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 후 16일째) 그럴싸했던 계획은 역시나

새 신을 신고

by 미정
2026년도 국가공무원 5급 민간경력자 일괄채용시험 시행계획을 다음과 같이 공고합니다.
몇 달 전에 사두었던 새 러닝화를 신고 달렸더니 물집이 생겼다.

희망퇴직 통보를 받고 나서 금세 평온을 유지할 수 있었던 비밀이 있었다. 퇴직 후 첫 일주일 동안 앞으로의 삶을 설계하며 몇 가지 구체적인 목표를 세웠다. 그중 하나가 브런치 작가였다. 누군가는 원치 않는 퇴직을 맞이한 전직 직장인의 일상을 궁금해할 것이라는 생각 했고, 시시각각 변하는 내 안의 생각들을 기록하며 정돈할 필요도 있었다.


진짜 기가 막힌 발견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5급 민경채'라 불리는 '국가공무원 5급 민간경력자 일괄채용 시험'이었다. 경력은 이미 충분히 갖췄고, PSAT(공직적격성평가)와 영어, 한국사는 준비만 하면 좋은 점수도 충분히 가능하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오늘, 예상치 못한 변수가 발생했다. 올해 선발 기관 명단에 내가 목표로 했던 방송통신위원회가 없었다. 내년을 기약하는 것 외엔 방법이 없다.


다소 급하게 세운 방향이었으나 꽤 근사한 계획이라 믿었다. 대기업 임원으로 퇴직해 5급 공무원이 된다는 것, 그간의 전문 지식을 국가 정책 결정에 활용하는 삶은 충분히 멋져 보였다. 회사에서 못다 채운 정년을 보장받는 실리도 챙길 수 있었다. 무엇보다 '멋진 부활'을 증명해 보이고 싶었다.


그러나 세상일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미리 사둔 한국사 교재는 당분간 볼 일이 없게 됐고, 점수를 빨리 따두려 신청한 다음주 토익 시험 일정만 덩그러니 남았다. 잠시 편안했던 마음이 다시금 요동친다. 어떤 새 신을 신어야 할지, 나는 다시 답을 찾아야 한다.


[오늘의 책]

대니얼 사이먼스, <속임수의 심리학>


누구나 속는다. 세상은 우리를 속이려는 것들로 가득하다. 모든 속임수에는 공통점이 있다. 인간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그 심리의 허점을 정확히 파고든다는 점이다. 현직에 있었다면 이 책의 지식을 고객 설득이나 마케팅, 혹은 경쟁사를 이길 전략을 짜는 데 활용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이 지혜를 온전히 나의 삶을 지키는 데 써야 한다. 당장은 '투자'에 적용해 볼 생각이다. 쏟아지는 노이즈 속에서 진짜 정보를 가려내는 법, 확신을 주는 투자 기회일수록 한 번 더 의심하고 검증하는 태도. 속지 않기 위한 공부는 결국 나 자신을 지키는 공부이기도 하다.



신뢰하라, 하지만 검증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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