 벽지 반송리로 가는 막차는 아직 남아 있다 그대에게 가는 길의 오직 한길인 석대동 길목 잎진 겨울나무 아래 가문비 가문 그리움에 젖어 기다린다 아내는 아직 우산을 들고 서 있을까 이미 때를 놓친 많은 시간들이 조방창의 먼 불빛으로 반짝이고 시가 될 수 없는 일련의 생각들이 마음을 붙든다 외롭지 않다 내가 버린 팔할의 희망이 다시 솟아오르고 도로변을 달려가는 철마산의 무거운 산그림자도 발목을 붙든다 누가 알기나 하리 반송, 기장, 철마 아름다운 마을들의 이름들이 길과 길의 끝에 서 있고 단 한 번에 날려버릴 조방창의 폭약들이 다 터진다 해도 한발자욱도 벗어날 수 없는 그리움이 거기에 있다는 것을, 나의 희망인 반송리로 가는 막차는 아직 남아 있고 고단한 퇴근길의 저녁은 늘 이곳에서 부드러운 바람이 되었다.
(부산일보 1992년 신춘문예당선작; 1992년 신춘문예당선시집, 문학세계사, 1992)
*조방창:
'조방창'은 지금은 민영회사로 바뀐 옛 '조병창'을 민간에서 잘못 지칭하는 단어가 아닐까?
부산조병창은 1950년 공식 설립 당시에는 대한금속회사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국방부 블로거... '동고동락'은... "일본 군부가 세운 병기수리창과 일제 적산기업인 부산진제철소의 합병으로 부산조병창이 탄생한 것으로 본다"고 주장했다. 정부 기록을 보면 1948년 대한민국은 정부 수립 후 육군병기공창을 설치한다. 주로 일제의 공장 시설을 이용한 것인데 1949년 병기행정본부가 육군병기공창을 흡수해 다음 해인 1950년 6월 15일 부산에 제1조병창을 설치하고 운영한다. 또 인천에는 제2조병창을 세운다.
... 부산조병창에서 미 콜트 권총의 국산화가 이루어진다... 한국전쟁 중에 국군이 운영한 부산조병창은... 그러나 1951년 11월 30일 새벽 3시 30분께 부산진구 서면 부산조병창(국군 제1조병창)에서 대형 화재가 발생한다. 이 화재로 조병창은 물론 인근 가옥 40여 채가 전소됐다. 이후 부산조병창은 미8군의 도움을 받아 화재 발생 불과 한 달도 되지 않아 재건한다...
1958년 12월 이승만 대통령이 부산 동래 조병창 준공식에 방문... 동래구(현 해운대구) 부산조병창은 풍산금속의 전신으로 짐작된다.
1973년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로 소총 국산화를 위해 기장군 철마면에 별도의 국방부 조병창을 설치하면서...
기장군 철마 국방부 조병창은 도미기사를 통해 M16 국산화에 성공했다. 국방부 조병창은 1981년 대우정밀로 민영화됐다. 대우정밀은 오늘날 SNT모티브로 이어진다. (부산일보, 2022. 7. 17.)
국산 M16 소총이 탄생한 것은 1968년 1월 북한 무장공비 김신조 일당에 의해 발생한 1·21 사태 때문이다. 이를 계기로 같은 해 5월 워싱턴에서 열린 제1차 한·미 국방장관 회담에서 ‘한국군의 자위력 강화를 위한 한국에 M16 자동소총 공장을 건설한다’는 내용이 합의됐다.
이어 1971년 관련 양해각서가 체결됐다. 주요 내용은 한국에서 M16 공장을 건설하고 6년 이상의 기간에 60만 정의 M16 소총을 생산하며 총비용 7200만 불은 한국 정부가 부담하되 미국이 420만 불의 신용차관을 제공한다는 것이었다.
1972년 부산시 기장군 철마면에 한국 방위산업의 효시 국방부 조병창이 준공되면서 국산 소총 양산 체제를 갖추게 됐다. 이 조병창은 1981년 민영화돼 대우정밀공업으로 개명됐다. 2006년 S&T대우, 2012년 S&T모티브, 2021년 SNT모티브로 회사 명칭이 바뀌었다.
조병창에서 생산된 M16 소총은 1975년부터 일선 부대를 시작으로 전국 군부대에 보급됐다. (부산일보, 2021. 9. 23.)
Note:
반송, 기장, 철마 등 평범한 역이름도 아름다운 시어가 될 수 있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해준 시였다. 이 시가 신춘문예로 당선될 당시 나는 경주의 외동 연안 입실에 살았고 근처에는 모화 호계가 있었다. 이 역 이름 또는 동네 이름이 얼마나 정겨운 것인지 전혀 모르고 살고 있었던 것이다. (2023.6.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