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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지안 Feb 25. 2021

그렇게 작별이 되는 시간들

코로나가 앗아가는 나의 기억들

자주 가는 이탈리안 식당이 있었다. 대학가 앞에 있는 허름한 식당이었지만, 주인 아저씨가 굉장히 젠틀했고, 맛도 꽤 훌륭했다. 무엇보다 하루가 다르게 상점이 들고나는 신촌 바닥에서 십년을 넘게 버텨왔다는 것이 장점이었다. 말하지 않고 존재 자체만으로 가치를 드러내는 훈장처럼 그곳에 십년이 넘는 시간을 있어왔다는 것이 많은 것을 보증했다. 근처에서 학교를 나온 덕에 그곳에 쌓인 내 추억도 많았다. 그래서 그곳에 들어가면 나는 과잉텐션 수다쟁이가 되었다.


그런데 어느날 파스타 맛이 영 이상했다. 그날의 충격은 잊을 수 없다. 충격이라 표현해도 될 만큼 너무 놀랐었다. 내가 아는 주인 아저씨는 안 팔았으면 안 팔았지 음식의 퀄리티를 떨어뜨려가며 팔 사람이 아니었다. 대학교 앞 작은 식당이지만 자부심이 대단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날의 파스타는 평소 꽤나 풍부한 맛을 자랑했던 그것이 아니라, 그냥 밀가루 떡에 가까웠다. 딱봐도 원가절감과 타협한 결과물인 게 느껴졌다.


실수였겠지.


그렇게 믿고 한달 후 다시 갔으나 맛은 똑같았다. 그 후 발길을 끊었고, 얼마후 '임대'라는 붉은 글씨에, 건물주의 것으로 보이는 폰번호가 붙었다. 코로나가 창궐해 한창 위세를 키워가던 시기였고, 애지간한 동네 가게들은 훅 불면 날아갈 정도로 위태위태한 상황이었다. 허나 역사책에 나오는 메소포타미아 같은 격동의 지역에서 십년을 넘게 이어온 그 가게만큼은 끄떡없으리라 생각했다. 마지막에 맛본 밀가루 떡같은 파스타는 아마도 역병 때문에 찾아오지 않는 사람들에게 내지르는 아저씨의 마지막 비명 같은 것이었으리라. 그렇게 생각하니 한번이라도 더 가볼걸 못내 미안했다. 없어진 지 1년이 된 지금도 그 앞을 지나가면 나도 모르게 한번 들여다 본다. 혹시나 무엇이 있길 기대하는 것처럼.


그러나 역병은 위세가 꺾이지 않는다. 시간은 속절없이 흐르고, 사람들은 점점 지쳐간다. 며칠전 자주가던 순대국집 앞에서 우두커니 서있었다. 나의 최애 순대국집이자, 2호선이 생기기 전부터 그곳에 있었다고 자랑하던 곳이 문을 닫았다. 그날도 저녁을 먹으러 갔다가 불꺼진 가게를 보게 된 것이다. '신촌에서의 만남을 접습니다' 아쉬우면서, 슬프면서 애써 덤덤하게 말하는 사람의 모습이 그러할까. 문에 붙은 벽보를 보며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날 거 같았다. 차라리 '저희 힘들어서 문닫아요'했으면 마음이 덜 쓰였을 것을. 코로나가 또하나 앗아가는구나 싶어 입맛이 참 더럽게도 썼다.

안녕, 구월산. 그동안 맛있었어

아는 형이 소개해줬던 동대문의 숙성횟집도 없어졌다. 내가 아는 한 30년 정도 된 가게였다. 자주 가보진 않았으나 항상 마음속에 회가 생각나면 가고 싶은 곳이었다. 그런데 폐점 소식을 포털을 통해 알게 되었다. 없어진 시기를 보니 역시나 코로나를 버텨낼 수가 없었던 모양이다. 그렇게 펜이 많은 노포였는데, 그곳도 예외 없이 홀연히 사라져버렸다. 인터넷에 올라있는 그 많은 후기들이 이제는 대상이 사라진 유령같은 이야기가 되어 버렸다. 너무도 아프고 아깝다.


처음에는 코로나가 무서웠다. 저런 몹쓸병에 걸려 병원신세 지고 싶지 않았고, 어느 경험자의 말처럼 장조림을 먹어도 짠지 모른다고 하는 미각상실에 걸려 세상 맛난 것들과 작별하고 싶지도 않았다. 재수 없으면 죽을 수도 있는 나이이다보니 은근 생명보존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이제는 무섭기보단 괘씸하다. 나의 기억을 허락도 없이 쿡 찌르고 들어와 마구 망친다. 오랜 친구를 만나던 좋아하던 노포들이 많이 없어졌다. 누군가는 그냥 상점일뿐이라고 말한다. 원래 돈이 교환되는 곳은 시류에 따라 변할 수밖에 없다고 쉽게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그곳에서 친구들과 실컷 떠들다 돈을 내던 기억마저도 소중하다. 무얼 받아나온 것이 아니라 남겨놓고 나온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것 때문에 다음에도 그곳을 다시 찾았었다. 똑같은 친구들과 똑같은 곳에서 그 남겨놓은 것들을 꺼내 놀았다. 남겨놨던 그것들이 한순간 사라져버린 것이다.


이제는 어딜 찾아갔을 때 그자리 그대로 있으면 그냥 고맙다. 물론 종업원이 눈에 띄게 줄어있지만, 살아있는 것이 어디냐 싶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빈다. 이번만큼은 예상못한 작별이 아니길... 파스타 집도, 순대국집도, 횟집도 모두 그날이 마지막인지 모르고 나왔었다. 마지막인지 알았다면 그동안 좋은 기억 심어주셔서 감사하다고 말이라도 하고 싶을 정도로, 지나니 모두 아쉽고 두고두고 그립다. 마지막이 아니길. 꼭 다음에도 살아서 만나주길. 그집을 나오며 계속 뒤돌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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