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ZIMNI Jul 11. 2024

나의 쓸모

나의 쓸모에 대해 생각한다.

나는 쓸모 있는 사람인지, 쓸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이 맞는지에 대해.


아니다. 아니라는 걸 잘 안다. 대체될 수 없는 사람이 되려고 노력했는데, 대체할 필요도 없는 사람이 되어버린 기분이다. 지난 2년 7개월간 내가 해왔던 일은 무엇일까? 난 무엇을 위해 그토록 아등바등 버거워했을까?


남들보다 잘하진 못해도 남들만큼은 하려고 부단히 헤엄쳤는데, 어쩌면 그저 발버둥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난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겠지. 발차기가 아니라 발버둥이었으니까. 홀로 사무실 불을 끄고 퇴근하던 그 날마다, 오직 달만이 밝게 빛나던 그 순간마다 까맣게 내려앉은 어스름만큼 내 마음도 내려앉곤 했다. 그때의 난 나의 헤엄이 발버둥에 불과하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언젠가 퇴사를 준비하는 이들에게 쓴 글을 보았다. 요지는 회사 프로젝트의 성공은 본인의 능력이 아니라는 것. 회사의 네임밸류, 브랜드파워 그리고 함께 합을 맞춘 팀원들 없이도, 정말 혼자서 오롯이 성공해 내야 비로소 본인의 능력이라는 내용이었다. 그러니 스스로의 역량을 제대로 파악하라고.


프로젝트의 성공? 이미 그 지점에서 글의 대상은 내가 아니었다. 나의 프로젝트는 명백한 실패니까. 하지만 우습게도 난 그 글을 읽고 퇴사를 결심했다. 나의 역량, 능력, 그러니까 쓸모라는 단어를 생각하며 그 글을 다시 떠올렸다.

분명 나의 움직임은 발버둥에 불과했다. 살기 위한 몸부림에 가까웠을지도 모른다. 난 그냥 그 정도의 몸부림밖에 칠 수 없는 사람일 지도 모른다. 자기객관화에서 조금 벗어나면 생각이 조금 달라진다. 어쩌면 남 탓일 수도 있는 조금은 유해한 착각들.

내가 헤엄을 칠 수 있는 곳이긴 했을까? 내 발놀림이 발버둥으로밖에 남지 못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손을 올곧게 뻗어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데, 손을 뻗을 만큼의 공간은 있었을까? 내 몸이 떠오를 정도의 물이 차 있긴 했을까?


"혼자 고생하면 뭐해? 아무도 인정을 안 하는데?" 퇴사를 고민하게 한 여러 개의 말 중 하나. 인정. 지난 2년 7개월 동안 나는 인정을 못 받고 있었고, 그걸 이제야 돌려 돌려 말해준 거다. 이제야 알았다. 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는 걸. '콘텐츠를 읽지 않는 이들'에게.

인정받을 수 있는 일을 하거나 인정받을 수 있는 곳을 가거나. 나의 선택지는 두 개가 되었다. 아니, 사실 하나밖에 안 된다. 인정받지 못하는 곳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일을 그만 하는 것. 그래서일까. '대체할 사람이 없어서 그래'라고 다들 위로해 주지만, 내게 프로젝트 홀딩이라는 말은 '대체할 필요가 없다'는 의미로 들린다.


나는 나의 쓸모를 증명하지 못했다.

작가의 이전글 #24.05.09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