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가 결혼정보회사 창업 준비를 하고 있다. 시장조사를 위해 시중의 유명 결정사에서 상담은 다 받아봤고, 웬만한 데이팅앱도 다 해봤다고 한다. 심지어 중앙아시아 신부감들과의 매칭을 구상하기 위해 우즈벡 여행까지 갔다 왔다. 참 열심히 사는 친구다.
그 친구가 나에게 데이팅앱을 하나 소개했다. 자기가 해본 것 중에 내가 좋아할 만한 앱을 발견했다고 한다. 사실 나는 결정사니 데이팅앱이니 하는 것들에 대해 발작을 하는 사람이다. 철저하게 시장 논리로 돌아가는 한국의 연애 결혼 판에서, 저런 것들은 시장주의적인 속성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증거들이다. 됐다고 거절하니 친구가 거듭 추천했다. 나를 모르는 사람이라면 모를까, 나를 속속들이 아는 친구가 하는 말이라 약간 신경이 쓰이긴 했다.
그리고 며칠 뒤 정신을 차리니 나는 앱을 깔고 있었다. 처음에는 정말 호기심에 깔았지만 이리저리 만지다 보니 사람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3층 카페에서 지나다니는 행인을 구경하는 기분이었다. 물론 나를 노출해야 한다는 부담도 있지만, 요즘 비슷한 앱에서 요구하는 개인자산이니 자가유무니 보유차량이니 하는 것들은 묻지 않는 것에 살짝 마음이 놓였다.
지금 거의 한 달째하고 있는데, 이걸 하면서 두 가지를 새롭게 알게 되었다. 하나는 나 역시도 ‘기왕이면’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이다. 기왕이면 예쁘고 기왕이면 직업 탄탄하고 기왕이면 학력 좋은 사람에게 눈길이 가는 나를 발견하고는 적지 않게 당황했다. 그전까지 나는 인본주의자는 못 되어도 최소한 선비쯤은 되는 줄 알았는데, 선비는커녕 사람을 인수분해해서 필요한 것만 찾아 먹는 장돌뱅이와 다를 게 없었다. 이런 내로남불의 화신 같으니.
또 하나는 ‘그럼에도’의 위치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었다. 그럼에도는, 내 생각에 사랑의 출발점이다. 앞서 말한 것처럼 나는 지극히 시장화되어 있는 한국의 연애 결혼 세태를 참 마음에 안 들어한다. 시장 안에서 나는 구매력을 가진 소비자임과 동시에 상품성을 가진 상품이 되는데, 구매력과 상품성이 맞아야만 연애와 결혼이 성사된다. 흡사 계약의 과정이다. 등가가 교환되는 계약 관계는 당연히 양쪽의 가치가 측정 가능해야 성립되는데, 나는 어떠한 경우에도 나의 경제력이나 배경 따위 등으로 등급 매겨지고 싶은 마음이 없다. 아무리 얼굴이 예쁘고 직업이 좋은 분이어도 재테크로 돈 좀 만질 줄 안다는 것, 부모님의 노후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 (굳이) 강남에 산다는 것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는 분들에게는 대화신청을 할 생각이 나지 않았다.
먹고사는 것이 중요한 걸 부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나는 그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안다. 대식가인 아빠와 평생을 같이 산 우리 엄마는 밥때마다 아빠가 그렇게 미웠다고 한다. 식비마저 쪼들릴 정도로 형편이 안 좋았는데, 남편이란 인간은 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매번 밥공기를 몇 개씩 비웠기 때문이다. 사람 미워할 줄 모르는 우리 엄마마저 그랬던 걸 보면, 먹고사는 것은 최소한의 인간성을 지키기 위한 조건임이 분명하다.
문제는 지금의 세태가 그런 수준이 아니라는 점이다. 결정사에서 '등급'이라 말하지만 사실상 사회적 계급을 공공연히 다루고 있다는 건 이미 세상이 연애와 결혼을 어떠한 관점에서 보고 있는지를 반영한 것이다. 너무 착잡하지 않나. 사회적 계급 안에서 발버둥 치며 사는데, 사랑마저도 그것에 다를 바가 아무것도 없다면 말이다. 나는 아직도 사랑에는 낭만이 있어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다. 먹고사는 것을 해결하는 게 중요하지만, '그럼에도' 사랑을 더욱 찬란하게 만들어 주는 것은 조금의 낭만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야 한다고 믿고 싶다.
한국 음식을 먹을 때마다 계륵처럼 느껴지는 존재가 있다. 다대기다. 매운맛과 신맛, 단맛이 과장되게 섞여있는 저 양념장은 맛의 본질을 해친다. 그러나 아예 안 넣고 먹으면 한국 음식 특유의 매력이 살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혀에 감기는 감칠맛과 속까지 시원해지는 쾌감을 위해서 한 스푼의 다대기는 꼭 필요하다. 적절히 다대기가 풀어진 국물의 맛을 느껴야 ‘질리지 않고 끝까지 비울 수 있겠다’는 확신이 생긴다. 연애와 결혼은 아무리 세상이 변해도 사랑의 일이라고 생각한다. 낭만이 밥 먹여주는 세상이 아니라지만, 사람을 만나 사랑하는 것에서는 한 스푼의 낭만 정도는 있어야 하지 않겠나. 맛의 본질은 아니어도 완성을 위한 화룡점정은 되니 말이다. 제발 다대기 좀 넣어 먹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