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한창 취업준비를 하던 시절, 자소서가 그렇게 괴로울 수가 없었다. 아무리 기억을 뒤져봐도 거기에 쓸 멋들어진 경험담이 없었기 때문이다. 친구들이 인턴이나 해외경험으로 자소서를 채워갈 때, 나는 '주어진 일에 충실히 살았습니다'같은 하나마나한 소리를 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 아무것도 안 한 건 아니다. 아무것도 안 하기는커녕 전쟁을 치르고 있었다. 어릴 때부터 나를 괴롭혀온 불안장애는 그때까지 날 붙잡고 놓지 않았고, 강압적인 분위기의 가정에서 자란 덕에 제때 성장하지 못 한 자의식은 스스로를 현실 세상에 던져놓길 주저하게 만들었다. 그것들과 사활을 걸고 싸우는 내면의 전쟁은 유혈이 낭자했지만, 종이 위에서는 그냥 흰색 공백으로 표시될 뿐이었다.
때문에 나는 아주 긴 시간 동안 나를 미워했다. 얼마나 못난 인간이기에 남에게 보여줄 보편적인 스토리 하나 만들 수가 없나. 이런 생각을 할 때면 나에게 붙어 있는 모든 결핍의 이름표들이 저주스러웠다. 한 번은 정신과에서 정신건강테스트를 받았는데, 필수적으로 거쳐야 하는 지능검사 수치가 매우 높음으로 나왔었다. 의사는 내 정신적 혼란이 지능이 좋아서 너무 많은 생각을 다루고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고 했다. 나에게 머리가 좋다니... 속으로 참 진정성 없고 값싼 위로라고 생각했었다.
그랬던 나는 지금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 크게 상황이 바뀐 건 없다. 그저 나이를 조금 더 먹고, 그만큼 많은 사람을 겪은 것이 다를 뿐이다. 세상에 나와 보니, 나는 스스로 생각했던 것보다 꽤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머리도 평균이상이고, 허약체질이긴 하나 훨씬 안 좋은 사람들도 많고, 마음의 병이나 상처를 운명처럼 안고 사는 사람들도 그동안 어디에 숨어있었는지 눈에 참 많이 보였다. 자연스럽게, 예전에 나는 왜 그렇게 힘들게 살았나 생각하게 되었고, 결국 '그냥 운이 좀 없었을 뿐'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다. 그것 이외에 나와 타인을 가를 수 있는 기준은 없었다.
운이 조금 부족했던 나는 연민의 대상이다. 운이 없는 걸 어쩌겠나. 운명의 신이라는 가상의 존재까지 만들어 굳이 저주할 마음은 없다. 그런 와중에 잘 견디며 살아온 것이 그저 기특하고 고마울 뿐이다. 평생 가져본 적 없는 스스로에 대한 연민과 고마움을 처음으로 느끼는 요즘이다. 만약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그 시절의 소년을 꼭 안으며 속삭이고 싶다. 너무 잘하고 있어. 고마워.
잘 지냈나요. 오랜만이죠. 딱히 건넬 말은 없어도. 비뚤어지고 못생긴 그 안경은 다시 봐도 참 볼품없군요.
예쁜 그 애는 너의 진심을 절대 받아주지 않아요. 조각난 채로 버려둔 마음이지만 아직까지도 반짝이니까.
초라했던 인사도 어설픈 사랑 노래도 밤새 중얼거렸겠지만. 눈을 떠 멋진 밤이 펼쳐지고 있어.
세상이 무너지고 끝날 것만 같아도. 건강하고 웃고 사랑하고 그대로 찬란하게 있어줘. 예뻤던 소년의 마음.
- 10cm '소년'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