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이걸 몰라?" 저는 계속해서 아이에게 화를 냅니다. 아이는 울상이 되어 엄마를 바라봅니다. 아이는 올해 3학년이 됩니다. 3학년 1학기 수학문제집을 풉니다. 문제가 조금만 길어지면 바로 손을 놓습니다. "모르겠어요." 저는 당황했습니다. 작년 가을에 그만둔 태블릿 학습지 상담사가 떠오릅니다.
"어머니~우리 아이는 어쩜 이렇게 잘해요?"로 시작한 아이 칭찬에 기분이 좋았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매일 할 수 있느냐 신기하다 칭찬합니다. 아이가 학습 학원을 다니지 않고 오직 태블릿 학습지만 하니 당연하다 응수했습니다. 하지만 속으로는 아이를 대견함에 어깨 뽕이 힘껏 올랐습니다. 심지어 푸는 문제도 대부분 맞다고 칭찬합니다. 아이가 잘한다고 내심 생각했습니다.
중간에 그만둘까 한 저에게 "어머니 지금 수학 선행하고 있는데 여기서 그만두시면 아깝죠." 2학년이 3, 4학년 선행을 하는 중이라고 합니다.
선행을 시킬 생각 없었던 저는 당황합니다. 하지만 그만 두지 못합니다. 이왕 하던 거 끝까지 하는 게 좋을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수학은 선행해야 한다고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수학의 정석을 고입 전에 몇 바퀴 돌려야 한다는 말도 말입니다. 속으로는 내가 어떤 노력도 하지 않았는데 아이가 3, 4학년 선행을 한다니 기뻤습니다. 이 속도라면 중학 수학을 초등학교 때 다 하지 않을까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합니다. 은근슬쩍 주변 아이 엄마들에게 자랑도 했습니다. 학습지는 계약 기간 만료로 그만 두었습니다.
저는 '4학년 수학'까지 선행한 훌륭한 아이를 뿌듯하게 바라보았습니다. 겨울방학이 왔습니다. 수학 문제집을 한 권 풀기로 합니다. 4학년 수학 선행까지 했는데 잘하겠다는 생각을 깔고 시작했습니다. 뿌듯함이 당황스러운 감정으로 변화하는 것은 하루를 넘지 못합니다.4학년까지 선행했다며? 어떻게 이렇게 모를 수 있지?' 문제가 길어지면 아이는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저를 바라봅니다. 제 속에 뿌듯했던 혹은 자만했던 마음이 우르르 무너집니다. 인정해야 했습니다. 선행이 아니라 겉핥기 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최근 나온 학습 관련 책 속에 아이가 현행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는데 무리해서 선행을 하면 수학적 사고가 멈춘다는 말이 있었습니다. 제 아이의 수학적 사고가 멈췄습니다. 가볍게 한 바퀴 돌린 선행 덕분에 문제를 깊게 생각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아이를 화가 나 바라보던 저는 깊이 반성했습니다. 이 아이가 이런 것은 이 아이의 잘못이 아니었습니다. 엄마의 욕심과 잘못된 판단이었습니다.
아이와 방학한 차근차근 문제를 풀었습니다. 모르는 것은 깊게 생각할 시간을 줍니다. 처음에는 푸는 족족 모르겠다고 포기하거나 엉뚱하게 풀더니 이제는 제법 정답률이 높아졌습니다.
일련의 사건으로 제 아이에게 선행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고등학교 올라가기 전에 정석을 몇 바퀴 굴리고 초등학교 5학년 때 중학 수학을 선행해야 한다는 이야기들은 이제 남의 이야기입니다. 제 아이는 현행을 깊이 공부하는 것이 더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나서서 아이를 괴롭히지 않겠다 다짐해 봅니다.
아이가 아직 어릴 때 알게 되어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우리 아이 공부 진도는 남들이 말하는 '이 때는 이 정도는 해야지.'가 아니라 우리 아이의 성향과 진도에 맞춰해야 하는 것을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