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필
별주부전, 토생전, 수궁가 등 다양한 제목으로 전해지는 토끼와 거북이의 이야기는 특이하게도 우리나라의 초기 역사서인 삼국사기에 등장한다. 바로 삼국통일의 주인공인 김춘추가 고구려의 호구(虎口)에 들어가서 가까스로 위기를 벗어나는 장면에서이다.
[김]춘추가 청포(靑布) 3백 보를 [고구려] 왕이 총애하는 신하 선도해(先道解)에게 몰래 주었다. [선]도해가 음식을 차려와 함께 술을 마시다가 [술자리가] 무르익자 농담하듯 말하였다.
“그대는 또한 일찍이 거북이와 토끼의 이야기를 들어보았소? 옛날 동해 용왕의 딸이 심장에 병이 났는데 의원이 ‘토끼의 간을 얻어 약을 지으면 치료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하였소. 하지만 바다 속에는 토끼가 없으니 어찌하지 못하였소.
[그러던 차에] 거북이 한 마리가 있어 용왕에게 ‘제가 능히 그것을 얻을 수 있사옵니다.’라고 아뢰었소. 이윽고 육지에 올라 토끼를 보고는 ‘바다 속에 섬이 하나 있는데 샘은 맑으며 돌은 하얗고 수풀은 무성하고 과일은 맛이 좋으며 추위와 더위는 이르지 못하고 매와 송골매도 침입하지 못한다. 네가 만일 [그곳에] 가기만 한다면 편안하게 살 수 있어서 걱정이 없을 것이다.’라고 말하였소.
이로 인해 토끼를 등에 업고 2~3리 정도 헤엄쳐 가다가 거북이가 돌아보며 토끼에게 ‘지금 용왕의 딸이 병이 들었는데, 모름지기 토끼의 간이 약이 되는 까닭에 수고를 꺼리지 않고 너를 업고 왔을 따름이다.’라고 하였소. [그러자] 토끼가 말하였소.
‘아! 나는 신명(神明)의 후예라 능히 오장(五藏)을 꺼내 씻어 넣을 수 있다. 일전에 잠시 마음이 어지러워 마침내 간과 심장을 꺼내 씻어 잠깐 바위 아래에 두었는데 너의 달콤한 이야기를 듣고 곧바로 오느라 간은 여전히 거기에 있으니 어찌 간을 가지러 되돌아가지 않겠는가. 그렇게 하면 너는 구하는 것을 얻게 되고 나는 비록 간이 없어도 또한 살 수 있으니 어찌 양자가 서로 좋지 않겠는가.’
거북이는 그 말을 믿고 돌아가 겨우 해안에 이르렀는데 토끼가 도망치며 풀 속으로 들어가 거북이에게 ‘어리석구나, 그대여. 어찌 간 없이 살 수 있는 자가 있겠는가?’라고 하였소. 거북이는 근심하며 아무 말도 못하고 물러갔소.” (국사편찬위원회, 삼국사기 권제41 열전 제1 김유신)
이 설화는 이후 1,000여년간 우리 민초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다가 판소리 등에서 다양한 형태의 줄거리로 나타난다. 그런데 여기서 토끼가 선보인 지혜의 핵심은 무엇일까?
여행자수표(traveller's cheque)의 탄생에 얽힌 이야기가 떠오른다. 1890년경 유럽으로 향한 한달여간의 휴가 기간 중 제임스 파고(J. C. Fargo)는 신용장을 현금으로 바꾸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휴가를 마치고 그가 돌아와서 말했다, “길을 벗어나는 순간 신용장은 젖은 포장지만큼 쓸모가 없었다. 아메리칸 익스프레스의 회장이 그런 종류의 어려움을 겪는다면 평범한 여행자들은 어떨 것인가!" (Joan Magretta (2002), Why Business Models Matter?, HBR)
그리하여 아메리칸 익스프레스의 직원이던 마르셀루스 베리(Marcellus Flemming Berry)가 당시 미국 내에서 동사가 운영하던 우편환(money order) 사업을 해외로 확장하는 여행자수표 시스템을 개발하게 된다.
여행은 즐겁고 신나는 일이지만, 낯선 여행지에서 주거와 식량을 해결하려면 적당한 현금의 보유는 필수적이다. 그리고 장기간의 장거리 여행이라면, 더욱더 많은 현금이나 현금대용품(귀금속)이 필요할 것이다. 게다가 과거의 현금 주화는 두툼하고 무거웠다. 따라서 낯선 지역을 여행하는 사람들은 바로 그들이 지니고 다녀야 하는 현금으로 인하여 쉽게 도적들의 표적이 되었다. 낯선 무방비의 이국땅에서 불룩한 주머니에 모두가 탐내는 물건을 당연히 가지고 있을 여행객을 습격하는 기회를 어떤 도적이 외면할 수 있을까?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간단히 몇 장의 카드만 있으면, 문명화된(은행 지점이 있는) 지구상의 어디로든 아주 간편한 옷차림으로 돌아다닐 수 있다. 흡사 간을 빼놓고 용궁을 다녀온 토끼처럼.
사실 카드와 여행자수표 이전에 신용장(L/C, letter of credit) 및 환어음이 있었다. 이러한 교환수단들은 원거리 교역에서의 필수불가결한 필요에 대응해 나타났다. 신용장의 기원은 기원전 4세기경의 고대 아테네에까지 거슬러 올라가지만, 13세기 초경 이탈리아 반도의 도시국가들에서 와서야 거래에 관련된 구체적인 내용들이 기록으로 확인된다. 그런데 이처럼 신용장 제도가 다시금 부각된 것은 성전기사단(그리스도와 솔로몬 성전의 가난한 기사들, Knights of Templars)의 활동이 그 배경이라고 한다.
예루살렘은 1099년 1차 십자군 원정으로 정복되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순례자들은 유럽에서 예루살렘까지 수천 킬로미터를 여행하여 성지 예루살렘을 방문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유럽 각지에서 출발하여 예루살렘으로 떠나는 기독교 신자들이 본격적인 지중해 항행을 하기 전 마지막 기착지가 베니스이다. 이 무렵 성전기사단이 조직되어 순례자와 성지를 보호했다.
성전기사단은 현금 이동 문제를 해결했는데 순례자들은 금을 유럽의 지역 성당(런던에서 예루살렘까지의 거의 1,000여개가 되는 기사단의 전초기지outpost)에 예치하면 성전기사단의 다른 전초기지나 예루살렘 성전(기사단의 본부)에서 이를 인출할 수 있었다. (traveling-cook.com, 2022.5.14.) 순례자들은 돈을 나르는 대신 성전기사단의 신용장을 들고 다녔다. 그리고 성전기사단은 전리품으로 획득하거나 기부 받은 금과 부동산 등을 바탕으로 유럽 내의 군주들에게 돈을 빌려 주는 등 은행업을 겸하게 되었다. 유럽 영주의 부동산을 담보로 돈을 빌려 주었고, 이슬람 제국의 수프타자suftajah를 본떠 환어음을 발행하기도 했다.(석승훈, 경영학 무엇을 말해야 하는가, 79쪽)
십자군 시대가 끝난 후 1300년대에 성전기사단은 금지되었지만, 이제 신용장 개념은 지역 간 돈을 관리하는 데 그 유용성이 널리 확인되었다. 다만 어떤 기관이 성전기사단을 대신하여 국제적으로 수용될 수 있는 신인(信認)을 제공할 수 있는가의 문제가 새롭게 대두되었을 것이다. 따라서 이 방법은 피렌체의 메디치가나 신뢰도 높은 환전상들이 출현하여 무역과 사업이 더욱 유동적이고 국제화됨에 따라 조금씩 개선되어 오다가 아메리칸 익스프레스의 여행자수표 시스템에 이르러 비로소 일반인들에게도 편리한 여행을 보장할 수 있게 된 것이라 할 수 있다.
간을 떼어놓고 다니는 토끼는 협상 분야에서도 훌륭한 모범이 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첫 근대적 조약인 강화도 조약에서 조선정부는 신헌(申櫶)을 접견대관, 윤자승(尹滋承)을 부관으로 임명하여 강화도를 회담 장소로 결정하고 일본과 교섭하였는데, 이때 당시, 신헌은 모든 중요한 의사결정은 한양 궁성에서 고종이 직접 의사결정한다는 점을 일본 대표에게 확인시켰다. 그리고 회담의 중요한 고비에서는 항상 한양으로 파발을 보내어 고종의 성지(聖旨)를 확인한 연후에 협상을 재개하곤 하였다. (한보람, 2020; 김종학, 2017)
이처럼 협상 실무자와 의사결정자의 분할은 협상장에서의 중요한 전략 중의 하나이다(로저 도슨(1999), 협상의 비법Secrets of Power Negotiating for Salespeople). 실제 회담장에서는 상대의 도발이나 겁박 등 예측 못한 변수에 더하여 시간의 재촉과 공간의 제한으로 후회막급의 결정을 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그리고 이러한 일시적 분위기에 정보의 비대칭까지 더해지면 졸속의 판단을 피할 수 없다. 최소한 하루 이틀이라도 지나고 또 여러 사람이 함께 의논한다면, 더 좋은 방안이 생기게 되는 것은 누구나 경험하는 일이다.
최종 의사결정자가 위원회와 같이 여러 사람이 모인 기관이라고 하면, 그 협상능력은 더욱 극대화된다(로저 도슨, 1999). 우리는 국제외교현장에서 각국의 행정부가 교섭한 국가간 외교적 교섭 및 약속들이 해당국의 의회에 의해 비준되지 못하여 낭패하는 사례를 가끔 보기도 한다. 한 술 더 떠, 미국행정부는 국제 협약이나, 타국과의 협상시 미국 의회에서의 비준 가능성 여부를 협상카드로 사용하기까지 한다.
그러나 '분할'의 아이디어가 막상 쉽게 떠오르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뇌는 모든 사물을 존재하는 그대로의 일체화된 것으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의자를 보며 의자와 의자 다리, 의자와 의자 등받이, 의자와 받침대를 분할해서 인식하기란 그리 쉽지 않다. 그러나 일단 분할의 관점을 얻게 되면 의자는 무궁무진의 방법으로 재해석될 수 있다. 앉은뱅이 의자, 스툴stool, (받침대 구멍이 뚫린) 좌변기 겸용 의자, 계단식 의자, 포개서 쌓아서 보관할 수 있는 의자, 몸통이 비어서 물품을 수납할 수 있는 의자 등등 분할을 통한 부분품의 재배치와 다양한 기능의 결부가 무한히 가능해진다.
그러나 기술적 문제 상황이 아닌 인문적 문제 상황에서 분할은 내가 행한 '분할'을 상대가 믿게 만드는 '신뢰'가 담보될 필요가 있다. 그 신뢰가 설화 속에서처럼 비록 기만이라고 할지라도 그렇다. 상대가 믿지 못하는 분할은 작동되기 힘들다. 이때 신뢰는 문제 상황에서 사물에 대한 뇌의 인식상 고착을 거꾸로 활용하는 도구이다. 설화에서는 토끼의 간이 토끼의 몸밖으로 분리되지 않았음에도, 분리되는 것으로 상대를 믿게 만들었다. 현실에서는 그러한 신뢰를 어떻게 창조할 것인가? 그것은 이 우화가 우리에게 던지는 새로운 질문이다.
*참고문헌:
인권환 (1967), 「토끼전」 근원설화 연구 - 인도설화의 한국적 전개 -, 아세아연구, 25.
*삼국사기 원문(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db.history.go.kr/item/)
三國史記 卷 第四十一 列傳 第一 金庾信 上
春秋以青布三百歩, 密贈王之寵臣先道解. 道解以饌具來, 相飮酒酣, 戱語曰, “子亦甞聞龜兔之說乎. 昔東海龍女病心, 醫言, ‘得兔肝, 合藥則可療也.’然海中無兔, 不奈之何. 有一龜白龍王言, ‘吾能得之.’遂登陸見免言, ‘海中有一島, 清泉白石, 茂林佳菓, 寒暑不能到, 鷹隼不能侵. 爾若得至, 可以安居無患.’因負兔背上, 游行二三里許, 龜顧謂兔曰, ‘今龍女被病, 湏兔肝爲藥, 故不憚勞, 負爾來耳.’兔曰, ‘噫. 吾神明之後, 能出五蔵, 洗而納之. 日者, 小覺心煩, 遂出肝心洗之, 暫置巖石之底, 聞爾甘言徑來, 肝尚在彼, 何不迴歸取肝. 則汝得所求, 吾雖無肝尚活, 豈不兩相冝哉.’龜信之而還, 纔上岸, 兔脫入草中, 請龜曰, ‘愚哉, 汝也. 豈有無肝而生者乎.’龜㦖黙而退.”
* '토끼의 간'의 지혜에 대한 이야기는 고대 인도에서 전래되어 온 것이다. 늦어도 BC 3세기에는 성립되었으리라고 여겨지는 석가모니의 전생담前生譚인 Jataka(本生譚본생담)에 이 이야기의 원형이 있다.
어느 물가에 원숭이가 살고 있었다. 그 물 가운데에는 과실이 많은 섬이 있었는데 원숭이는 물 위에 나온 돌을 밟고 뛰어 섬에 들어가 과실을 따 먹고 저녀때가 되면 같은 방법으로 물가에 돌아오곤 했다. 그때 그 물속에는 악어부부가 살고 있었다. 마침 임신 중이던 악어의 부인은 남편에게 원숭이의 심장이 먹고 싶다고 했다. 이에 남편은 원숭이를 잡고자 원숭이가 밟고 다니는 돌 위에 엎드려 있었다. 이 기미를 알아챈 원숭이가 웬일이냐고 묻자 악어는 너의 심장을 빼앗고자 한다고 했다. 돌아갈 길이 막연한 원숭이는 꾀를 내어 그렇다면 심장을 줄테니 입을 벌리라고 했다. 원래 악어는 입을 벌리면 눈이 감기는 법이라 악어가 입을 벌리고 있는 사이 원숭이는 악어의 머리를 밟고 강가로 달아나 버렸다. (Jataka 57 猿王本生원왕본생)
Jataka에는 비슷하지만 약간 다른 이야기가 두 가지 더 있다.
어느 삼림 중에 원숭이가 살고 있었다. 그때 근처 물가에 악어부부가 살고 있었는데 악어부인이 원숭이의 심장을 먹고 싶다고 했다. 남편은 수중에 있는 몸으로 육지의 원숭이를 잡는다는 것이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했으나 곧 한 꾀를 내어 마침 물 마시러 강가에 나온 원숭이를 보고 강 건너에는 맛있는 과실이 많다고 자랑했다. 그러자 원숭이는 물을 건널 수가 없다고 한탄했다. 이에 악어는 내 등에 타면 데려다 주마고 했다. 이리하여 원숭이를 등에 업은 악어는 물 중간쯤에 이르러 원숭이를 내려놓고 놀래는 원숭이에게 너의 심장을 내어 자기 아내에게 주고자 한다고 했다. 깜짝 놀란 원숭이는 한 꾀를 내어 “왜 미리 말 안했는가 나의 심장은 나무 위에 걸어두고 왔다”고 속여 말했다. 이에 악어는 그럼 그 심장을 보여달라고 원숭이를 다시 업고 물가에 이르자 원숭이는 육지로 달아나 버렸다. (Jataka 208 鰐本生악본생; Jataka 342 猿本生원본생도 이 설화와 유사하다고 함)
이러한 이야기들이 인도 범어에서 중국어로 불경의 번역사업을 거치며 조금씩 각색된다. 한역경전 중에는 六度集經육도집경, 生經생경, 佛本行集經불본행집경의 경전에 나온다. 다음은 그 중 불본행집경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부처님께서는 모든 비구들에게 이르셨다.
“내가 생각건대 옛날에 대해(大海) 속에 뿔 없는 큰 용(虬규) 한 마리가 살고 있었는데, 그 용에게는 새끼를 밴 아내가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아내는 원숭이의 심장이 먹고 싶어졌다. 그는 너무나 먹고 싶은 나머지 몸이 야위고 누렇게 뜨고 변해 갔으며 덜덜 떠는 등 안정을 하지 못하였다. 그러자 숫용은 아내의 몸이 이렇게 여위고 안색이 좋지 못한 것을 보고 물었다.
‘당신은 지금 무슨 걱정이 있소? 뭔가 먹고 싶은 것이 있소? 나는 당신이 나에게 먹을 것을 구해 달라고 말하는 것을 듣지 못하였는데, 무슨 까닭이오?’
그러나 암용은 잠자코 대답하지 않았다.
숫용은 다시 물었다.
‘당신은 지금 왜 나에게 말하지 않는 것이오?’
암용은 대답하였다.
‘당신이 만약 내 원하는 대로 해 준다면 말할 것이나, 그렇지 않다면 내 어찌 쓸데 없는 말을 하겠소?’
숫용은 말했다.
‘어서 말해 보오. 만약 구할 수 있다면 나는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구해내고야 말겠소.’
그러자 암용이 말했다.
‘나는 지금 원숭이의 심장이 먹고 싶습니다. 당신은 그걸 구해 올 수 있겠소?’
숫용이 곧 대답했다.
‘당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란 매우 어렵소. 왜냐 하면 우리가 사는 곳은 대해 속이지만 원숭이는 산의 우거진 숲 나무 위에 사는데 어떻게 구할 수 있겠소?’
암용은 말했다.
‘어쩌면 좋겠습니까? 나는 지금 그걸 먹을 수 있으리라 생각하였는데 만약 구하지 못한다면 틀림없이 낙태하고 말 것이요, 나 역시도 오래지 않아 목숨이 다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숫용은 암용의 말을 듣고 말했다.
‘어질고 착한 이여, 그대는 잠시만 견디어 주오. 내 이제 구하러 가겠소. 만약 구할 수만 있다면 말할 것도 없이 우리 둘 다 행복하고 즐거울 것이오.’
그리하여 용은 깊은 바다에서 나와 물가에 이르렀다. 바닷가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큰 우담바라(優曇婆羅, 수나라 말로는 구원求願이라 함) 나무가 한 그루 있었는데 몸집이 큰 원숭이 한 마리가 꼭대기에 살면서 열매를 따먹고 있었다. 용은 원숭이가 나무 꼭대기에 앉아 열매를 따먹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서 차츰 그 나무 아래로 다가갔다. 마침내 나무 아래에 도착한 용은 원숭이에게 안부를 건네며 듣기 좋은 말로 꼬이며 말했다.
‘착하고 착하다, 바사사타(婆私師吒)여. 나무 위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거동하기가 힘들어서 괴로움을 받지는 않는가? 먹는 것을 구하는 일이 쉬워서 행여 피곤하지는 않은가?’
원숭이는 대답했다.
‘그렇소, 어진 이여. 나는 지금 크게 힘든 일은 없소.’
용이 다시 원숭이에게 말을 건넸다.
‘그대는 이런 곳에서 무엇을 먹는가?’
원숭이는 대답했다.
‘나는 우담바라 나무 위에서 그 열매를 따먹고 있소.’
그러자 용은 또 원숭이에게 말했다.
‘내가 지금 그대를 보니 너무나도 기쁜 마음이 일어나 온몸에 두루 즐거움이 차 올라 견딜 수가 없소. 내 그대와 좋은 친구가 되어 서로 친애하고 공경하고자 하니, 그대는 내 말을 들으시오. 왜 하필 이런 곳에 살고 있는 것이오? 이 나무는 열매도 많지 않은데 어떻게 이런 곳을 좋다고 하겠소? 그러니 어서 나무에서 내려와 나와 함께 갑시다. 나는 그대를 데리고 바다 건너 저편으로 갈 것이오. 저 언덕에는 따로 큰 숲이 있는데 온갖 꽃들과 열매가 풍성하고 넉넉하니, 이른바 암바(菴婆) 열매ㆍ염부(閻浮) 열매ㆍ이구사(梨拘闍) 열매ㆍ파나사(頗那娑) 열매ㆍ진두가(鎭頭迦) 열매 등과 나무들이 한없이 많이 있소.’
원숭이가 물었다.
‘내가 어떻게 그곳에 갈 수 있겠소? 바다는 너무나 넓고 깊어서 건너기가 매우 어려운데 내가 어떻게 물 위로 떠서 건널 수 있겠소?’
그러자 용이 원숭이에게 대답하였다
‘내가 그대를 업고 바다 저편 언덕에 건네주리니 어서 나무에서 내려오시오. 그대는 그저 내 등 위에 올라타기만 하면 되오.’
한편 원숭이란 것은 마음이 일정하지 않은 까닭에 마음이 좁고 용렬하며 어리석고 미련하며 본 것이나 아는 것이 거의 없는 동물이다. 그리하여 용의 달콤한 말을 듣고 마음에 크게 기쁨을 내어 나무에서 내려와 용의 등에 업혀서 그를 따라가려 하였다. 용은 속으로 이렇게 생각하였다.
‘이제 다 됐다. 내 소원은 이미 이루어졌다.’
그리하여 곧 자기 살던 곳으로 데려가려고 원숭이를 업은 채 물 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이때 원숭이는 그 용에게 물었다.
‘착한 벗이여, 왜 물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오?’
용은 대답했다.
‘너는 아무것도 모른다.’
원숭이가 다시 물었다.
‘대체 무슨 일이며 나를 어찌하려는 것이오?’
용은 대답했다.
‘내 아내가 지금 임신중인데 너의 심장을 먹고 싶어한다. 그래서 너를 끌고가는 것이다.'
그제야 원숭이는 정신이 들었다.
‘아아, 슬프다. 나는 이제 너무나 큰 재앙을 만났구나. 내 스스로 죽음을 택하였구나. 아아, 이제 나는 어떤 방법을 써서 이 다급한 액난을 벗어나 목숨을 구할 수 있을 것인가.’
그는 다시 생각을 하였다.
‘용을 속이지 않으면 안 되겠다.’
그리하여 곧 용에게 말하였다.
‘어질고 착한 벗이여, 나는 심장을 우담바라 나무 위에 걸어 놓고 평소에는 가지고 다니지 않소. 왜 처음부터 내 심장이 필요하다고 알려 주지 않았소? 그랬다면 내가 심장을 가지고 왔을 것인데……. 어진 벗이여, 어서 나를 그곳으로 다시 데려다 주오. 그러면 심장을 가지고 오겠소.’
용은 원숭이의 이 말을 듣고 다시 물 밖으로 나왔다. 원숭이는 용이 물가로 나오려 하는 틈을 노려 온 힘을 다하여 용의 등에서 뛰어내려 저 우담바라 큰 나무 위로 올라갔다. 용은 나무 아래서 잠시 기다렸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원숭이가 내려오지 않자 그에게 말하였다.
‘친애하는 착한 벗이여, 어서 내려와 나와 함께 우리 집으로 가자.’
그러나 원숭이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또 내려오지도 않았다. 용은 아무리 기다려도 원숭이가 오래도록 내려오지 않자 게송을 읊었다.
착한 벗 원숭이여, 심장을 찾았거든
나무에서 빨리 내려오기 바란다.
내 틀림없이 그대를 바다 건너 숲으로 보내어 주리라.
온갖 과일들이 넘쳐나는 곳으로.
원숭이는 생각하였다.
‘이 용은 참으로 어리석구나.’
그리고 나서 곧 용에게 게송으로 대답하였다.
너 용은 꾀는 좋을지 몰라도
마음으로 아는 것은 매우 좁구나.
자세히 생각해 보아라.
이 세상에 심장 없는 중생이 있는지를.
저 건너 숲에 나무 열매가 풍족하고
온갖 암라와 같은 맛좋은 과일이 있다 하여도
내 생각은 참으로 거기 있지 않으니
차라리 여기 우담바라 열매를 먹으리라.”
그때 부처님께서는 모든 비구들에게 이르셨다.
“너희 모든 비구들아, 알아 두어라. 그때 큰 원숭이는 바로 지금의 나요, 용은 마왕 파순이었다. 그 때에도 나를 속이려 했으나 이루지 못했거늘, 이제 다시 또 세간의 자재한 5욕의 일을 가지고 와서 나를 꼬이지만 어찌 내 자리를 움직일 수 있겠느냐?”
(佛本行集經불본행집경 卷第三十一권제31 隋天竺三藏 闍那崛多 譯 수천축삼장 도나굴다 역 昔與魔競品석여마경품 第三十四 제34, 번역시기: AD. 587~592)
인도에서 원숭이와 악어는 중국어로 번역되면서 원숭이와 자라(육도집경, 생경) 또는 원숭이와 뿔 없는 용(虬규)(불본행집경)으로 바뀐다. 그리고 인도에서 악어가 먹고 싶어 하는 것은 심장이지만 육도집경과 생경에서는 간으로 바뀐다(불본행집경은 심장이다).
*불본행집경 원문(불교기록문화유산아카이브, kabc.dongguk.edu/content/)
佛本行集經卷第三十一 昔與魔競品第三十四
爾時,佛告諸比丘言:“我念往昔,於大海中,有一大虯,其虯有婦身正懷妊,忽然思欲獼猴心食。以是因緣,其身羸瘦,痿黃宛轉,戰慄不安。時彼特虯,見婦身體如是羸瘦無有顏色。見已問言:‘賢善仁者!汝何所患?欲思何食?我不聞汝從我索食,何故如是?’時其牸虯嘿然不報。其夫復問:‘汝今何故不向我道?’婦報夫言:‘汝若能與我隨心願,我當說之 ; 若不能者,我何假說?’夫復答言:‘汝但說看,若可得理,我當方便會覓令得。’婦卽語言:‘我今意思獼猴心食,汝能得不?’夫卽報言:‘汝所須者,此事甚難。所以者何?我居止在大海水中,獼猴乃在山林樹上,何由可得?’婦言:‘奈何我今意思如此之食,若不能得如是物者,此胎必墮,我身不久恐取命終。’是時其夫復語婦言:‘賢善仁者!汝且容忍,我今求去。若成此事,深不可言,則我與汝竝皆慶快。’爾時,彼虯卽從海出,至於岸上。去岸不遠,有一大樹,名優曇婆羅隋言求願。時彼樹有一大獼猴,在於樹頭,取果子食。是時彼虯旣見獼猴在樹上坐食於樹子,見已漸漸到於樹下,到已卽便共相慰喩,以羙語言問訊獼猴:‘善哉善哉!婆私師咤,在此樹上,作於何事?不甚辛勤受苦惱耶?求食易得 ; 無疲惓不?’獼猴報言:‘如是仁者!我今不大受於苦惱。’虯復重更語獼猴言:‘汝在此處,何所食噉?’獼猴報言:‘我在優曇婆羅樹上,食噉其子。’是時虯復語獼猴言:‘我今見汝,甚大歡喜,遍滿身體,不能自勝,我欲將汝作於善友,共相愛敬。汝取我語,何須住此?又復此樹子少無多,云何乃能此處願樂?汝可下來隨逐於我,我當將汝渡海,彼岸別有大林,種種諸樹花果豐饒。所謂菴婆果,閻浮果,梨拘闍果,頗那娑果,鎭頭迦果,無量樹等。’獼猴問言:‘我今云何得至彼處?海水深廣,甚難越渡,我當云何堪能浮渡?’是時彼虯報獼猴言:‘我背負汝,將渡彼岸,汝今但當從樹下來騎我背上。’
爾時獼猴,心無定故,狹劣愚癡,少見少知,聞虯美言心生歡喜,從樹而下,上虯背上,欲隨虯去。其虯內心生如是念:‘善哉善哉!我願已成。’卽欲相將至自居處,身及獼猴俱沒於水。是時獼猴問彼虯言:‘善友!何故忽沒於水?’虯卽報言:‘汝不知也。’獼猴問言:‘其事云何?欲何所爲?’虯卽報言:‘我婦懷妊,彼如是思欲汝心食,以是因緣,我將汝來。’
爾時獼猴作如是念:‘嗚呼我今甚不吉利!自取磨滅。嗚呼我今作何方便,而得免此急速厄難,不失身命?’復如是念:‘我須誑虯。’作是念已,而語虯言:‘仁者善友!我心留在優曇婆羅樹上寄著,不持將行。仁於當時,云何依實不語我知今須汝心?我於當時,卽將相隨。善友還迴,放我取心,得已還來。’爾時,彼虯聞於獼猴如是語已,二俱還出。獼猴見虯欲出水岸,是時獼猴,努力奮迅,捷疾跳躑,出大筋力,從虯背上,跳下上彼優曇婆羅大樹之上。其虯在下少時停待,見彼獼猴淹遲不下,而語之言:‘親密善友!汝速下來,共汝相隨,至於我家。’獼猴嘿然,不肯下樹。虯見獼猴經久不下,而說偈言:
善友獼猴得心已,
願從樹上速下來,
我當送汝至彼林,
多饒種種諸果處。
爾時,獼猴作是思惟:‘此虯無智。’如是念已,卽向彼虯而說偈言:
汝虯計挍雖能寬,
而心智慮甚狹劣,
汝但審諦自思忖,
一切衆類誰無心。
彼林雖復子豐饒,
及諸菴羅等妙果,
我今意實不在彼,
寧自食此優曇婆。
爾時,佛告諸比丘言:“汝諸比丘!當知彼時大獼猴者,我身是也;彼時虯者,魔波旬是。於時猶尚誑惑於我,而不能得,今復欲將世閒自在五慾之事,而來誘我,豈能動我此之坐處?”
*우편환어음 시스템은 송금자가 가까운 우편국에 가서 보내고자 하는 현금의 금액이 쓰여진 머니 오더money order를 구매, 작성하면 현금 대신 머니 오더가 우편으로 배달되어 해당 우편국에 가서 다시 현금으로 교환하는 방식.
(illustory.tistory.com, 아멕스 #4, 2022.6.25.)
*신용장이란, 예금자가 거래은행에 청구하여 발행받는 증서로써 신용장만 가지고 있으면 해외의 거래은행에서 자유롭게 현금을 찾아쓸 수 있다. 신용장 사용을 통한 현금 인출 시에는 본인 확인을 위해서 예금자의 거래 은행에 보관 중인 서명을 해외의 거래은행에 우편으로 보내야 하는데 여기서 시간이 많이 지체된다. 그리고 환율의 변동시 기준환율을 해외은행이 마음대로 정했기 때문에 환율사기를 당하는 일도 빈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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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칸 익스프레스의 베리는 여행자가 여행자 수표의 왼쪽 상단에 사인을 미리 해두고 현금처럼 사용할 때, 오른쪽 하단에 동일한 사인을 하는 방식으로 본인 확인 절차를 간소화하였고 여행자 수표에 유럽의 통화로 환전될 금액을 미리 기재하여 환율변동과 상관없이 환전이 될 수 있도록 하여 여행자가 환전사기를 당하지 않게 하였다. 그리고 10달러, 20달러, 50달러, 100달러 등 여러 장을 묶어서 금액이 다른 수표가 필요할 때 뜯어서 사용할 수 있게 하였다. 그렇게 1891년 3월 세계 최초의 여행자수표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트래블러스 체크'가 탄생, '푸른 지폐'라 불리며 여행자의 필수품이 된다.
(illustory.tistory.com, 아멕스 #5, 2022.6.26.)
*여행자수표는 1772년 1월 1일 런던 신용 교환 회사에서 유럽 90개 도시에서 사용하기 위해 처음 발행되었다. 그리고 1874년 Thomas Cook & Son 은 여행자수표와 동일한 회람권(circular notes)을 발행했다.
Traveler's checks were first issued on January 1, 1772 by the London Credit Exchange Company for use in 90 European cities. In 1874, Thomas Cook & Son issued circular notes that were the same as traveler's chcks.
(traveling-cook.com, 2022.5.17., Who Invented the Traveler's Checks? History of Tourism)
*... American Express는 이미 우편환 사업을 잘 운영하고 있었기 때문에 동사의 여행자수표가 쉽게 채택되고 받아들여졌다... 국제 관광객들에게 종이로 된 돈을 휴대하는 것은 여전히 위험했지만 American Express 여행자 수표를 사용하면 지갑을 잃어버리는 불행을 겪더라도 여행 중에 돈을 사용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시대가 변하고 현대 소비주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광대한 인구에 걸쳐 기업은 다양한 구매를 "충전charging"하는 수단을 제공하기 시작했지만 여러 곳에서 사용할 수 있는 최초의 충전 카드는 1950년에 개발된 Diner's Club 카드였다. 곧 은행에서 회전(revolving) 신용 카드를 발행하고 Visa와 Mastercard가 탄생했다. American Express는 1958년 신용 카드 사업에 합류하여 1959년에 최초의 플라스틱 양각(embossed) 카드를 발행했다. 신용 카드 업계의 성공은 여행자 수표의 종말의 시작을 알렸다.
The benefit of the American Express travelers cheque was that it was guaranteed globally, could be replaced if lost or stolen, never expired, and was accepted by most banking institutions, money exchangers, and even some businesses. Since American Express already had the money order business well established, the travelers cheques were easily adopted and accepted. When the broader population could travel more rapidly, readily, and leisurely, the world became accessible to international tourists. Carrying money, even in paper form, continued to be risky, but with an American Express travelers cheque, you could rest assured that you would have access to money on your trip, even if you had the misfortune of a lost wallet.
As times changed and the modern era of consumerism arrived across a vast population, businesses began to offer various means of “charging” purchases, but the first charge card that could be used at multiple places was the Diner’s Club card, which was developed in 1950. Soon, banks issued cards with revolving credit, and Visa and Mastercard were born. American Express joined in the credit card business in 1958, issuing the first plastic embossed cards in 1959. The success of the credit card industry spelled the beginning of the end for travelers cheques.
(news.trace.com, 2022.1.2., From Crusades to Credit Cards by Wesley Eames)
*어음(bill)이란 금전적인 가치가 있는 서류(유가증권)로 명시된 금액에 대한 지불을 약속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어음이라고하면 약속어음(promissory note)을 뜻하는데 약속 어음은 발행인이 돈을 지불해야 하는 사람(매수인, buyer)이며 수취인이 돈을 받아야 하는 사람(매도인, seller)입니다. 약속 어음의 조건은 금액을 바로 지불하는 것이 아니라 일정 기간이 지난 뒤 지불한다는 것입니다. 이 기간은 어음 속에 명시되어 있어 거래마다 다릅니다. 수표와 비슷한 개념으로 생각하면 됩니다. 그 서류(종이) 자체가 그 안에 쓰여있는 금액만큼의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환어음은 bill of exchange 또는 draft라고 영어로 표기하며 대표적인 무역 결제 수단입니다. 약속어음은 발행인이 돈을 지불할 것을 약속하는 서류지만 환어음은 발행인이 돈을 받고자 하는 사람(매도인, seller)으로 수취인에게 대금을 지급해줄 것을 요청하는 것입니다. 추심 방식이나 신용장 결제 방식에 사용되며 이때 대금을 지급하는 자는 제삼자인 은행이 됩니다. 수출자가 환어음을 발행하고 은행이 수출자에게 대금을 지급하고 수입자에게 이 금액을 회수하는 방식입니다.
약속 어음은 국내 거래에서, 환어음은 국제 거래에서 사용되며 약속어음은 순환, 환어음은 반대로 흘러간다는 뜻에서 역환이라고 부릅니다. 약속어음과 환어음은 비슷한 이름을 가지고 있지만 과정은 정반대라는 큰 차이점이 있습니다.
둘의 차이점을 요약하자면 약속어음은 발행인이 돈을 줄 것이다는 약속이며, 환어음은 발행인이 청구하는 방식에 제삼자가 개입된다는 점입니다.
(1cmglobal.tistory.com, 약속어음과 환어음이란? 차이점 비교, 2020.9.21.)
*기원전 4세기경까지 고대 그리스의 도시국가 아테네, 그 후 고대 로마에서 환전상이 환전, 예금, 대출, 송금 등과 함께 신용장 발행업무를 시행했다고 한다... 가장 오래된 신용장은... 12세기로 알려져 있다. 당시에 로마법왕이나 영주가 그 사용자에게 필요한 자금을 획득시키기 위해서 휴대토록 한 개봉서장이 최초의 신용장이었다...
초기 신용장 이후 17세기에 이르기까지 신용장에 관한 기록은 찾아볼 수 없다. 1622년에 출판되었던 마린(Gerard de Roberts Lewis Malynes)의 저서 『상법Lex Mercatoria』에서 「신용장이란 상인이 그 사용인 또는 친구로 하여금 상품을 매입하게 하기 위해 또는 일정의 목적을 위해서 금전을 사용시키는 경우에 다른 상인 앞으로 보내는 서장을 써주고... 편지를 지참한 자에게 필요한 자금을 빌려 주면 후에 금전을 상환하거나 환율에 따른 지불을 행할 것이라는 내용의 서장」이라고 기술하고 있다...
신용장은 상인이 발행하고, 상거래에 관여하는 자금을 조달시킨다는 점에서 상업신용장(commercial letter of credit)이라고도 할 수 있으나 오히려 여행자로 하여금 현금휴대의 위험과 불편을 피하고, 그 여행지에서 필요로 하는 자금을 얻을 수 있게 하기 위한 신용장이며 오늘날의 여행신용장과 유사한 신용장이었다고 볼 수 있다.
(김현미 (2012), 전자신용장(e-L/C)의 활성화를 위한 거래실무상의 문제점과 해결방안에 관한 연구, 전남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화폐의 역사상 중요한 사건이 9세기 초 당에서 일어났는데... 비전飛錢의 발행이다. 비전은 상인과 세금 징수원이 금은이나 동전 대신 사용한 종이 어읆이었다... 종이로 된 최초의 어음... 어음이란 나중에 금화, 은화, 동정 등의 진짜 돈(경화, hard money)으로 바꿔주기를 약속한 증서다. 이 증서가 제 역할을 하려면 발행자가 신용이 있어야 한다... 신용이 부여된 어음은 한 단계 업그레이드될 여지가 존재한다. 은행 점포에서 동전으로 교환해 줄 것이 보증되어 있다면, 이 상인은 장안까지 가는 도중 발견한 좋은 차를 돈 대신 이 어음을 주고 살 수 있을 것이다.... 송 초기에는... 1024년경 사천 지방에서 국가가 어음을 발행하기 시작한다. 동전을 만드는 데 필요한 구리가 부족한 것도 어음 발행의 한 이유가 되었다... 인류 역사상 최초의 지페... 교자交子였다... 1160년 남송 시대에는 회자會子라는 지폐를 발행했는데, 전국에 유통된 최초의 지폐로 기록된다... 금은 송을 본떠 보권寶卷이라는 지폐를 발행했다... 원은... 쿠빌라이 칸 이후에 보초寶鈔라는 지폐를 발행했다... 지금도 중국에서 지폐의 의미로 쓰이는 '초'는 뽕나무 껍질로 만든다고 한다... 당시 원에서 금이나 은이 아닌 종이를 화폐로 쓴다는 마르코 폴로의 말은 비웃음을 샀지만, 이 책(동방견문록)은 유럽인들에게 아시아에 대한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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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제국은 유럽과 아프리카와의 중개 무역으로 부를 누렸는데, 앞서 당에서 사용된 비전과 비슷한 수표와 어음을 개발하여 사용했다. 수표인 사크sakk, 약속어음인 루카ruq'ah, 환어음인 수프타자suftajah 등으로, 사크는 수표를 뜻하는 영어 'check'의 어원이다. 이러한 무역과 상업활동은 신용을 바탕으로 이슬람 제국 전 지역에서 이루어졌다. 당시 이슬람 제국의 중심지였던 카이로나 바스라 등지에서는 은행업자가 어음 등을 발행했고, 상인들은 은행 계좌를 이용했다.
(석승훈, 경영학 무엇을 말해야 하는가, 65-75쪽)
*1876년 1월 17일... 일본측이... 신헌의 지위와 역할을 물으면서 일의 가부를 독자적으로 결단할 수 있는 위치인지 묻자, 신헌은 단호하게 자신은 결정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니며... 조정에 품달하고 지시를 기다려서야 알릴 수 있다고 하였다. 그는 자신이 외교적 협상의 담당자가 아님을 상대측에 확실히 하였던 것이다.
(한보람 (2020), 고종 친정 주도세력의 개방 정책 추진과 조일수호조규 체결, 역사와 실학, 71.)
*... 18일에는 일본과 통상을 허락하되 조약의 구체적 내용에 관해선 접견대관에게 위임할 것을 의정부에서 상주해서 고종의 윤허를 받았다(승정원일기 고종13년 1월 24일). 이 관문은 다음날 강화도에 도착했는데, 신헌은 일본인들이 이 사실을 알면 기존의 요구가 대부분 허락된 것으로 생각해서 더 큰 요구를 할까 우려하여 보여주지 않았다(심행일기, 190)...
(김종학 (2017), 1879년 조일수호조규 체결과정의 재구성 : 『심행일기(沁行日記)』와 몇 가지 미간문헌에 기초하여, 한국정치학회보, 51집 5호 2017 겨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