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친구 엄마와 교류하지 않겠다는 신념
그것 또한 편견이었음을
아이가 입학하기 전, 육아휴직을 하기로 하면서 여러 사람들에게 다양한 충고를 들었습니다.
경험해 보지 못한 초등 입학 이었기에 충고를 귀담아 들었습니다.
걔 중에는 친구 엄마를 잘 사귀라는 조언, 반 모임에 관한 조언들도 있었습니다.
부질없다는 사람도 그래도 아이를 위해서 해야 한다는 상반적인 조언들이 많았습니다.
다들 경험치에 따라 조언의 내용이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아이의 친구 엄마를 사귀는 것에 대해 확신과 같은 신념이 있었습니다.
해가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지는 것과 같은 의심도 할 수 없는 진리 같은 신념이었지요.
"아이의 관계는 아이가 알아서 맺는 것이고 나는 그럴 여유가 없어."
제가 하고 싶은 것을 하기 위해서 아이 친구 엄마와 교류할 시간이 없었고
새로운 사람을 사귀는 에너지를 쓰기에는 벅찰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였습니다.
또한 친구 엄마, 반모임에 대해서는 편견이 있었음을 고백합니다.
학원을 어디 보내는지 염탐하고 가진 옷 중에 가진 가방 중에 가장 좋은 것을 하는
가식적인 만남이라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다행히인지 불행인지 '코로나' 덕분에 반모임은 상상도 못 하고
이제 아이가 스스로 놀이터에서 친구를 찾아 놀기만 하면 됩니다!
그런데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더군요. 특히 막 이사 온 1학년에게는 말이죠.
아이들이 같은 반이라고 이야기하면 그 아이 엄마와 눈인사를 하고 노는 것을 지켜보다
대화를 하게 되었습니다.
하루에 2~3시간씩 노는 아이를 두고 멀뚱히 서있기만은 어려워 대화를 하고
각자 육아 고민을 터놓고 이야기하다 보니 경험해보지도 않고 편견으로
"나는 아이 친구 엄마를 사귀지 않겠다!"란 선언 따위를 한 것이 얼마나 어리석었나 싶습니다.
사실 오후 2시만 되면 학원으로 사라지는 아이들을 빼고 남는 아이는 우리 집 아이와 그 집 아이가 전부였습니다.
외벌이라 고정비를 줄이기 위해 학원을 보내지 않겠다는 신념 덕분에 저희 집 아이는 일주일에 딱 하루
아이가 배우고 싶어 하는 레고 코딩 학원만 다니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다른 날들은 그저 신나게 뛰어놀면 그뿐입니다.
그런데 혼자 뛰어 놀기는 어렵지요. 친구가 필요합니다.
2시가 넘으면 아들과 그 집 아들만이 남아있다 보니 자연스럽게 친해졌습니다.
진솔하고 타인의 장점을 크게 볼 줄 알고 따뜻한 말투의 그분을 보니
제가 '아이 학교 친구 엄마'에 대해 편견을 가졌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상상 속의 아이 학교 친구 엄마는 아이 친구가 몇 평대에 사는지 아빠는 뭐하는지 공부는 잘하는지
깐깐이 따지는 그런 사람으로 규정해 놓았음을 말이죠.
부끄럽고 부끄러웠습니다.
요새 저는 '아이 학교 친구 엄마'이신 그분께 배우는 게 많습니다.
타인을 존중하는 진심을 배웁니다. 그리고 같잖은 편견을 가졌던 저를 반성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