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30대, 너의 유아기
내가 나를 몰랐던 그때!
어리석게도 나는 이사만 오면 나의 문제들이 다 해결될 줄 알았다.
다른 엄마들은 아이를 주말에만 본다고 밤마다 울고 달려가지 않는다는 사실을 간과했다.
내가 유별나다는 사실을 몰랐던 것이었다.
MKYU학장님이신 김미경 강사님의 유튜브를 보다가 무릎을 탁 쳤다.
"엄마들은 울게 되어있어요. 직장 다니면서 울든지 집에서 아이를 보면서 울든지 반드시 울게 되어있다. 어디서 덜 우는지 알아야해요." 이런 류의 영상이었다.
결국 나를 알고 내가 어디에 있는 게 더 맞는지를 알아야 했다. 어디서 덜 우는지를 어디에 있어야 감정적으로 덜 힘든지 말이다.
안타깝게도 나는 나를 몰랐다. 그냥 아이를 퇴근 후, 볼 수만 있으면 다 괜찮을 줄 알았다.
나는 일을 사랑하는 커리어우먼이니까!
나는 내가 그런 사람인 줄 알았고 주변에서 다들 너는 직장 다니는 게 어울린다고 해서 그런 줄 알았다.
지금 육아휴직을 해보니 회사가 1도 아쉽지 않은 거 보니 아닌 게 확실한데 말이다.
자! 나는 아이를 매일 볼 수 있게 되었다. 나의 감정이 해결되었을까?
그거 밤마다 아이가 보고 싶어 뛰쳐나가는 일만 사라진 것이다.
내가 없는 아이의 시간이 나는 견딜 수가 없었다.
회사에서 점심시간에 산책하다 아장아장 걷는 아이와
사랑스럽게 혹은 염려스럽게 보는 엄마를 보는 것만으로 눈물이 눈에 맺혔다.
지나가다 카페에 앉아서 아이와 이야기하는 모자 혹은 모녀만 봐도 내가 그렇게 할 수 없음에 한탄을 했었다.
회사에서 중직을 맞고 커리어를 쌓아가며 명성을 얻고 월급을 아주 많이 받았으면 거기에 만족하고 아이 크는 것을 볼 수 없는 것에 안타까움을 잊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유난히 아이 크는 것을 못 보는 것에 안타까움을 느끼는 것은 회사 내에서 그냥 볼트와 너트 같은 존재였고 연봉은 몇 년째 동결인지 손가락을 접으로 숫자를 세고 있어서 있을 수도 있다.
돌이켜보면 내가 모성애가 유난히 컸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그때의 나는 울고 안타까워하고
무수히 아이의 옆으로 가고 싶었지만 내 통장을 스쳐가는 마약 같은 존재인 월급을 놓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바보 같이 나의 30대를 아이의 유아기를 회사를 그만 다닐지 계속 다닐지 어떤 결정도 못하고
고민만 하다 7년의 세월을 보냈다.
이 때는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아이를 데리고 평일에 아이와 외출하고 싶었던 욕구를 한풀이하듯이 주말이면 어디든 나가서 아이와 시간을 보냈다.
평일에 회사와 육아를 병행하느라 힘든 몸을 이끌고 주말에 초췌하게 아이를 데리고 그렇게 우리 부부는 다녔었다. 아이는 주말만 지나면 감기를 얻었고 친정부모님은 그런 아이를 데리고 병원 다니느라 고생하셨다.
평일에 건강하게 키워놓으면 주말 돼서 병 걸려 온다고 항상 나에게 주말에 편안하게 집에서 아이와 놀라고 하는 당부를 하셨다. 그러나 나는 내 안의 답답함이 해소되지 않아 아이를 데리고 밖으로 돌았다.
공간적 답답함이 아니라 내면의 해결되지 못한 문제임에도 여전히 원인을 모른 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