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불구하고 남긴 코트

사진으로 찍고 비우라는 규칙을 거부한다

by 심플맘

며칠 째 째려만 보고 있는 코트가 있다.

보라색 보풀이 많이 일어난 코트다.

두 번의 대대적 옷 비움과 매일 비우기 할 때도 쭈~욱

째려만 보다 다시 옷장 속에 넣었다.

이 옷은 엄마가 10년도 전어 백화점 매장에서 60만 원도 더 넘게 주고 사준 옷이다.


내 인생에 최초로 백화점 매장에서 산 고가의 코트다.

그 옛날 돈의 가치를 환산하면 지금 100만 원도 더 준 것이다.

내가 이 옷을 못 비우는 것은 그때의 엄마의 마음 때문이다.


이 옷을 산 날은 엄마가 생일 선물로 코트를 사준다고 하여 백화점에 갔었다. 지금은 아예 백화점도 안 가지만 그때는 백화점에 가도 행사 매대에서만 옷을 고르던 때였다.

그런데 아쉽게도 나에게 맞는 옷이 없었다. 마음에 드는 옷은 족족 작았다. 차마 77 혹은 L사이즈를 달라고 말하지 못했다.

늘 통통한 게 콤플렉스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온 백화점을 돌다 고가의 브랜드 매장에서 이 코트를 발견했다. 크게 나온 품이 나에게 딱 맞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몸에 맞았다. 워낙 크게 나온 옷이었다.

늘 돈을 아껴 쓰시던 엄마가 딸에게 이쁜 옷을 입히고 싶어 거금을 쓰신 것이다.

나는 코트는 썩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사이즈가 맞다는 이유로 사고 싶었었다.


그런데 돈을 벌고 가계를 꾸려보니 월급쟁이 집안에서 한 번에 계획에 없던 돈을 쓴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이제 이해했다. 한 달 가정경제에 빨간 불이 켜지는 일이다. 그 돈을 다른 곳에 쓸 돈을 아끼거나 다음 달로 미뤄야 하는 중대한 일인 것이었다. 그런 수고스러움을 뒤로하고 사 준 옷이었다.

딸에게 맞는 옷이 없어 속상하고 자꾸 움츠러 드는 딸이 안쓰러워서 말이다.

그렇게 나에게로 온 지 10년도 더 된 코트다.

다른 코트들을 주로 입는다고 이 옷을 비워야 하나 째려보았다. 다른 옷처럼 사진을 찍거나 그 옷을 입었던 과거의 사진을 찾아보는 것으로 안녕을 고할까 고민했다.

그런데 안 되겠다. 그때 엄마의 마음을 나는 비울 수가 없다. 이제 나이를 먹어 입기에는 조금 유치해 버린 이 코트를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옷 장 한편에 자리를 마련해주기로 했다.

비우다 보면 비우는 철칙대로 되지 않을 때가 있다. 그런데 마음이 아직 비울 수 없는데 억지로 비우면 역효과가 날 때도 있다. 그래서 나는 비우는데 많은 고민이 드는 물건을 그저 두기로 했다. 대신 다른 것들을 비워서 그 물건의 공간을 만들기로 했다. 앞으로 내가 50이 되어서도 60이 되어서도 이 코트를 만지며 엄마 생각을 할 것이다.


이 옷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중하게 남기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