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육아휴직 동지여!
나는 손이 참 고운 사람이다. 고생하나도 안 한 거 같은 손을 가지고 살고 있다.
물론 세월이 흘렀고 거칠해지긴 했지만 길고 흰 손가락을 보며 사람들은
"참 일 못하는 손"이라고 명명했다.
나는 그 들의 기대에 부흥하기 위해 집안일을 못했다.
정말 이렇게 못하나 싶을 정도로 내가 한 설거지를 다시 돌아보기 민망했다.
다행히 신랑도 못하니 서로에게 부끄러움은 없었다. 설거지한 그릇에 고춧가루가 묻어있으면
서로 '나인가?'고민하게 되지 누구 하나 '당신이지?'라고 타박하지 못한다.
진작에 게으르고 집안일 못하는 우리는 기계에게 집안일을 맡겼다.
부부 사이가 좋은 건 그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식기세척기를 사지는 않았다.
일단 집에서 밥을 챙겨 먹는 횟수도 적었고 맞벌이일 때는 설거지를 신랑이 많이 해서 필요성을 못 느꼈다.
그런데 육아휴직을 하기로 하고 나니 '식기세척기'가 간절해졌다.
삼시세끼 먹고 나서 뒤처리 할 것만 생각해도 괴로웠다.
이사 가는 집에 TV 수납장 하나만 샀다. 도배도 거실만 했다.
꼭 필요한 거 아니면 사지 않고 하지 않았다.
단지 식기세척기만 있으면 되었다.
이사 준비를 시작하면서 내가 식기세척기를 사노라 말하고 다니니
감사하게도 주변 친척분들이 식기세척기를 사라며 돈을 보태주셨다.
그러나 나의 식기세척기는 신랑 회사 사장님의 통 큰 선물로 받게 되었다.
냉장고를 바꾸어 주겠다는 제안을 마다했다.
냉장고는 아직 쓸만한데 굳이 새 거로 바꾸고 싶지 않다고 거절했다.
대신 나에겐 오직 '식기세척기'만 있으면 되노라 말했다.
그리고 이사 온 지 한 달이 지나고 식기세척기를 만났다.
그렇게 만나고 싶던 식기세척기가 오니 육아휴직이 더욱 만족스러워졌다.
오! 나의 식기세척기.
오! 나의 육아휴직 동지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