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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지안 Jan 15. 2023

비혼의 비용청구서가 날아왔다

40대 중반을 향해가고 있다. 직업이 공무원이라 큰돈은 못 벌어도 내 입 하나 건사하는 데는 별 문제 없다. 집은 없지만 성격상 소유욕이 강하지 않아서인지, 내 집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별로 없고 원룸에 사는 현 상황이 불편하지도 않다.


차도 없다. 솔직히 나에게는 필요 없는 물건이다. 지독한 집돌이에다가 서울에 살면서 차를 굴려야 할 이유를 정말 모르겠다. 그것을 유지하는 비용을 생각하면, 차는 효용보다 비용이 훨씬 크다.


그리고 아직 미혼이다. 비혼을 결심한 적은 없지만 살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 다행히도(?) 성격이 외로움을 많이 타지 않아서 혼자 지내는 데 큰 문제는 없다. 그래서 40 언덕을 넘어갈 때, 어? 정말 이대로 가도 되나? 싶은 의구심이 있었지만, 아직까지 내 라이프스타일에 대해 큰 불만도 없고 후회도 없다. 이런 나를 좋아해주는 사리분별 모자란 상대가 나타나지 않는 이상 내 삶은 비혼의 삶이 될 것이 거의 분명하다.


결론적으로 나는 거의 완벽한 비혼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오랜 기간 일할 수 있는 직업에, 굳이 사람이 없어도 불편해하지 않는 성격, 그리고 현 상황에 대한 높은 만족도까지. 결혼이 어떻게든 필요했다면 남들처럼 기를 쓰고 집과 차를 마련하려고 했겠지만, 별 노력을 안 한 거 보면 그렇게 간절하지도 않았나 보다.


이런 내가 근래에 들어 비혼의 삶에 대해 약간 다르게 보게 되었다. 여전히 후회는 없지만 그동안 미처 생각해 보지 못한 게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고 할까. 혼자 사는 삶이 주는 만족은, 다르게 이야기하면 결혼의 기회비용과 동가이다. 결혼의 기회비용에 대해서는 내 부모의 삶을 오랫동안 봐왔기 때문에 익히 알고 있었고, 주변에서 사는 지인들, 미디어에 나오는 여러 푸념들을 들으면서 충분히 학습되어 있었다. 일상 곳곳에 자리 잡은 자유와 비교적 가벼운 경제적 부담, 그리고 사람과 부대낄 때 견뎌야 하는 피곤함이 없는 삶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완전히 우월한 선택처럼 보였다. 


그러나 나이가 한 살 두 살 들어가면서 비혼도 기회비용이 있는 선택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뭐 이런 당연한 이야기를 엄청난 깨달음처럼 얘기하나 싶겠지만, 그것을 머리로 계산할 때와 몸을 통한 구체적 감각으로 느낄 때는 전혀 다른 이야기로 다가온다.


예전에 친구가 "혼자 살려면 생수통 들 근력은 죽을 때까지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을 했다. 그때는 신랄한 농담이군 하면 웃어넘겼으나, 지금 그 말을 들으면 웃음이 안 나온다. 왜냐면 실제로 그러하기 때문이다. 날이 갈수록 근력이 빠지는 걸 느끼기 시작했다. 슬프니까 구체적인 예를 들지 않겠다. 근데 정말 일상에 꼭 필요한 동작을 할 때 힘이 모자란 것을 조금씩 느낀다. 손목이나 어깨, 무릎 같은 큰 관절은 이미 병원신세를 한두 번 졌다. 게다가 작년에 온 노안은 내 몸이 확연한 에이징커브에 들어갔음을 알려주는 결정타였다. 


이런 일상을 내가 끝까지 '혼자'서 견뎌낼 수 있을까? 옆에 도움 줄 수 있는 사람도 없이? 같이 나이 들어가며 서로 위안이 될 사람도 없이? 그나마 버팀목이 될 자식 하나 없이? 점점 자신이 없어진다. 구체적인 몸의 감각이 비로소 나에게 비혼의 기회비용을 청구하려 들고 있다. 결혼의 기회비용보다 비혼의 진정한 기회비용은 한 타이밍 늦게 다가온다. 그것은 불안과 두려움의 얼굴을 하고 있다. 그렇게 느껴진다.


요즘 젊다 못해 10대 어린 나이에 비혼을 결심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예전에 뉴스를 보니 어떤 회사에서는 '비혼선언'을 하는 직원에게 비혼식을 열어준다고 한다. 그들 모두의 선택을 존중한다. 비혼으로 살고 있는 마당에 너희는 하지 말라고 할 마음은 전혀 없다. 그러나 너무 일찍 결론은 내지 마시길 바란다. 나중에 진짜 청구서가 나왔을 때 요리조리 따져보고 비교해 봐서 비혼인지 결혼인지 결론 내려도 전혀 늦지 않다. 제발 비혼식이니 비혼선언이니 하는 바보 같은 짓은 넣어두시라. 직업도 몇 번씩 바꾸는 세상에 결혼이라고 해서 처음의 결심이 유지될 리 없지 않겠나.


물론 경제적 이유 등으로 어쩔 수 없이 비혼하는 사람도 있다. 그것은 사회 구조와 관련한 것이기 때문에 이 꼰대글의 대상이 아니다. 또한 이 모든 걸 다 감안하더라도 비혼이 더 나은 선택이라 생각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난 그들의 선택을 존중한다. 나도 그들과 같은 생각이기 때문이다.


다만, 요즘 시류에 편승해서 너무 편안한 결론을 내리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요즘 우리 사회는 결혼의 기회비용은 구체적으로 말하지만 비혼에 대해서는 그렇지 못하다. 개인의 선택 기준을 왜곡할 수 있는 위험이 있다고 생각한다. 살아보시고, 느껴보시고 그때도 혼자 사는 게 더 낫다는 생각이 드신다면 그때 가서 해도 된다. 그전까지는 축구 대표팀 감독 선임에 자주 나오는 표현처럼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검토해 보시길' 추천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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