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에서 나는 평판이 좋았다. 좋을 수밖에...
"누가 위로 와도 다 맞출 아이..", "무슨 일을 시켜도 군말 없이 하는 아이.."
"원래 일 잘하면 일이 모여.."라는 게 내가 지금 회사를 다닌 8년 동안 들은 평판이다.
한 마디로 군말 없이 상사에 잘 맞춰서 시키는 대로 일 하는 직원이었다.
그건 원래 나의 성격에도 잘 맞았다. 불만을 표출하는 스타일도 아니었고
어릴 때부터 발달된 눈치로 상대방이 어려운 부탁도 전에 내가 한다고 해대는
정말 일 시키기 편안 직원이었으니까.
혹자는 나에게 사회생활 잘한다고 평하기도 했고 회사가 끝까지 데려갈 직원이라고 했다.
칭찬인 줄 알았던 때가 있었다. 그런데 칭찬이 아니다. 그냥 부려먹기 좋다는 의미일 뿐이었다.
그러다 나는 내가 '돈'때문에 회사를 다녔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되었고
그 사이 나의 직장 상사는 세 번이나 바뀌고 4번째 상사를 맞이 하였다.
4번째 나의 직장 상사 덕분에 나는 '돈'때문에 이렇게 살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너 회사에 이용당하는 거야. 그렇게 아낀다면서 연봉이나 직급도 제대로 대우 못 받잖아."
"그 대학 나와서 왜 이러고 있어?"라는 말들을 나를 아낀다며 서슴없이 내뱉었고
매일 타 부서 부서장이나 직원들 욕을 해대는 직장 상사를 매일 본다는 것이 이렇게 힘들 줄이야.
심지어 나에게 잘해 주는 것이 맛있는 것을 사주는 것이라며 새벽까지 술을 마셨다,
나는 술을 마시지 않고 상사의 술주정을 들어야 했었다.
'이 시간에 우리 아들 한 번 더 보는 게 저에게 배려입니다'라는 말은 목구멍에서 나오지 못했다.
정말 괴로운 나날의 연속이었고 나는 이대로 살 수 없다고 결심했다.
처음에는 내가 어떻게 해서 저 상사를 내쫓아볼까 고민했었다.
우습게도 나는 그럴 만한 위인이 안되었다.
두 번째로는 내가 돈 공부, 자본주의 공부를 해서 경제적 자유를 얻어 이놈의 회사를 때려치워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래 '당신' 덕분에 나는 자본주의에 눈을 떴다. 그리고 얼마간의 공부를 하고 나서 깨달았다.
'단 기간'에 이룰 수 없음을 말이다. 일 년 안에 승부를 볼 수 없다는 현실을 마주하였다.
죽기보다 회사 가기가 더 괴로웠다. 자본주의에 눈을 뜨고 경제적 자유를 누리겠다는 꿈을 버린 것은 아니지만
지금 당장의 해결책은 되지 못했다.
그런데 자본주의 공부를 하면서 종잣돈 마련에 눈을 뜨고 그러려면 돈을 아껴 쓰고 모아야 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돈을 아껴 쓰다'라는 것에서 나는 희망을 보았다.
내가 육아 휴직을 할 수 있다는 희망은 바로 '생활비 절감'에서 온다.
결국은 부장의 구박으로 시작된 나의 고민은 경제적 자유를 얻기로 결심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육아휴직의 가능성도 보게 됩니다.
한마디로 Thank you! 부장님!
다른 방식으로 살게끔 결심하게 해주어서 감사합니다.다신 보지 말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