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필
어떤 것들은 비본질적인 것이어서 용도가 끝나면 저절로 폐기된다.
트리즈의 40가지 발명원리 중 34번 폐기 및 재생(Rejecting and Regenerating Parts)은 이러한 원리의 실행과 관련된 아이디어들이다.
먼저 철망으로 엮은 위성 안테나를 궤도에 올릴 때에는 안테나의 안쪽에 신축성 필름으로 만든 풍선을 넣고 압축 공기를 불어넣으면 안테나가 풍선을 덮어싼 형태가 된다. 이 안테나 공이 하늘로 높이 솟구쳐 우주공간에 이르면.우주공간의 진공상태와 태양광선에 의해 필름풍선은 찢어져버리고, 안테나는 제 모양을 다시 찾아 라디오파를 발생시키게 된다. 안테나를 우주공간까지 운반한 풍선이 그 소명을 다한 연후에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다.
이보다 더 익숙하게 우리가 자주 보는 것으로는 위성 로켓 발사장면이 있다. 로켓이 대기권을 벗어나 우주공간에 진입하기 위해서는 지구의 중력을 이겨내야 한다. 이때 로켓에 강력한 추진력을 제공하는 다단의 연료통들은 연료가 소진되고나면 자동으로 분리되어 대기권에서 연소되는데 미처 다 연소되지 못한 일부 파편이 바다에 떨어지기도 한다.
예전에는 외과 수술 시에 장기를 봉합했던 실을 다시 회수하기 위해 다시 한 번 개복을 하여야 했었다. 최근에는 묶어놓았던 실이 저절로 삭아버리게 되어 다시 복부를 개복하지 않아도 된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스웨덴의 한 음료회사는 소비자가 음료를 마시고 난 뒤 빈 병의 처리에 곤란을 겪지 않도록 환경적으로 안전한 생분해성 재료로 음료수 병을 만들었다. 이밖에도 극히 작은 용수철을 만들 때에는 철사를 신축성 재료의 심(心) 위에 감고 나중에 용제로 그 재료를 녹여 제거하는 방법을 쓴다고 한다.
이처럼 기능을 다하면 스스로 또는 저절로 사라지게 하는 방법은 사물세계에서는 난제를 해결하는 혁신적 기술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러나 인간세계에서 이처럼 용도가 다했다고 해서 폐기하는 것은 매우 비도덕적으로 보인다. 예선에서 활약했던 선수를 결선에서 제외하는 감독의 용병술은 그 중 가장 사소한 고뇌일 뿐이다. 비록 예능프로그램에서이지만 20년도 더 지나 이젠 유명 감독이 된 최순호 선수가 차범근 감독에게 프랑스 월드컵 본선 첫 경기에서 왜 자신을 선발에 넣지 않았느냐고 따져 묻는 장면이 연출되기도 한다.
전시에 적에게로 향했던 무력은 평시에 거꾸로 나에게로 향할 수 있다. 천하를 제패한 유방에게 한신은 가장 큰 걱정거리이었다. 그는 몇몇 영웅들처럼 자연스럽게 사라져 주지 않았다. 권력의 분점이 허락되지 않았던 전제 국가에서 잠재적 대항마는 언제나 위협적이다. 왕정 국가에서 최고 권력은 부자 간에도 공유할 수 없던 것이었다.
결국 이것은 사회적 과제로서 역사에 그 해결책을 요구한다. 고대 아테네에서도 이는 매우 현실적인 문제이었다. 다수 대중의 지지가 권력의 핵심이 되는 민주주의에서 강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지도자는 또한 그의 카리스마를 맹종하는 무리로 인하여 언제든지 민주주의를 위태롭게 할 수 있다. 아테네는 도편추방제도를 고안해내었다. 독재의 가능성이 있는 유망한 인사들은 국외로 10년간 추방되었고 그로써 그의 세력은 소멸되었다.
고대 로마에서 통령을 포함한 주요 관직에 복수가 임명되고 또 그 임기를 1년으로 한정한 것은 비슷한 우려를 반영한 것이다. 그 유명한 카이사르의 죽음에서도 브루투스의 명분은 공화정이었다. 비록 카이사르가 전쟁 영웅이라고 할지라도 국방에서 발휘된 그의 강력한 지도력이 내치에서까지 그대로 복제되는 것을 원로원은 결코 원하지 않았던 것이다.
인문학적으로는 이렇게 해결이 쉽지 않은 용도와 상황 간의 일시적 결합과 그 제거를 트리즈에서는 기술적 모순 및 물리적 모순으로 표현한다.
비행기는 이착륙 시에는 바퀴가 필요하지만 비행 중에는 바퀴가 (공기저항만 일으키므로) 필요 없다. 따라서 있어야 하고 없어야 하는 것이 바퀴이며, 이러한 상황과 같이 하나의 변수(바퀴)가 서로 다른 값(유/무)을 동시에 가져야 하는 상황을 트리즈에서는 물리적 모순이라고 한다. 이러한 사례는 기술적인 딜레마로 많이 제시된다. 밥솥 온도의 딜레마, 면도날 힘의 딜레마, 북극곰 털색의 딜레마 등이 유명하다. 물리적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서 트리즈는 몇 가지 분리기법을 사용한다. 그것에는 시간의 분리, 공간의 분리, 전체와 부분의 분리, 조건의 분리 등이 있다.
이와 같은 기술적 문제가 인간사회에서도 자주 일어난다. 군사력은 전시에는 반드시 필요하지만, 평시에는 필요 없다고 할 수 있다. 평시에도 무력이 (질서유지를 위해) 어느 정도 필요하다고 주장할지라도 전시와 같이 강한 공격력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은 경제적으로도 수용되기 어렵다. 이러한 딜레마를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들이 역사적으로 제도적으로 고안되어 왔다. 그것들은 봉건제, 둔병제, 용병, 친위군, 직업군인, 국민 개병제, 예비군, 동맹 등으로 표현되고 있다.
토끼를 잡고나면 개를 삶게 되는 토사구팽은 물리적 모순의 인문학적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한때는 필요했으나 이제는 불필요해서 저절로 사라져주면 좋은 인물들이나 힘(force)에 대한 이야기이다. 인간은 1회용 종이컵처럼 그냥 사라지게 할 수 없는 천부인권과 명예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거사 후 전공을 다투는 인물들의 실권을 움켜 쥔 최고 권력을 향한 도상에서 인간의 내면은 주관과 객관의 갈등 속에서 삶과 죽음의 극한을 요동친다.
Note:
트리즈 관련 사례는 [그림으로 보는 발명문제 해결이론 40가지 원리]를 일부 참조.
감상:
예전에는 복날에 개장국을 많이 먹었는데, 요즈음은 그런 풍속이 많이 없어진 듯합니다. 마침 말복입니다. 올해의 더위는 코로나와 함께 정말 대단합니다. 아이디어가 고갈되는 나날입니다.
(2021. 8.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