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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지안 Mar 02. 2021

그때 그 한의사분, 잘 살고 계신가요

저는 잘 살고 있습니다

원래는 다른 곳이 아파서 찾아간 한의원이었다. 친구가 강남에서 유명한 사람이고, 자기가 예전에 한번 취재도 했던 사람이라 잘 봐줄 것이란 말을 믿고 간 터였다.(기자 친구였다) 어디가 아팠는지는 기억이 안 난다. 허리였는지 다리였는지. 본래 아팠던 곳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10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그분 덕에 입은 마음의 아픔은 치유가 되지 않고 있다. 


들어가자마자 TV출연 영상을 캡쳐해놓은 액자들이 시야를 가득 채웠다. 이름만 들어도 아는 프로그램에 나가 하얀 가운을 입고 무언가를 진중하게 설명하는 모습이 전부였지만, 왠지 모든 사진에는 '신뢰' '믿음' '실력' 따위의 자막이 써있는 것처럼 보였다. 소개해준 친구의 안목에 다시 한번 감사하며


진료실에 들어섰다. 아픈곳을 설명하다 대화가 나의 불안증으로 옮겨갔다. 내가 너무 믿음을 주었던 것일까. 나도 모르게 심리상담사에게 말하듯이 모든 것을 털어놓고 있었다. 그제야 눈에 들어온 진료과목 차트. 각종 정형외과 질환과 함께 '정신질환 진료 전문'이라는 문구가 눈에 빨려들 듯 들어왔다. 한의사는 더 적극적으로 나의 증상과 현재 어느 정도로 힘든지 등을 묻더니 자기만의 처방을 내놓기 시작했다.


아주 질 좋은 녹용에 뭐에 뭐에.....기억은 없다. 아무튼 아주 좋은 녹용을 써야하기 때문에 약효는 좋을 것이고 몸이 조금 노곤한 느낌이 있겠으나 기분이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라는 부연을 했다. 당시 나는 매일 불면에 시달리고 있었고, '왜 하필 나야'라며 믿지도 않는 신을 원망하며 사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신도 아닌 인간이 이걸 먹으면 좋아질 거라고 하니 혹하지 않을 수 없었다.


"큰 부작용은 없나요? 얼마나 먹어야 해요? 잠 잘오는 거 맞아요?"

"그럼요. 환자분 상태로 봐서는 2년 정도 꾸준히 드시면 될 거 같아요"

"그럼 약값은 얼마나 될까요?"

"음....."


뜸을 들인 후 한의사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한 재당 이 정도 하니, 2년이면..."


곱하니 2천만원이었다. 당시 백수 20대 청년이었던 나에게는 감당할 수 없는 금액이었다. 내 상황을 아무리 잘 아는 엄마라 해도 쉽게 꺼내놓을 수도 없는 금액이었고. 살짝 당황한 나를 한의사는 아무말 없이 그냥 지켜만 봤다.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훤히 알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왜냐면 내가 표정으로 훤히 내보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하철 역까지 10분 정도 걷는 거리였다. 그렇게 무거운 10분은 처음이었다. 알 수 없는 눈물이 쏟아질 것만 같았지만 간신히 가두어두느라 눈꺼풀이 너무 무거웠고, 발걸음도 천근만근이었다. 울음을 억지로 참다보니 울대가 터질 것 같았다. 그러다 결국 지하철 안에서 터져나왔다. 서러웠다. 아픈 것도 서럽고, 그것 때문에 남의 말 하나하나에 마음이 흔들리는 게 서러웠다. 그리고 처음보는 사람들 앞에서 우는 게 쪽팔려 더 서러웠다. 


그분이 나에게 처음부터 안 좋은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그는 선택을 했을 뿐이다. 내가 그곳에 찾아간 목적(허리였는지 다리였는지)보다는 우연히 발견한 내 마음속 아픔이 돈이 더 된다고 본 것이다. 그게 괘씸하다. 왜 환자를 앞에 두고 의사로서가 아니라 사업자로서 선택을 해야만 했는지 그게 지금까지 용서가 안 된다.


집에 돌아와 엄마에게 자초지종을 말하고 없던 일이 되었다. 지금 돈으로 5천만원 가까이 되는 돈인데 그런 돈을 어디서 갑자기 구하겠나. 엄마도 그냥 잘 참아보자며 나를 달랬다. 정말 안 그러려고 했는데, 또 한번 눈물이 나와버렸다. 2천이 없어서 운 게 아니라, 이런 아픔을 엄마와 나누어야 하는 것이 미안해서 그랬다. 엄마는 한없이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잘 지내시는지 모르겠다. 나를 기억도 못 하시겠지만 나는 당신을 기억한다. 그만큼 힘든 하루를 나에게 주셨으니까. 부디 직업인으로서 승승장구 하셨으면 좋겠고, 한 인간으로서도 행복하시길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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