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휴자원(遊休資源)

조영필

by 조영필 Zho YP

유휴자원을 활용하여 각광받는 기업이 있다. 에어비앤비AirBnB라고 하는 회사이다. 창업한 지 불과 10여년도 안되어 세계적인 글로벌 기업이 되었다. 이런 기업이 또 있다. 우버Uber이다. 우버하다(uber)라는 말이 통용될 정도로 유명한 기업이다.

2014년 무렵일 것이다. 아침에 회사로 출근하기 위해 발산에서 88올림픽고속도로에 진입하였는데, 여의도를 지날 무렵 갑자기 차가 불어나 차가 엉금엉금 기어가기 시작했다. 라디오에서는 에어비앤비, 우버 등의 기업뉴스를 보도하고 있었다. 이를 들으며 나는 유휴자원이라는 것을 곰곰이 생각해 보게 되었다. 주위에 널려있는데 아직 아무도 보지 못하고 있는 유휴자원은 또 없을까? 에어비앤비는 남는 방이고, 우버가 노는 차라면, 또 놀거나 남는 것이 어디 없을까?


당시 나는 주말마다 북한산을 등산하곤 하였는데, 북한산 인근의 공터에 하루 6,000원을 받는 주차장을 이용하고 있었다. 그 공터는 평소에는 어떤 회사의 일반 야적장겸 주차장으로 사용하고 있었는데 주말에는 일반 등반객에게 주차장으로 제공되고 있었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지금 도착하게될 우리 회사 빌딩의 지하 주차장이 주말에 텅 비어 있다는 사실과 출근 후 텅 비게 되는 우리 아파트의 주차장의 모습이 눈앞에 떠올랐다.


나는 거북이 걸음을 하는 도로의 갓길에 차를 세우고 휴대폰으로 인터넷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공유주차장 사업이 현재 운영되고 있는지가 너무도 궁금하였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몇 개의 업체가 벌써 사업을 시작하고 있었다. 실망한 나는 다시 88도로에 접어들어 회사로 출근하여서는 새로운 것에 도전하려던 잠시간의 일탈을 떨쳐버리고 일상의 업무로 돌아갔다.


유휴자원은 어떻게 발견되는 것일까? 유휴자원은 시대적 변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서구사회에서 ‘방’의 유휴자원화는 핵가족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을 수 있다. 집은 큰 데, 아이들은 다 도시로 나가버린 것이다. 물론 여행의 일상화도 한몫했을 것이다. 그리고 우체통과 전화박스가 시대의 유물이 될 줄은 정말 상상도 못했다. 우체통은 사회적 기업 등에서 헌옷 수거함으로 활용하곤 하더니, 요즘 아파트에서 의류 재활용 수거함의 디자인으로 재탄생했다. 그 많던 전화박스도 대부분 철거되었지만, 일부는 남아 119전화라든지, 무선통신기지국으로 활용되고 있다.


이렇게 관찰해 보면, 유휴자원은 기술과 문화의 변천에 따라서 양산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다만 그동안 눈에 익은 모습 때문에 이미 원래의 필요가 없어진 유휴자원들이 쉽게 눈에 띄지 않을 따름인 것이다. 그러한 유휴자원에는 남아도는 '고객의 손'도 있다.


스타벅스 매장이나 맥도널드에서 우리는 스스로 서빙을 하고 있는 자신들을 보고 놀라곤 한다. 나의 아내는 집에서 손가락 하나도 꼼짝하지 않던 내가 그렇게 열심히 그릇을 치우는 것에 대해 항상 불만이 많다. 원래는 인원이 부족한 시간에 셀프서비스self service를 하면 가격할인을 해주는 것으로 시작하였지만 이제는 대세가 되었다. 여기에는 당면한 인건비 부담뿐만 아니라 서비스를 제공하는 노동자의 인격에 대한 변화된 가치관이 포함되어 함께 일어난 변화라고 할 수 있다. 에어비앤비에서 출발한 공유경제가 끝도 없이 전개되고 있듯이, 1917년 미국특허청이 클레런스 손더스Clarence Saunders의 셀프서빙스토어에 대한 특허 수여로부터 시작된 셀프서비스도 끝도 없이 확장되고 있다. ATM(Automatic Teller Machine), 공항 체크인 키오스크, 뷔페, 셀프주유소 등 무한히 적용영역을 넓혀 나간다. 그렇다면 역사적으로 가장 세기적인 유휴자원은 무엇이었을까?


한漢나라의 다섯 번째 황제인 한무제漢武帝는 즉위부터 한고조漢高祖 유방劉邦의 건국이래 매년 한나라의 변방을 유린해온 흉노匈奴에게 이대로 당하고 있을 수만은 없다고 결심한다. 그러던 차에 흉노가 월지月氏/月支를 격파해 멀리 쫓아내었는데 그것도 모자라 그 왕의 두개골을 술잔으로 만들어 사용한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만약 월지가 흉노에 대한 원한이 극심하다면 한과 월지가 힘을 합쳐 함께 흉노를 협공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멀리 흉노의 서쪽 너머에 있는 월지까지 갈 사신을 모집하였는데 이때 치열한 경쟁심사를 거쳐 선발된 이가 바로 장건張騫이다. 그러나 장건은 월지까지 가는 도중에 먼저 흉노에게 발각되어 흉노땅에서 10여 년간 흉노 선우單于의 신하가 되어 지내야 했으며, 이후 탈주하여 결국 월지에 이르렀으나, 월지왕은 강성하고 흉폭한 흉노와 더는 싸울 의지가 남아 있지 않았다. 원한이 큰 월지가 주저하는 마당에 장건이 1년여간 머문 대하大夏를 포함해 서역西域의 다른 국가들 또한 멀리 있는 한나라에 의지하여 가까이 있는 흉노와 맞설 생각은 전혀 없었다. 목적을 이루지 못해 실망을 안고 돌아오는 귀국길에서조차 장건은 재차 흉노에게 붙잡혀 1년여간을 억류되어 지냈지만 마침 흉노에서 선우의 승계문제로 혼란한 틈을 타 흉노에서의 1차 억류시 결혼한 아내와 그의 흉노인 길잡이 감보甘父를 데리고 가까스로 탈출하는데 성공하였다. 사신으로 출발하여 다시 장안長安으로 돌아오기까지 장장 13년이 걸린 대장정이었다.


장건은 이후 서역과의 교통로를 확보하기 위해 두 차례 더 탐험의 길에 올랐다. 제3차 여행길에서는 정사正使로서 오손烏孫에 도착하여 부사副使들을 대원大宛, 강거康居, 월지, 대하, 안식安息(페르시아), 신독身毒(인도), 우전于闐 그리고 인근 여러나라에 사신으로 보낸다. 그리고 본인은 오손의 사신과 함께 무제가 그리도 원하던 서역의 명마 수십 필과 함께 돌아왔다. 이 마지막 여행을 마치고 1년 뒤 장건은 죽었다. 그러나 그후 그가 파견한 부사들이 대부분 해당국의 사신들과 함께 돌아오니 이로써 실크로드가 열리게 되었다. 새로 길을 뚫어낸다는 뜻으로 중국 역사책에서는 이를 '장건의 착공鑿空'이라고 한다.


월지는 한나라에게 유휴자원이 아니었을까? 그리고 그러한 아이디어는 서구의 대항해시대에도 어김없이 재현되었다. 그것은 프레스터 존(Prester John, Presbyter Johannes사제왕 요한)으로 알려진 가상의 왕국에 대한 전설이었다. 이 전설은 12세기에서 17세기까지 유럽에서 성행하였다. 전설에 따르면 프레스터 존은 세 명의 동방박사 중 한 명의 후손이며 그의 풍요로운 왕국은 청춘의 샘과 같은 온갖 진기한 것들로 가득차 있고 그 왕국 끝에는 에덴동산으로 이어지는 길이 있다고 한다. 그런데 한때 기독교 왕국일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품게 했던 초원의 지배자 몽골이 발흥하고 또 쇠락하면서 동방에선 기독교 국가를 더이상 찾을 수 없게 되자 이제는 그 전설의 중심지가 아프리카로 이동하였다. 당시 유럽은 십자군 전쟁의 실패, 오스만 제국에 의한 콘스탄티노플의 함락 등으로 이슬람 세력으로부터 군사적, 정치적으로 위협을 받는 처지였기 때문에 이슬람 세력의 저 너머에 존재한다는 기독교 왕국은 유럽문명을 위기에서 구출해 줄 구원자에 대한 염원이었다.


이러한 열망이 포르투갈의 아프리카 대륙 탐험이었고 또 희망봉을 발견하게 한 원동력이 되었다. 바스코 다 가마는 프레스터 존을 향한 항해왕 엔리케 왕자(Infante Dom Henrique, o Navegador)의 서신을 들고 희망봉을 돌아 결국 인도 항로를 개척하였다. 그는 프레스터 존을 만나지는 못하였으나, 향료를 가득 싣고 돌아와서 대항해시대를 열었다. 한나라의 월지와 천리마가 포르투갈에게는 인도와 향료가 되었다.


어떻게 보면 함께 싸울 동지에 대한 열망은 그 철저한 열망으로 인하여 부가적 과실(천리마, 향료)을 향유할 수 있게 하였다. 그리고 그 새로운 과실은 나아가 인류 역사에 길이 남을 영원의 교통로(실크로드, 대항해길)마저 열어 젖혔다. 절체절명의 국가적 위기에 맞서 고려의 명신 서희徐熙는 협상 대상으로 어느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던 여진女眞을 협상 테이블에 올린다. 이는 신의 한수가 되어 거란契丹은 퇴각하고 덤으로 강동6주江東六州까지 개척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고려는 강감찬姜邯贊의 귀주대첩龜州大捷을 준비할 시간을 벌었다.


유휴자원, 그것은 보이지 않는 자에게는 우수마발牛溲馬勃에 불과할 것이나, 그것을 볼 수 있는 자에게는 맹상군孟嘗君의 계명구도鷄鳴狗盜가 된다. 그리고 그것은 오늘날 공유경제共有經濟, 셀프서비스로 또 새로운 세계를 목하 개척하는 중이다. 더 이상 새로운 유휴자원이 어디 있는가? 하고 물을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것은 한도 끝도 없는 무한의 심연에서부터 생성되어 불현듯 우리의 고정관념을 뚫고 나타난다.


Note:

[참고자료]

- 셀프서비스: Wikipedia, self service

- 장건: 김영종, 실크로드, 길 위의 역사와 사람들, 사계절출판사, 2009년 2판.

- 프레스터 존: 위키백과, 사제왕 요한; 나무위키, 프레스터 존


*실크로드(silk road)라는 용어는 독일 지리학자 페르디난트 폰 리히트호펜(Ferdinand von Richthofen)이 1877년 출판한 중국이라는 책에서 처음 사용했다. 이는 한나라 시대에 중앙아시아와 인도 사이에 비단 무역을 위주로 한 교통노선을 일컫는다. 이후 연구 결과, 이 길이 서쪽 지중해 서안과 소아시아까지 연결되어 있음이 밝혀졌다. 이 무역로는 장건의 2차 서역 방문 후에 뚫렸고, BC 60년 경에 비로소 원활하게 왕래가 이뤄졌다.

장건은 실크로드의 개척자로 통한다. 7세기에 돈황 막고굴(莫高窟) 제323굴 북벽에 ‘장건출사서역도’(張騫出使西域圖)라는 벽화가 그려졌다. 장건이 죽은지 8백년이 지난 뒤에 벽화가 그려질 정도로 실크로드 지역에 그의 명성은 드높았다.

(아틀라스뉴스atlasnews.co.kr, 2020. 3. 26.)


*고대 초원의 '헤드헌터'는 적의 머리를 사냥하는 용맹스러운 전사를 뜻한다. 헤로도투스는 스키타이인의 헤드헌팅 풍습에 대해 비교적 자세히 묘사했다. 그에 따르면 스키타이 전사는 적을 죽이지 못하면 대접을 못 받는다고 기록돼 있다... 아주 철천지 원수를 무찔렀을 경우 그 살가죽으로 말안장을 삼거나 화살통을 만들었다고도 한다. 이런 풍습은 흑해 연안 스키타이뿐 아니라 유라시아 전역에 널리 퍼졌다. 실제로 파지릭고분에서 발굴된 한 미이라의 머리 부분은 벗겨지고, 대신에 소가죽을 꿰맸다... 그밖에도 사람의 어깨 부분 살갗을 이용한 화살통도 발견되어 헤로도투스의 기록이 정확했음을 입증했다...

스키타이인들은 아주 특별한 적을 죽인 경우 이마 윗부분의 머리뼈를 잘라서 술잔을 만들었다. 부자인 경우는 소가죽으로 덧대고 금도금도 하였다고 한다. 흉노도 현재의 알타이 지역에 거주하던 월지국의 왕을 죽이고 그 두개골로 술잔을 만들었다는 기록이 있다. 한편 이 풍습은 북중국의 흉노를 거쳐서 중국에도 전해졌다. 사기 '자객열전'에 등장하는 '예양豫讓'이라는 사람은 '사나이는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죽는다'(士爲知己者死)'는 고사를 남긴 것으로 유명하다.

예양이 목숨을 걸고 복수하려고 했던 사람은 진晉나라의 조양자趙襄子였다. 조양자는 예양의 주군인 지백智伯을 죽인 후에 그의 두개골에 옻칠을 하여 요강의 용도로 사용했다...

(국제신문, 2010. 5. 24., 강인욱, 초원의 헤드헌터들)


셀프서비스와 같이, 민주주의의 선거와 시장의 자원배분도 자발적인 유휴자원을 활용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